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권 대표 재건축 단지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가 최근 비상대책위원회와의 갈등을 일정 부분 해소하며 사업 재개에 대한 기대가 커졌다. 재건축 추진만 28년째인 만큼 조합원은 빠른 재건축을 바라고 있다. 다만 비대위가 지속적인 소송전을 예고한 데다 수도권 광역급행철도(GTX)-C 노선 통과 문제 등 각종 고비가 여전한 상황이다.
13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최근 열린 은마아파트 재건축조합 정기총회에서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 측 조합원 3명에 대한 제명안이 통과됐다. 총 3413명의 참석자 중 3000명 이상이 찬성했다. 중단된 재건축을 재개하고자 하는 조합원의 의지가 반영된 결과로 해석된다. 비대위는 이에 불복, 제명 효력금지 가처분을 신청해 현 집행부와의 또 다른 법적 다툼을 예고했다.
1979년 지어져 올해로 준공 46년째인 은마는 1996년부터 재건축을 추진했으나 여러 우여곡절을 겪어왔다. 2002년 시공사 선정, 2003년 추진위원회 승인을 완료했지만 안전진단,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 도입, 기부채납 논의 등의 문제로 현재까지 사업이 표류했다.
가구 수가 워낙 많은 탓에 주민 의견을 모으기가 힘들었던 데다 2005년엔 아예 재건축안 자체에 이의신청하는 주민마저 등장했다. 갈등을 봉합하는 과정에서 시간이 지연됐고, 추진위는 2017년에 이르러 정비계획을 다시 수립할 수 있었다.
그 사이 주민 반대로 집행부가 여러 차례 교체됐다. 최정희 현 조합장은 2021년 9월 주민총회를 통해 뽑힌 추진위원장 출신으로,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C 노선 통과 반대 시위 등을 전면에서 이끌며 소유주 신임을 얻었다는 평가다. 지난해 8월 총회에서 조합장으로 선출됐다.
한 달 후 강남구청이 조합설립인가를 내주며 추진위 출범 20년 만에 다음 단계인 사업시행계획인가를 위한 준비에 나섰다. 그러나 은마 조합 내 잡음은 현재진행형이다. 비대위가 최 조합장의 부정선거를 이유로 한 조합 직무집행정지 가처분을 제기한 것.
올 1월 법원이 가처분 신청을 인용하며 조합 업무가 전면 중단됐다. 조합원들은 “20년 전에 10년이면 재건축 된다던 아파트인데 공사를 시작할 때까지 앞으로 20년은 더 남은 것 같다”며 사업 지연에 대한 우려를 드러내기도 했다.
분위기는 8월 조합장 직무집행정지 가처분 결정이 취소되면서 반전됐다. 최 조합장은 “비대위가 추가 제기한 가처분 소송 모두 각하돼 더는 발목잡기가 불가능할 것”이라며 “늦어진 사업을 만회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최근 총회에서 조합원 선호에 따라 49층 재건축 추진을 선언하며 정비계획안 변경에 나설 전망이다.
사업 재개에 대한 기대를 업고 시세도 훌쩍 뛰었다. 지난달 은마 84㎡(전용면적)는 29억4800만 원(5층)에 손바뀜되며 직전 신고가(28억8000만 원, 14층)를 2주 만에 갱신했다. 9월 76㎡도 26억2500만 원(4층) 거래됐다. 직전 최고 거래액인 26억3500만 원(11층)을 거의 따라잡은 모습이다.
인근 공인중개사는 “올 초까지 무섭게 쌓이던 매물이 하반기 들어 많이 빠졌다”며 “아직 이주까진 한참 남은 상황이라 금리나 조합 내부 문제에 따라 매매가격은 계속 움직일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은마가 풀어야 할 숙제는 아직 남았다. 지난해 강남구청은 이 단지 추정 일반분양가를 3.3㎡당 7100만 원으로 결정했다. 이 경우 84㎡ 분양가는 24억 원, 59㎡는 17억 원 중반대에서 결정된다.
분양가가 이대로 확정된다면 기존 76㎡ 거주민이 84㎡를 분양받을 때 추가 분담금으로 3억1600만 원을 내야 한다. 종전 76㎡를 보유한 조합원이 91㎡ 입주를 선택하면 분담금은 최대 4억8200만 원까지 불어난다. 용적률이 204%로 사업성이 높은 편은 아니라는 점도 추가분담금 상승으로 향하는 우려를 증폭시키고 있다.
구청 관계자는 “조합은 사업시행인가 총회 개최 전 변경된 추정분담금이 있으면 공개 시 검증을 해야 하고, 분양신청 통지(공고) 시에도 변경된 추정분담금을 다시 검증할 의무를 진다”며 “실제 분양가는 변경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도 은마 재건축 성공 여부는 분담금과 일반분양 수익의 액수에 달려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예림 법무법인 심목 대표변호사는 “은마는 아파트 소유주뿐 아니라 상가 조합원도 있어서 층수변경이 되지 않는 이상 현 정비계획안으로는 일반분양 수입이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은마 지하를 관통하는 GTX-C 노선 설계변경 문제도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 주민들은 열차가 아파트 지하를 관통하면 지반이 약화한다며 꾸준히 설계변경을 요구해왔다. 이를 두고 시공사인 현대건설, 국토부와 법적 다툼까지 예고했으나 지난해 말 극적 봉합에 성공했다. 현대건설이 곡선반경을 최대한 줄여 단지 통과 면적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제안하면서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GTX-C 실시계획승인안에 이 같은 설계변경 내용이 반영되지 않았다. 현대건설 측은 “설계변경은 기술적 검토 등 긴 시간이 필요하며, 삼성역-양재역 구간은 전체 노선 일부이기에 착공 후 설계변경도 검토하고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
당시 조합원들은 현대건설과의 합의를 믿고 기다리겠다는 뜻을 표했지만, 1년이 다 되도록 설계가 변경되지 않자 최근 법적 자문 등 적극적인 대응에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