퇴직연금 제도 시행 후 적립금액이 9조원을 돌파한 상황에서 결국 퇴직 연금은 대기업 계열사 금융사들이 나눠먹는 시장이 될 것으로 보인다.
퇴직연금 시장도 국내 대기업들의 자기 계열사 위주 가입으로 인해 기업 순위대로 서열이 나타나면서 결국 중소형 금융사들은 설 자리를 잃게 될 것이란 지적이다.
업계에선 구(舊) 제도인 퇴직보험 및 신탁이 폐지되는 2011년을 기점으로 퇴직연금 시장은 급격하게 커져 퇴직연금 시장 규모가 오는 2011년엔 최대 90조 이상으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에 따라 각 증권, 보험, 은행들은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며 퇴직연금 시스템을 구축하고 저마다의 강점을 부각시키는데 열을 올리고 있다.
하지만 대기업계열사 중심의 국내 산업 구조로 인해 대기업 계열의 금융사들이 계열사 퇴직연금을 독식하는 체제가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지난 2005년 12월 제도 시행 이후 2009년 10월말까지 퇴직연금의 계약체결 건수는 7만2281건(가입자 152만296명), 적립금액은 9조3975억원이다.
은행이 적립금(4조9637억원)이 52.8%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고, 생명보험사가 29.0%, 손해보험사가 5.8%, 증권사가 12.4%를 기록 중이다.
하지만 이런 구도도 대기업들의 자기 식구 밀어주기로 인해 판도가 상당 부문 바뀔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는 15일 이사회에서 기존 직원대상 퇴직보험(퇴직금)을 퇴직연금제로 전환하기 위해 삼성생명 보험에 가입했다고 공시했다.
삼성전자의 기존 퇴직보험(퇴직금) 적립금은 1조1000억원에 달한다. 일부 삼성전자 직원들이 퇴직연금 전환을 계기로 중간 정산을 신청할 것으로 보이지만 그렇다손 치더라도 퇴직연금 시장에서 1위를 달리고 있는 삼성생명의 입지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게 된다.
회사별 운용관리계약 실적을 봤을 때 지난 10월 기준 삼성생명은 1조6730억원으로 부동의 1위를 차지고 있다. 국민은행이 9786원으로 2위를 기록하고 있다. 따라서 이번 삼성전자의 삼성생명 행은 향후 그 격차는 더욱 심화될 수밖에 없다.
HMC투자증권은 경상남도 양산시에 위치한 자동차 부품 전문 제조업체인 신기인터모빌의 퇴직연금 사업자로 최종 선정됐다고 밝혔다.
지난 10월 신탁업, 자산관리기관 등록을 마친 HMC투자증권은 신기인터모빌과 카네스 등과 퇴직연금계약을 성사시켰고, 연말까지 엠엔소프트 등 다수 기업의 퇴직연금을 유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신기인터모빌은 현대차계열사에 자동차 부품을 공급하는 업체다. 카네스 역시 마찬가지다. 엠엔소프트는 현대차 그룹 계열의 맵 서비스 전문기업이다.
이런 상황임을 고려해보면 향후 현대차 계열사들뿐만 아니라 1ㆍ2차 밴더들 역시 HMC투자증권으로 몰릴 가능성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결국, 대기업 계열사를 끼고 있는 금융사 위주로 업계가 재편될 가능성이 높을 수밖에 없고 중소형 금융사들이 퇴직 연금 시장에서 발 디딜 곳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모 퇴직연금팀 팀장은 “우려했던 일들이 하나 둘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며 “이럴 경우 그룹사 순위대로 퇴직연금 순위도 매겨질 가능성이 커 부담이 아닐 수 없다”고 전했다.
실질적으로 시스템이나 운용 능력이 중시되는 것이 아니라 그룹사라는 이름만으로 덩치를 키워나가면서 질적인 면은 뒤쳐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