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겸 SK그룹 회장이 "반도체 롤러코스터는 앞으로 계속될 것"이라며 "앞으로 자본적지출(캐펙스·CAPEX)을 얼마나 더 투자하고 얼마나 더 잘 갈 거냐 하는 것은 아직도 업계에 남아 있는 숙제 중 하나"라고 말했다.
최 회장은 2일 서울 중구 프레이저 플레이스 남대문에서 진행된 기자간담회에서 "작년에 (반도체 업황이) 너무 나빴기 때문에 올해 상대적으로 좋아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올해 좋아진 현상도 그리 오래 안 간다고 생각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메모리 반도체의 업황 회복으로 적자 탈출에는 성공했지만, 업턴(상승 국면)이 왔다고 안도할 일은 아니라는 취지로 풀이된다.
그는 지난해 7월 기자간담회에서도 반도체 시장에 관해 "업다운 사이클이 빨라질 뿐 아니라 진폭 자체가 커지는 문제점에 봉착하고 있다"며 "그래서 널뛰기가 훨씬 심해지는 형태로 발전하고 있다"고 진단한 바 있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7조 원이 넘는 적자에서 탈출해 올해 1분기에는 연결 기준 영업이익 2조8860억 원으로 '어닝 서프라이즈'(깜짝 실적)를 기록했다. 삼성전자 역시 지난해 적자가 15조 원에 달했지만, 올해 1분기 1조9100억 원의 이익을 내며 5분기 만에 반도체 사업이 흑자로 돌아섰다.
최 회장은 "반도체 미세화가 상당히 어려워졌기 때문에 미세화 과정 수요를 충족시키려고 생각하고, 공급을 늘리려면 라인을 더 건설하고 투자를 계속해야 한다"며 "그러다 보니 기술로 해결이 안 되고 캐펙스로 해결해야 하는 어려운 문제에 계속 부딪힌다"고 설명했다.
이어 "전부 자기 돈으로만 계속 투자하는 형태가 잘 안 나오니까 전 세계 다른 곳에서도 반도체 생산을 자기네 나라로 끌고 가고 싶어 하고, 그래서 보조금 얘기가 많이 나오는 것"이라며 "장기적으로 보면 우리나라도 캐펙스가 많이 들어가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보조금이 해외 투자의 직접적인 유인책이 되는지에 관해서는 "솔직히 보조금이 많은 것은 시스템이 안 돼 있거나 인건비가 비싸다거나 하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며 "우리나라는 다른 시스템은 아주 잘 갖춰져 있다"고 답했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와의 만남에 관해서는 "오랫동안 본 사람이고, 모여서 같이 인사하고 밥 먹고 나오다 보니 회사 연감에 사인해서 주더라"며 "자기네 제품이 빨리 나오게 우리 연구개발(R&D)을 빨리 서두르라는 정도의 얘기를 했다"고 했다.
최 회장은 최근 미국 실리콘밸리를 찾아 황 CEO와 함께 찍은 사진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공유한 바 있다.
현재 AI 반도체 시장의 필수품인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에서 주도권을 쥔 SK하이닉스는 같은 날 오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내년 공급 예정이던 HBM3E 12단 제품의 양산을 올해 3분기로 앞당기고, 6세대인 HBM4도 2026년에서 내년으로 1년 앞당겨 양산할 계획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배터리 업황에 대해서는 "전 세계적으로 그동안 들어왔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기후 변화 등이 퇴조되고, 경제적으로 더 효과가 있고 효율적인 방법으로 옮겨가고 있다"며 "하지만 이 트렌드도 오래 가지 않을 것이고 결국 장기적으로는 돌아올 것이라고 믿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전체 전기차가 캐즘 현상을 일으키니까 배터리, 그 밑에 있는 소재도 똑같은 공급망 안에서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상황"이라며 "그렇다고 전기차를 영원히 안 하고 없어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으니 지속적으로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현재 SK그룹의 사업 재편 방향에 대한 질문에는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았다. SK그룹은 현재 배터리 사업을 담당하는 SK온의 경쟁력 강화를 비롯해 그룹 내 사업을 점검하고 최적화하는 '리밸런싱'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2021년부터 대한상의를 이끈 최 회장은 지난 3월 대한상의 25대 회장으로 추대되면서 2027년 3월까지 3년간 회장직을 연임하게 됐다.
그는 "임기 동안 할 수 있는 일에 더 매진해서 올해는 가시적인 성과가 나기를 기대한다"며 "1기에서는 소통과 신기업가정신협의회(ERT) 등을 실험적으로 테스트하는 성격이 있었다면 올해는 더 집중해서 국민이 바라는 형태의 경제계가 되고 가능한 한 사회에 많이 기여하는 경제계가 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특히 사회에 만연한 '반기업 정서'를 완화하거나 개선하고 싶다고 했다.
최 회장은 "반기업 정서를 개선해 '나도 경제 활동을 할 거야, 기업을 할 거야'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신나게 열심히 도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보고자 한다"며 "제가 어디까지 만들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거기에 이바지하고 싶다"고 말했다.
오는 30일 22대 국회 개원을 앞둔 가운데 최 회장은 "지금 저성장의 여러 문제를 안고 있는데 이제 새로운 모색을 할 필요가 있지 않냐"며 "'과거 기조대로 계속 가면 대한민국이 괜찮은 겁니까'라는 질문을 전 사회에 해봐야 할 때"라고 진단했다.
그는 "여태까지 하던 방법론은 효과가 있었던 게 별로 없었고, 지금 있는 커다란 사회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없다"고 했다.
이어 "'내가 뭔가를 하겠다'고 생각하는 의지가 강한 사람들을 보면 비용은 상관없이 무조건 달성하겠다고 하는데, 경제적으로 어떤 임팩트를 주는지는 별로 생각을 안 할 때가 많다"며 "더 과학적이고 통계적인 접근법을 갖고 아무리 급해 보이는 일 같아도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사실을 같이 생각해서 포용적이고 합리적인 형태의 법과 규제 형태를 만들어낼 필요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미국 대통령 선거 결과가 미칠 영향에 관해서는 "선거를 하다 보면 누군가 증폭된 메시지를 내게 돼 있는데, 거기에 우리가 일희일비할 것은 아닌 것 같다"며 "꾸준히 미국과의 대화를 가져가면서 풀어야 할 문제들이나 장기적으로 같이 협력해야 할 문제들을 잘 끌고 가는 게 제일 좋은 답"이라고 말했다.
그는 중국과 협력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최 회장은 "수출도 해야 하고 경제협력을 많이 해야 하는 입장에서 중국은 우리에게 중요한 고객이고 판매처이고 협력처"라며 "경제 문제를 풀 때는 차가운 이성과 계산으로 합리적인 관계를 잘 구축해야 한다"고 했다.
대한상의는 9월 중국 베이징에서 중국국제경제교류센터(CCIEE)와 함께 '한중 고위급 경제인 대화'를 연다. 양국을 대표하는 기업인과 정부 인사들이 참여하는 '1.5트랙 대화 플랫폼'이다. 최근 최 회장은 중국을 찾아 대화 의제 설정을 위한 간담회를 하기도 했다.
그는 "우리는 혼자 살 수 있는 경제적 바탕이나 모델을 갖고 있지 않다"며 "상호 호혜적으로 이 문제를 풀어나가는 노력을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