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미엄 백신이 제약·바이오 기업들의 매출 신장 활로가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정부의 지원이 없지만, 가격 책정이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민간 접종 시장에서 기업들의 점유율 확보 경쟁이 한창이다.
30일 백신 업계에 따르면 최근 국내외 기업들이 대상포진, 호흡기세포융합바이러스(RSV), 인체유두종바이러스(HPV) 예방 백신 사업 확장을 서두르고 있다. 이들 백신은 대표적인 프리미엄 백신으로, 국가예방접종사업(NIP)에 포함되지 않아 접종자의 필요에 따라 본인이 비용을 전액 부담하고 접종한다. 국내 프리미엄 백신 시장은 사노피, MSD, GSK 등의 글로벌 빅파마가 주도하고 있다.
사노피는 최근 영유아용 RSV 예방 항체주사 ‘베이포투스’ 출시를 준비하고 있다. 베이포투스는 사노피가 아스트라제네카와 공동 개발했으며 올해 4월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백신이 아닌 바이오의약품으로 허가를 획득했다. 베이포투스는 항체를 직접 주사해 감염을 예방하는 방식으로, 항원을 주사하는 백신과 기전이 다르다. 하지만 백신과 마찬가지로 감염 예방을 목적으로 사용해, 업계에서는 프리미엄 백신으로 묶인다.
RSV는 결막이나 코의 점막을 통해 전파되는 바이러스로 증상은 재채기, 코막힘, 인후통, 발열 등 감기와 비슷하다. 영유아와 노인은 폐렴으로 악화할 수 있어, 항체 주사 수요가 꾸준할 전망이다. 글로벌 시장에서도 출시 경쟁이 치열해, GSK는 50세 이상 성인 대상 ‘아렉스비’, 화이자는 60세 이상 및 임산부 대상 ‘아브리스보’를 미국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허가받은 상태다.
SK바이오사이언스와 유바이오로직스 등 국내 기업들도 RSV 백신을 주요 파이프라인으로 키우고 있다.
MSD는 HPV 백신 시장에서 왕좌를 굳히고 있다. ‘가다실’ 4가와 9가 백신 접종 확대에 집중하면서 시장을 독식하는 상황이다. HPV 백신은 현재 12∼17세 여성 청소년과 18∼26세 저소득층 여성을 대상으로 NIP 사업이 적용되고 있다. 하지만 대상 백신은 2가 및 4가로, 9가 백신과 남성 대상 접종은 여전히 민간 시장에 남아있다.
HPV 9가 백신은 10년 이상 MSD가 독주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2014년 가다실 9가 백신이 FDA 승인을 획득한 이후 경쟁 제품이 등장하지 못했다. 2가 백신 ‘서바릭스’를 개발해 유일한 경쟁사로 꼽혔던 GSK조차 올해 7월 “성공 여부를 확신할 수 없다”라며 차세대 HPV 백신의 임상 2상 시험을 포기한다고 공표했다. 정부가 추진 중인 HPV백신 NIP 확대가 현실화하면, 공공·민간 시장 대부분을 MSD가 점령하는 셈이다.
국내 기업 가운데는 SK바이오사이언스가 대상포진백신 ‘스카이조스터’를 앞세워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현재 국내 대상포진 백신 시장은 GSK의 ‘싱그릭스’와 스카이조스터가 양분하고 있다. MSD의 ‘조스타박스’가 수요 감소로 사실상 철수하면서, 스카이조스터가 편의성과 가격경쟁력을 내세우며 점유율을 높일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온다. 스카이조스터는 1회만으로 접종이 완료되며 비용은 15만 원 내외다. 반면 싱그릭스는 2회 접종해야 하며 비용도 40만 원 내외로 책정되고 있다.
프리미엄 백신 시장의 성장세에 따라 기업들의 연구·개발(R&D) 및 마케팅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에 따르면 2021년 44억7000만 달러(6조1945억 원)였던 글로벌 HPV 백신 시장 규모는 2026년까지 86억9000만 달러(12조382억 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추정된다. 같은 기간 대상포진 백신 시장 역시 28억8000만 달러(3조8791억 원)에서 44억 달러(6조957억 원)로 가파른 성장세가 기대된다.
특히 지난해 본격적으로 상용화한 RSV 백신이 기업들의 R&D 격전지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의 투자은행 SVB리링크는 세계 RSV 백신 시장 규모가 2030년까지 100억 달러(13조8560억 원)에 육박할 것이라고 추산했다.
제약·바이오 업계 전문가는 “프리미엄 백신은 국내 시장뿐 아니라 미국, 유럽 등 정부의 가격 통제가 비교적 약하며 고령화가 진행 중인 선진국에서 높은 수익성을 기대할 수 있어 장기적으로 R&D 투자가 지속될 것”이라며 “글로벌 기업들의 선발 제품들과 가격, 효과 측면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