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PO 역사상 첫 예심 승인 취소…이노그리드 “찬물 끼얹나 vs 상장 전 걸러야 투자자보호”

입력 2024-06-19 15:40 수정 2024-06-19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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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래소 코스닥시장위원회, 예심 효력 미인정
KRX 출범 이래 예심 승인 후 불승인은 첫 사례
최대주주 지위 분쟁 법적 소송 의도적 미기재
주관사 한투증권 "독립적 검사 접근 권한 없어"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한국거래소 서울사무소 전경. (사진=한국거래소)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한국거래소 서울사무소 전경. (사진=한국거래소)

유가·코스닥 기업공개(IPO) 사상 처음으로 상장예비심사(예심) 승인이 취소되는 사례가 발생했다. 기술성장기업(기술특례상장) 제도를 통해 다음 달 코스닥 시장 상장을 노리던 이노그리드의 상장 예심 승인 효력이 취소된 것이다.

코스피가 2년 4개월 만에 연고점을 경신하며 그동안 주춤했던 공모주 시장이 다시 활황을 보이려던 차에 또다시 투자자들의 신뢰도가 꺾이는 IPO 논란이 발생하면서 IPO 시장 거품 우려가 다시 불거지고 있다.

▲17일 서울 여의도에서 김명진 이노그리드 대표가 코스닥 상장을 앞두고 간담회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이노그리드)
▲17일 서울 여의도에서 김명진 이노그리드 대표가 코스닥 상장을 앞두고 간담회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이노그리드)

19일 한국거래소 코스닥시장위원회는 전날 시장위원회의 심의를 열어 이노그리드의 코스닥시장 상장예비심사 승인 결과 효력을 인정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거래소가 출범한 이후 상장 예심 단계에서 불승인이 발생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다.

2006년 설립된 이노그리드는 콘텐츠전송네트워크(CDN), 고성능컴퓨팅(HPC), 클라우드컴퓨팅 등을 개발한 클라우드 기술 기업이다. 지난 2월 첫 증권신고서를 제출한 이후 이달까지 무려 6차례 기재정정을 거쳤지만, 결국 코스닥 상장의 꿈은 좌초됐다.

이노그리드는 이날 개장 전 “코스닥시장 상장규정 제8조에 따라 회사의 상장예비심사결과 효력이 불인정돼 잔여 일정을 취소하고 철회신고서를 제출한다”고 철회신고서를 공시했다.

코스닥상장규정에 따르면 상장예심 효력은 ‘상장예비심사 결과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심사신청서의 거짓 기재 또는 중요사항 누락‘이 확인될 경우 인정되지 않을 수 있다.

이노그리드가 상장예비심사 신청서에 빠뜨린 내용은 최대주주의 지위 분쟁과 관련한 ‘소송 등 법적 분쟁 발생 가능성 위험’ 사항이다. 이노그리드 측은 상장 이전부터 이러한 내용을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거래소 심사 과정에서 의도적으로 알리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노그리드는 과거 최대주주였던 법인과 현 최대주주 간 주식 양수도 및 금융회사의 압류 결정에 관한 분쟁에 놓인 상태다. 전 최대주주는 지난 2019년 3월 진행된 이노그리드의 무상감자, 유상증자에 대해 주주 권리를 행사하지 못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전 최대주주는 2021년 지분 매각도 자신의 동의 없이 발생했다고 말했다. 이노그리드는 증권신고서에서 “위와 같은 사실관계와 관련해 구체적인 법적 분쟁이 발생하지는 않았고, 내·외부 법률검토를 통해 살펴본 결과 이러한 분쟁이 발생하더라도 당사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제한적”이라고 해명했다.

▲지난해 11월 서울 영등포구 한국금융투자협회에서 금융감독원 주관으로  열린 기업공개(IPO) 시장의 공정과 신뢰 제고를 위한 간담회 모습.
▲지난해 11월 서울 영등포구 한국금융투자협회에서 금융감독원 주관으로 열린 기업공개(IPO) 시장의 공정과 신뢰 제고를 위한 간담회 모습.

그러나 과거 최대주주와 관련한 경영권 분쟁, 주식 발행 전 주식 압류명령에 간접적으로 연관된 사안은 상장 심사 권한을 보유한 거래소 측에 사전에 알렸어야 했던 중대 사안이다. 거래소는 “이노그리드 측은 ‘상장예비심사 결과에 중대한 영향’을 사전에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중요사항’이 아니라고 판단해 상장예비심사신청서 등에 기재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노그리드는 이런 사항을 상장예비심사 신청서에 기재하지 않은 것은 물론, 상장 주관사인 한국투자증권에도 알리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투자증권은 발행사가 자의적 판단으로 주관사에 공개하지 않을 경우 강제성을 갖고 상장 주관 업무에 참여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한 ECM(주식발행시장) 관계자는 “지난해 파두, 틸론 사태를 겪으면서 실사 책임만 강조되고, 금융당국에서 쪼이기만 더 쪼이고 있다. 발행사가 마음먹고 감추려고 하면 주관사는 독립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검사 권한 자체가 열려있지 않아서 어쩔 수 없다”고 토로했다.

다만 이번 사태를 지난해 ‘뻥튀기 상장’으로 고평가 논란을 빚었던 파두, 대표이사 ‘배임 가능성’이 제기된 틸론과는 다른 시각에서 봐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예심 승인 이후일지라도 경영상 중대 사안을 사전에 발견했고, 사상 초유의 예심 효력 불인정이라는 결정을 내림으로서 투자자보호에 기여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한 IPO 기관 투자자는 “법적 분쟁에 얽혔다는 점에서 이노그리드와 가장 유사한 틸론 사태를 보면 틸론 측이 3심에서 패소 취지의 파기환송 판결이 나오기 전까지 시장에서 감지하지 못했다”며 “이번 사태는 예심 승인 이후에도 거래소가 투자상 중대 사안을 걸러내, 언제라도 예심결정을 번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라고 평가했다.

한편 이번 결정에 따라 이노그리드는 향후 1년 동안 상장예비심사를 신청할 수 없다. 지난 13일부터 수요예측에 참여했던 기관투자자들은 아직 주식이 배정되지 않은 상태이며, 일반투자자 대상 청약 시작 전으로 투자자 보호상의 문제는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거래소는 예비심사 승인 후 효력불인정으로 인한 시장혼란의 중대성을 감안해, 상장예비심사 신청제한 기간을 현행 1년에서 최대 3~5년까지 연장하거나 상장예비심사신청서 서식을 개정하는 등 재발 방지 방안을 검토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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