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동성 배우자 건보 피부양자 자격 박탈은 위법, 사실혼과 차이 없어”

입력 2024-07-18 15:11 수정 2024-07-18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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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심 ‘피부양자 자격 박탈에 사전통지 의무 없다’ 원고 청구 기각했으나
2심 ‘피부양자 제도 도입 취지상 동성 결합도 사실혼과 동일’ 판결 뒤집어
대법 전합 “피부양자 자격 박탈은 평등원칙 위배” 2심 그대로 인용

▲지난 20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열린 '동성배우자 건강보험 피부양자 지위 사건' 국회의원 공동 의견서 제출 기자회견에서 장혜영 녹색정의당 의원, 김홍걸 더불어민주당 의원, 소송당사자 소성욱, 김용민 부부(왼쪽부터)가 의견서를 들어 보이고 있다.  (뉴시스)
▲지난 20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열린 '동성배우자 건강보험 피부양자 지위 사건' 국회의원 공동 의견서 제출 기자회견에서 장혜영 녹색정의당 의원, 김홍걸 더불어민주당 의원, 소송당사자 소성욱, 김용민 부부(왼쪽부터)가 의견서를 들어 보이고 있다. (뉴시스)

동성 동반자의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박탈하고 지역가입자로 변동 처리한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조처는 위법하다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결정이 나왔다.

18일 오후 대법 전합은 원고 소성욱 씨가 국민건강보험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보험료 부과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이같이 확정했다.

대법 전합은 “이 사건 동성 동반자는 단순한 동반 관계를 넘어 동거, 부양, 협조, 정조의무 등을 바탕으로 경제적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사실혼 관계와 차이가 없다”면서 “동반자에 생계를 의존하며 스스로 보험료를 납부할 수 없는 경우 피부양자로 인정받을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또 “피고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사실혼 관계의 이성 동반자와 달리 소 씨를 피부양자로 인정하지 않은 것은 합리적 이유 없이 소 씨에게 불이익을 줘 차별하는 것으로 헌법상 평등원칙을 위반한 위법”이라고 판단했다.

이어 “동성 동반자를 피부양자로 인정한다고 해서 피부양자 숫자가 불합리하게 증가한다거나 건강보험의 재정건전성을 유의미하게 해친다고도 볼 수 없고, 특별히 고려해야 할 공익도 상정하기 어렵다”고 봤다.

다만 이동원, 노태악, 오석준, 권영준 대법관의 경우 별개 의견을 제시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소 씨에게 해당 조처에 대한 사전 통보를 하지 않은 절차적 하자는 인정할 수 있지만, 현행법상 혼인은 이성간 결합을 본질로 하는 만큼 동성 동반자를 사실혼 관계와 동일한 집단으로 볼 수는 없어 실체적 하자가 있다고 판단하기는 어렵다는 취지다.

소 씨 2021년 소송 제기
1심서 패소했지만 2심서 승소
소 씨는 김용민 씨와 동성 동반자 관계로, 회사에 다니며 건강보험 직장가입자 자격을 유지하던 김 씨에 의해 2020년 피부양자 자격으로 등재됐다.

김 씨는 등재에 앞서 국민건강보험 측에 소 씨와 자신이 동성 관계임을 밝히면서 “저희도 다른 이성 부부들과 같이 피부양자 자격취득 신고를 할 수 있는지 여부를 알려달라”는 내용의 민원을 접수했다.

이를 확인한 국민건강보험공단 담당자가 “피부양자 자격취득이 가능하다”고 답변했고, 관련 절차와 서류를 안내하면서 소 씨가 김 씨의 피부양자 자격으로 등재될 수 있었던 것이다.

문제는 이 같은 사실이 그해 10월 언론에 보도되면서 시작됐다. 해당 사실을 인지한 국민건강보험 측에서는 김 씨에 전화를 걸어 “착오 처리”였다고 설명했고, 소 씨를 김 씨의 피부양자가 아닌 지역가입자로 변동시켰다.

뒤이어 소 씨에게 착오 처리 기간에 해당하는 지난 8개월분에 대한 건강보험료와 장기요양보험료 11만5560원을 납부하라고도 통보했다.

소 씨가 이번 보험료 부과 취소 소송을 제기한 배경이다.

소 씨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이 ‘피부양자 자격 박탈’이라는 자신의 이익을 침해하는 처분을 하고도 사전에 아무런 설명을 하지 않았고 의견제출의 기회도 주지 않았다면서 절차적 하자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 동성 동반자 관계를 사회보장 영역에서 사실혼 관계와 달리 취급하는 건 평등원칙에 위배되며 국제인권조약을 위반한 것이라는 취지로도 주장했다.

그러나 당초 1심 재판을 맡은 서울행정법원은 소 씨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1심 재판부는 2022년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소 씨에게 사전 통지를 하지 않았던 건 사실이지만 그 처분 성질상 의견 청취가 명백히 불필요하다고 인정될만한 사유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현행법상 혼인은 ‘남녀의 애정을 바탕으로 일생의 공동생활을 목적으로 하는 도덕적·풍속적으로 정당시 되는 결합’으로 해석될 뿐”이라면서 “이를 동성간의 결합까지 확장 해석할 만한 근거는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소 씨는 항소했고, 2심을 심리하며 사안을 보다 자세히 살펴본 서울고법은 1심 결정을 뒤집으며 다른 판결을 내놨다.

2심 재판부는 2023년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조치가 “소 씨의 권익을 제한할 수 있는 공권력의 행사”에 해당한다고 판단하면서 이 경우 행정절차법에 따라 소 씨에게 사전통지를 하거나 의견 청취를 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또 “사실혼 배우자와 동성결합 상대방은 모두 법률적인 의미의 가족관계나 부양의무의 대상에는 포함되지 않는 정서적·경제적 생활공동체라는 점에서 양자가 다르다고 할 수 없다“는 점도 강조했다.

2심 재판부는 “국민건강보험법상 피부양자 제도는 소득이나 재산 없이 피보험자에 의해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을 피부양자로 인정해 건강보험 수급권을 인정해야 할 필요성이 있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라고 의미를 짚으면서 “이런 목적에 비춰 보면 사실혼 배우자와 동성 동반자는 이성인지 동성인지만 달리할 뿐 본질적으로 동일한 집단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했다.

이날 대법 전합 판단도 다르지 않았다. 대법 전합은 "그동안 피부양자로 인정될 수 없었던 동성 간 결합 관계에 있는 사람들에 대해 행복추구권, 사생활의 자유, 법 앞에 평등할 권리 등 헌법상 기본권을 보다 충실하게 보장할 수 있게 됐다"며 이날 결정의 의미를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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