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중년의 위기(midlife crisis)’로 불리는 한 심리학 이론에 따르면 필자는 위기에서 벗어나고 있는 중으로 좋아해야 한다. 나이에 따른 주관적 웰빙, 즉 행복감을 보면 사오십대 중년에서 가장 낮은 ‘U’자형 패턴을 보여 이런 이름이 붙었다. 이에 따르면 인생의 가을보다 겨울에 주관적 웰빙이 높은데, 다만 사망 전 수년 동안은 예외다. 중병에 걸려 심신이 괴로울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신체 능력은 청장년에서 중년, 노년으로 갈수록 떨어지고 정신 능력도 중년은 순발력은 떨어져도 판단력은 오히려 올라갈 수 있지만 노년에는 후자도 떨어진다. 그런데 왜 주관적 웰빙은 U자 곡선을 보일까.
이에 대해 여러 설명이 있는데, 먼저 중년에는 임원 승진 같은 이루지 못한 열망을 고통스럽게 느끼지만 나이가 들수록 점차 포기하며 현실에 만족하기 때문이라는 가설이 있다.
중년이 자녀 양육과 직업 전선의 스트레스가 가장 큰 시기이기 때문이라는 설명도 있다. 한편 동물원의 침팬지와 오랑우탄 같은 유인원도 중년의 위기를 보인다는 관찰에서 진화적으로 보존된 심리적 특성이라는 가설도 있다.
지난달 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에는 중년의 위기가 인류의 보편적 현상이 아니라는 연구 결과가 실렸다. 미국 산타바바라 캘리포니아대 인류학과가 주축이 된 다국적 공동연구자들은 지구촌의 다양한 사회에서 주관적 웰빙을 조사한 결과 심지어 ‘역U(∩)’자 패턴, 즉 중년에 가장 행복하다는 결과도 꽤 되는 것으로 드러났다.
즉 중년의 위기(U)는 사회 복지가 잘 돼 있는 서구 사회에서 보이는 패턴일 뿐으로, 특히 의료나 복지가 부실한 저소득 국가에서는 나이가 들수록 주관적 웰빙도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한편 주관적 웰빙 패턴이 U자나 ∩자로 나오더라도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경우는 적었다. 오히려 개인에 따라 자기 나이대의 패턴에서 크게 벗어나는 경우가 많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얘기로 사별이나 이혼, 실직 등의 경험은 어느 나이대에 겪어도 충격이 커 주관적 웰빙 수치가 뚝 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중년의 위기는 서구사회의 패턴일 뿐”
연구자들은 “주관적 웰빙은 건강한 노화의 중요한 요소”라며 “개인 경로의 문화적, 사회생태적 결정 요인에 더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즉 노년의 행복감은 헛된 욕망을 버린 심리적 결과가 아니라 사회 구조적 요인이 더 크게 작용한다는 것이다.
중년의 위기가 사람뿐 아니라 유인원도 공유하는 진화의 산물이라는 주장 역시 막상 들여다보면 설득력이 크지 않다. 무엇보다 사람의 보살핌을 받는 동물원의 침팬지와 오랑우탄의 행동을 전문가가 관찰해 해석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야생의 늙은 유인원이 중년의 동료보다 더 행복할 것 같지는 않다. 중년의 위기는 노년의 복지가 잘 돼 있는 사회에서의 착시 현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