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허 변리사는 기술 분야에 따라 크게 기계, 화학, 전기전자 및 생명과학의 네 분야에서 전문 지식을 갖추고 특허 업무를 수행한다. 복수 분야를 다룰 수 있는 변리사도 있지만, 대개는 한 분야에서 전문적인 업무를 해낸다. 이는 의사, 변호사도 모든 치료 및 법률 상담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전문 분야가 따로 있는 것과 유사하다고 할 것이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사이 특허법인에서 전기전자 분야 변리사 채용이 몹시 어려운 실정이다. 대한변리사회 구인게시판에는 특허법인의 규모에 상관없이 많은 수의 전기전자 분야 변리사 채용 공고를 볼 수 있고, 이 중에는 채용이 완료되지 못해 재공고된 사례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특히, 필자 주변에서도 한창 왕성하게 일할 2년 내지 5년 차 전기전자 분야 변리사를 구인하기는 더욱 어렵다고들 한다.
전기전자 분야 변리사 구인이 어려워진 원인에는 사내 변리사(인하우스) 선호 현상, 스타트업 및 해외 기업 등 전자 회사 선택지가 더 많아져 전자 전공자의 변리사 시험 응시자 수 감소 등 다양한 원인이 있을 것이다. 특히 해마다 200여 명의 변리사가 배출되는 변리사 시험에서도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변리사 2차시험은 다양한 분야에서 전문성을 갖춘 변리사를 선발하기 위해 19개의 선택과목 시험을 시행한다. 이는 타 전문자격시험 대비 월등히 많은 숫자로, 종래에는 선택과목의 난이도 편차로 인한 형평성 논란이 있었다. 이 문제를 완화하기 위해 2018년부터 선택과목에서 50점 이상을 받으면 통과하고 최종합격자 결정에는 선택과목 성적을 반영하지 않는, 선택과목 ‘패스(PASS/FAIL)’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한국산업인력공단에서 공고한 2023년 변리사 시험 통계에 따르면, 전기, 전자, 컴퓨터 전공자들이 다수 선택하는 회로이론, 제어공학, 데이터구조론의 응시자 평균 점수는 70점 이상이고, 세 과목에서 70점 이상의 점수를 받은 응시자 수는 81명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런데 합격자 중 전기전자 전공자는 2022년 40명, 2023년 50명에 불과했다. 통계에 따르면, 2021년부터 2023년까지 변리사 합격 점수는 54점 내지 55점이었다. 또한, 50점부터 59점까지 합격 인원의 2배수 이상이 몰려있음을 볼 때, 합격점 약 5점 이내에서 200명 이상이 탈락한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더 세부적인 통계가 없어서 정확한 사실을 알 수는 없지만, 다수의 전기, 전자, 컴퓨터 전공자들은 2023년 전공과목에서 70점 이상의 우수한 점수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총점 몇 점 차이로 당락이 바뀌었을 것으로 보인다. 비록 많은 시험이 1~2점 싸움이라지만 전자 분야 IP 전문가가 시급하고 절실한 상황에서 이는 아깝고 아쉬운 결과다.
우리나라는 4월 25일 대통령을 의장으로 하는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에서 AI반도체를 포함한 3대 게임 체인저 기술 분야에서 글로벌 3대 국가로 도약하는 것을 목표로 투자를 강화하기로 의결하였다. 또한, 삼성전자 등 대기업뿐만 아니라, 퓨리오사AI, 리벨리온 등 국내 AI반도체 스타트업들도 수백억 내지 수천억 원 규모의 벤처투자를 받으며 인력이 급증하는 등 성장가도를 달리고 있다.
AI, 반도체 등 기술 분야는 미래 전략산업으로서 세계적으로 시장 규모가 크고 국가 간, 기업 간 주도권 확보를 위한 기술 경쟁도 치열하다. 특허청은 반도체 분야의 심사 인력이 부족함을 인식하고 이 분야 민간 퇴직 인력까지 활용하여 특허 심사관을 작년에 이어 올해 2월에도 임용하였다. 이러한 민관의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정작 현장에서 우리 기업들의 전자 분야 특허권을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미국, 유럽, 중국 등 글로벌 각축장에서 확보할 변리사가 수년째 부족하다는 점은 아쉬울 따름이다. 수험생들 간에 선택과목의 난이도 편차로 인한 형평의 문제를 해결함과 동시에, 업계에서 수요가 많은 기술 분야의 변리사를 수요에 맞게 배출할 수 있는 혜안이 필요한 시점이다.
최정현 특허법인 펜타스 파트너변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