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 삶과 경제체질 바꿀 핵심과제
부채 굴레 벗은 희망금융 그려가길
최근 평일 오후 종로에서 오찬 뒤 인근 은행 점포에 잠시 들렀다. 지역적인 특성 때문인지, 한산한 다른 점포에 비해 나이 지긋한 이들이 대기석에 꽤 앉아 있었다. 특히 대출 코너 창구는 빈 곳이 없었다. 문득 우리 사회가 얼마나 빚에 의존해 살아가고 있는지 실감이 났다. 그래서일까, 신임 금융위원장으로 지명된 김병환 후보자가 공식석상에서 처음으로 한 말이 떠올랐다. “부채에 의존하는 경제 구조를 바꾸고 개선해 나가겠다.” 그가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이 마련된 예금보험공사로 출근하면서 기자들에게 꺼낸 첫 화두는 ‘부채’였다.
물론 정식으로 취임한 이후에 나온 언급은 아니지만 역대 금융당국 수장들이 취임 일성으로 강한 의지를 내비친 것도 부채였듯, 그 역시 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
가계부채, 우리 삶을 짓누르고 있는 무거운 짐이다. 은행 대출 끼어서 집 사고, 카드 빚으로 생활하는 게 당연해진 세상. 그 결과 서민 대다수는 평생을 빚을 갚으며 살아가고 금리에 휘둘린다. 금융취약계층은 법정 최고금리(연 20%)에 달하는 이자폭탄을 감당하며 버틴다. 김 후보자의 말은 이런 악순환을 끊어보자는 제안일 터다.
특히 눈에 띄는 건 리스크 관리 의지다. 그가 꼽은 네 가지 리스크는 소상공인 부채, 가계부채, 제2금융권 건전성,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등이다. 그는 이런 리스크가 쌓이는 것도 부채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구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실제 당장 나와는 상관없는 얘기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서민의 삶과 직결된 문제들이다.
소상공인 부채의 경우 자영업자들의 숨통을 틔워주는 정책은 곧 지역 경제 활성화로 이어질 수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어려움을 겪은 동네 가게들, 그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돕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 동네, 우리 삶을 살리는 길이다.
가계부채 관리도 중요하다. 하지만 이는 단순히 대출을 막는 게 아니라, 상환 능력을 키우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소득은 늘리고 불필요한 지출은 줄이는 균형 잡힌 접근이 필요하다. 김 후보자가 말한 ‘관리’가 바로 이런 의미이길 바란다.
제2금융권 건전성 강화는 저축은행, 대부업체 등 서민금융기관에서 고금리로 돈을 빌릴 수 밖에 없는 저신용자, 금융 취약계층에게는 생존과 직결될 수 있는 문제다.
하반기 금융시장의 최대 리스크로 부각됐던 부동산 PF 역시 관리가 잘 되면 무분별한 아파트 건설이 줄어들고, 결과적으로 집값 안정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요즘 주변을 보면 공사가 멈춰선 아파트 신축 현장들이 너무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폐지 이야기도 흥미롭다. 일견 부자들 세금 깎아주는 것 같지만, 달리 보면 일반 서민들의 재테크 기회를 넓혀주는 조치가 될 수 있다. 월급쟁이들도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기회, 그것이 바로 금투세 폐지가 가져올 긍정적 변화일 것이다.
우려되는 점도 있다. 부채 관리를 강화하면 당장은 대출받기가 어려워질 수 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이런 정책들이 우리 경제의 체질을 바꾸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빚 없이도 살 만한 세상, 그게 바로 김 후보자가 그리는 청사진이 아닐까.
기자는 ‘숫자의 개선’을 넘어 사람들의 삶이 나아지는 시대를 꿈꿔본다. 우리 모두가 부채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날이 오길 바란다. 그날까지 우리는 여전히 통장 잔액을 걱정하겠지만, 그 걱정이 점점 줄어들 것이라는 희망을 가져본다. 돈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고, 삶의 가치를 높이는 금융. 새 금융위원장에게 바라는 것은 이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