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발언대] 고령화와 기후위기 시대, 쌀농사의 미래

입력 2024-04-0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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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값 때문에 온 나라가 시끄러웠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해 사과 수확량이 30%가량 줄어들면서 가격이 크게 올랐기 때문이다. 사과 생산이 줄어든 것은 더 이상 농사지을 수 없는 고령화된 농업인이 폐원하고, 지구온난화로 빈번한 자연재해와 병충해로 작황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그만큼 농업은 노동력과 자연에 의존하기 때문에 고령화와 기후변화가 민감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쌀도 예외가 아니다.

다만 논은 과수나 밭농사에 비해 생산 기반이 정비돼 있고 농기계가 대부분의 작업을 담당하기 때문에 비교적 쉽게 일할 수 있다. 더욱이 쌀은 국민들의 주식으로 다른 작물에 비해 판로 확보가 용이해 고령의 농업인은 선뜻 쌀농사를 내려놓지 못하고 있는 데, 이는 쌀의 구조적인 공급과잉을 심화시키는 하나의 요인이다. 정부는 작년부터 쌀 외에 식량자급에 도움에 되는 작물을 심는 경우 지원하는 전략작물직불제를 도입했지만 논에 다른 작물재배를 원활하게 하는 방안도 필요하다.

그중 하나가 들판 단위로 공동영농을 함으로써 규모화된 농장의 계획영농과 전문경영으로 생산비를 줄이고 소득을 높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당장 힘든 농작업에 시달리는 고령 농업인의 노고를 덜어 줄 수 있을 뿐 아니라 기술이나 자본, 판로 부족으로 타 작물 재배를 꺼리는 개별농가의 걱정을 들녘경영체가 해소해 보다 쉽게 작목전환에 도전할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하게 된다. 아울러 해마다 겪는 품목 쏠림에 따른 수급조절 문제를 해결하고, 식량자급률을 높이며 기후위기에도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들녘 중심의 공동영농이 새로운 것은 아니다. 정부는 대규모 영농을 통한 경영 효율화를 위해 이미 15년 전부터 쌀 농사를 중심으로 들녘경영체를 육성해 왔다. 들녘경영체란 50㏊ 이상의 집단화한 들녘의 농작업을 공동 수행하는 법인을 말하는데 전국적으로 617개 경영체가 논 면적의 14.1%인 10만여㏊를 담당하고 있다. 조사결과에 따르면 쌀 재배 들녘경영체는 개별영농에 비해 생산비를 14.5%나 절약한다고 한다. 최근에는 전략작물직불제와 함께 들녘경영체에 대한 재배기술 컨설팅, 공동작업 시설·장비, 그리고 배수개선과 선별·가공·유통시설 등 쌀 뿐만 아닌 다른 작물로의 사업 다각화를 위한 지원을 하고 있다.

이제 전국적으로 다양한 형태의 들녘 별 공동영농을 하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경북 상주의 나누리영농법인은 420명 회원들의 농지 1450㏊에 벼 732㏊와 콩 497㏊, 밀 66㏊ 등을 공동으로 생산하는데, 이렇게 생산한 콩의 일부는 마을에서 직접 메주와 된장, 간장으로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전북 익산 함라면 친환경작목반은 회원 60명의 230㏊에 벼와 밀, 보리 등을 친환경농법으로 공동영농하고, 계약을 체결한 아이쿱(ICOOP)생협에 전량 출하하고 있다. 경북 문경의 영순들녁 농가들은 영농법인에 땅을 위탁하고 공동영농으로 벼와 콩을 재배해 연말에 배당금을 받는다. 배당금은 3.3㎡당 3000원으로 직접 벼농사를 하는 것보다 높은 수입인데 직접 작업에 참여하면 별도의 인건비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이들 들녘경영체의 사례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기술과 경영능력은 물론 시설과 장비, 판로를 확보하고 있는 전문경영체를 통해 공동영농을 할 경우 고령으로 더 이상 농작업이 어려운 어르신들의 불편을 덜어 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규모의 경제와 일관작업 등으로 경영비를 절감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계획영농으로 작물별 수급조절은 물론 품종과 재배방법의 통일, 저탄소친환경농업의 도입 등으로 품질 고급화와 차별적 유통, 식량자급률을 높이는데도 기여할 수 있다. 아울러, 농작업에 참여하지 않는 고령농도 할 수 있는 손이 많이 가는 작물재배나 6차산업화를 통한 소득 다각화가 가능하고, 신규 취농자들에게 농작업 실습을 통해 경험을 쌓으면서 창업에 필요한 지식과 정보를 축적하는 기회를 제공할 수도 있을 것이다.

농업구조개선을 정책목표로 정한지 수십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영세고령농이 쌀에 편중된 농업에 종사하고 농업소득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사과산업이 알려 준 위기경보는 우리 농업구조가 달라져야 한다는 뜻이 아닐까? 위기가 곧 기회라는 말이 있듯이 농지를 들판단위로 묶어 규모화하고 전문경영체를 통해 공동영농을 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모색해 보자. 여건 변화에 대응하는 역량을 길러 주는 것이야말로 식량안보와 지속가능한 농업의 미래를 보장하는 핵심이라 믿기 때문이다. 다만 이 경우 혹여나 농업정책 대상에서 배제될 수 있는 고령농이나 은퇴농이 소외받지 않도록 사회안전망을 강화하는 것도 잊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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