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재균도 류현진도 “어쩌겠어요. ABS가 그렇다는데…” [요즘, 이거]

입력 2024-07-02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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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다애 디자이너 mnbg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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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구가 포수 미트에 꽂힌 순간. 모두가 심판을 바라보는데요. 아니 정확히는 심판 귀에 들려오는 ‘그분’의 음성을 기다리고 있는 거죠. 심판의 삼진 아웃콜에 모두 환호하는데요. 후, 이번엔 ‘그분’의 판단을 정확히 읽어낸 나 자신에 박수를 보냅니다.

요즘 프로야구판에 ‘결정구’는 모두 1~2초의 ‘묘한 침묵’을 동반하고 있는데요. 자동 투구 판정 시스템(ABS)이 전달하는 ‘스트라이크’와 ‘볼’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죠. 이제는 너무 익숙해진 ABS, 올 시즌 한국 프로야구는 전 세계에서 처음으로 ABS 로봇심판을 도입했습니다. 프로야구 경기의 공정성과 정확성을 높이기 위해 도입된 기술인데요. 앞서 4년간 퓨처스리그(2군)에서 테스트를 거쳤죠.


(김다애 디자이너 mnbg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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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라이크는 앞뒤로는 홈 플레이트 중간 면과 맨 끝 면 두 곳에서 공이 상하로 라인을 스쳐야 합니다. 상하는 타자의 키에 따라 달라지는데요. 지면으로부터 신장의 27.64~56.35%에 스트라이크 존이 자리 잡게 되죠. 좌우로는 홈플레이트 크기 좌우로 각각 2cm 확대 적용됩니다.

화면상으로는 스트라이크 존을 통과한 것처럼 보여도 해당 공이 빨간색(스트라이크)과 초록색(볼)으로 다르게 표시되기도 하는데요. 중간 면과 맨 끝 면 두 곳이 스치느냐 스치지 않느냐로 달라지거나 중계 화면의 작은 화면으로는 스트라이크라도 ABS 화면에서는 보더라인을 벗어났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결정구가 묘한 선에 걸쳐있다면 모두 숨죽여 ABS 판단을 기다리게 되는 거죠. 1~2초 뒤 심판의 스트라이크 또는 볼 판정에 탄식 또는 환호를 내뱉게 됩니다.

1회에선 “이게 볼이라고?” 2회에선 “이게 스트라이크라고?”라며 바깥쪽 코너로 들어간 볼에 상반된 반응을 보이기도 하는데요. 감정 또한 “하 진짜 ABS”와 “역시 정확하다 ABS”로 극명하게 나뉩니다.

그런데 참 묘하게 이 ABS 존에 유독 허탈한 표정을 짓는 선수가 있는데요. 벌써 여러 차례 언급된 kt 위즈의 황재균 선수입니다.


(김다애 디자이너 mnbg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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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재균은 이 ABS 판정에 불만을 표하다 퇴장을 당하기도 했는데요. 4월 26일 SSG 랜더스와의 경기에서 0-3으로 뒤진 4회 초 2사 1루에서 삼진 선언을 당하자 헬멧을 집어 던졌습니다.

황재균은 이날 타석 볼카운트 1-1에서 몸쪽 깊숙한 공에 스트라이크가 선언되자 고개를 흔들며 아쉬운 표정을 드러냈습니다. 퇴장 상황은 이후에 벌어졌는데요. SSG 선발 오원석의 공이 몸쪽 낮은 코스를 향했지만, 포수 이지영과의 사인 미스가 있던 상황. 공이 포수 미트 안에 들어갔다가 튕겨 나가며 패스트볼(포일)이 될 뻔했죠. 1루 주자는 공이 빠진 것을 보고 2루로 뛴 상황이었지만, ABS를 통한 판정은 스트라이크였고, 주심은 삼진 아웃을 선언했습니다. 포수가 놓친 공이 스트라이크가 되는 상황, 과거 같으면 좀처럼 나오지 않은 장면이었죠.

2사 2루가 될 줄 알았던 상황에서 삼진이 선언되자 황재균은 헬멧을 집어 던졌고, 주심은 곧장 퇴장을 선언했습니다. 이보단 앞선 4월 17일 황재균은 키움 히어로즈와의 경기에서 8회 초 몸쪽 낮은 공이 스트라이크로 잡히자 황당한 표정을 지었는데요. 삼진을 당하고 벤치로 들어간 황재균은 중계 카메라에 ABS 볼 판정 결과가 나와 있는 태블릿을 보여주며 당황스러움을 어필 했습니다.

일명 ‘ABS 저항파’ 선수의 등장이었는데요. 이 저항파 선수는 최근 또 ABS의 놀림(?)을 받았죠. 황재균은 지난달 30일 삼성 라이온즈와의 경기에서 상대 투수 원태인과의 2회 말 무사 1루 상황에 들어섰습니다. 원태인의 8구째인 137km 슬라이더에 배트를 대려다 멈춘 황재균은 또 스트라이크 소식을 들었는데요. ABS 판정으로 포수의 프레이밍(스트라이크존을 살짝 벗어나는 공을 포수가 잘 잡아내 스트라이크 판정을 받는 기술)이 필요 없는 상황이라 지켜보는 시청자들도 볼로 보였죠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었습니다. 4회 말 황재균은 또 같은 코스의 삼진을 당했는데요. 원태인조차 갸우뚱하며 ABS 판정에 안도했던 공이었습니다. 첫 타석과 마찬가지로 생각지 못한 공에 스탠딩 삼진을 당한 황재균은 배트를 떨구며 좌절했죠. 황재균과 과거 같은 팀 동료이자 상대 팀 포수로 나선 강민호는 웃음을 참지 못하며 황재균에게 떨어진 배트를 건네줬습니다.

ABS 판정에 긍정적인 시선을 보내는 이들조차 왠지 ABS가 황재균을 골라 놀리는 것 같다는 ‘ABS 억까설’을 내보이기도 했는데요. 황재균의 허탈한 표정이 이를 더 부각하게 했습니다.


(김다애 디자이너 mnbgn@)
(김다애 디자이너 mnbgn@)


‘ABS 저항파’로 황재균과 동갑인 한화 이글스의 류현진 선수도 빼놓을 수 없는데요. 류현진은 시범경기에서 기아 타이거즈 소크라테스를 상대로 바깥쪽 보더라인 상하로만 걸치는 칼제구를 선보이며 ‘탕후루 제구’ 창시자로 모두를 기대하게 했죠. 하지만 이내 ABS 볼 판정에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4월 24일 KT와의 경기 직후 류현진은 ABS 존 판정이 경기장마다 또 같은 경기장이라도 매 경기 바뀐다고 주장했는데요. 류현진은 “첫날 문동주가 던질 때는 ABS 존이 완전 좌타자 바깥쪽으로 쏠려 있었지만, 갑자기 다시 돌아왔다”라고 작심 비판했죠. 문동주 투구를 보고 ABS 존을 연구하고 들어섰던 류현진은 달라진 판정에 의문을 제기한 건데요. 그러자 KBO(한국야구위원회)는 곧바로 관련 자료를 공개하며 해명했습니다.

이후 시즌 100승을 달성한 류현진은 ABS 존 영점 조절에 나섰는데요. 지난달 23일 기아와의 원정경기에서 1회말 상대 타자 박찬호를 뜬공 처리한 뒤 류현진은 더그아웃에 있는 코치에게 수신호를 건냈습니다. 그러면서 “2구 낮았어? 옆으로 빠졌어?”라고 말하자 이를 알아들은 코치는 팔과 손으로 ABS 존을 그리며 “옆에 이렇게 걸렸어”라고 설명했는데요. 너무 정확한 설명에 중계진도 웃음을 터트렸죠.

탁월한 설명 덕분이었을까요. 무서운 제구의 류현진은 해당 수신호를 파악하고 ‘인간 ABS’로 변신했습니다. 영점을 조절하며 이후 3타자 연속 삼진을 잡아냈는데요. 팬들은 “수신호도 정확했지만, 저렇게 알려주면 바로 영점 조절을 한다고?”라며 몬스터의 위력에 입을 다물지 못했죠. ABS에 순응하며 자신만의 존을 찾아가는 모습이었습니다.


(김다애 디자이너 mnbgn@)
(김다애 디자이너 mnbgn@)


ABS 도입은 이제 한국에서만 국한되지 않을 전망인데요. KBO에 따르면 지난달 26일 NPB(일본야구기구) 관계자들이 한국을 방문해 ABS 시스템을 살펴봤습니다. KBO는 주심이 착용하는 단말기와 투수의 투구 궤적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태블릿을 시연하고, 투구 완료 후 주심에게 판정 음성이 전달되기까지의 소요 시간 등을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했는데요. NPB 측은 ABS에 상세한 질문을 쏟아내며 큰 관심을 보였습니다.

팬들 또한 ABS 도입에 긍정적인 반응이 훨씬 많은데요. 포수 플레이밍 기술을 보지 못하는 점은 아쉽지만, 더는 오락가락하는 심판 판정에 화내지 않아도 되고, 설사 의문을 제기하더라도 정확한 자료로 반박하는 ABS님을 이길 수가 없는 거죠. 사람에게 화낼 기운을 다른 곳에 쏟는 것 또한 프로야구 발전을 위해서도 좋은 것이라고 말입니다.

“어쩌겠어요. ABS가 그렇다는데” 이제는 그 묘한 코너까지 마주해야 하는 투수와 타자, 그리고 심판진. 그 묘한 간격이 우리에게 새로운 짜릿함을 주고 있는 건 확실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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