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늘리려는 의대 입학 정원은 2000명이다. 2000명을 늘리면 현 의대 정원 3058명에서 5058명으로 늘어난다. 2000명으로 정한 데는 각 대학이 제출한 현재의 교육 여건과 기준을 유지하면서 추가로 가르칠 수 있는 인원 최소 2151명~최대 2847명에서 정부가 현장 실사와 전문가 협의를 거쳐 최소치보다 100명이 적은 2000명으로 최종 증원 규모를 정한 것이다.
정부는 3월 20일 대학별 증원 규모를 발표했는데 서울은 8개 의과대학(정원 826명)이 있지만, 증원은 0명이었다. 대신 지역거점 국립대에 총정원 200명 수준으로 배정했다.
정부가 2000명 증원과 함께 내세운 것은 4대 필수의료 정책패키지다. 여기서 핵심은 지역의료 강화다. 믿고 찾는 우리 동네 빅(BIG)5 병원을 육성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지역의료발전기금을 신설해 지방병원에 투자한다.
정부의 의료개혁에는 찬성한다. 다만 현실을 전혀 반영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우선 서울의 정원을 동결한 것을 보자. 가슴에 손을 얹고 답해보자. 지방에 사는 내 부모님이 어딘가 아프다고 한다. 일단 가까운 병원에 가서 건강검진을 할 것이다. 결과가 나왔다. 예를 들어 종양이 발견됐다. 종양이 암으로 커질지 그냥 놔둬도 되는 크기인지 의사가 얘기해준다. 이때 어떻게 선택할까. 아마도 대부분은 더 큰 병원, 흔히 말하는 서울의 빅5 병원에 가보자고 할 것이다. 어쩔 수 없다. 지방 병원은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건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다. 내 지인들의 사례를 보면 그게 맞는 선택이다.
한 지인은 지방 국립대병원에서 암 선고를 받았다. 평소 음주는 하지만 운동을 열심히 하는 편이라 선뜻 믿기지 않은 결과였다. 당장 서울 빅5 병원을 예약해 올라갔다. 결론은? 암이 아니었다.
또 다른 지인의 사례는 안타깝다. 웃으면서 병원에 걸어 들어간 어머니가 뇌사 판정을 받은 끝에 2주 만에 돌아가셨다. 길에서 넘어져서 근처 지방 국립대병원에 갔는데 의사가 뇌에 출혈이 있는 것을 발견하지 못해서 누워 있다가 끝내 뇌사 판정을 받은 것이다. 주변에서 의료사고라는 말이 많았지만, 지인은 어쩔 수 없다고 장례를 치렀다.
최근에 고위 공무원과 점심을 함께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전화가 왔다며 양해를 구하고 나갔다 왔다. 들어오면서 지인이 병원에 입원해야 하는데 빅5 병원 중 한 곳에 입원할 수 있도록 힘을 써달라는 전화였단다. 물론 병원장에게 바로 전화해서 민원을 해결해줬다. 친해서 그런 얘기까지 했겠지만 씁쓸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게 현실이다. 당장 내 부모님이 아프다면 명의를 찾을 수밖에 없고 그런 명의는 거의 90% 정도는 빅5 병원에 있다.
이런 현실을 얘기한 것은 지방 국립대병원에 의사 수만 증원해서는 결코 지역의료가 강화될 수 없다는 것이다. 예산을 투입해서 시설만 좋아진다고 의사 수준이 높아질까. 차라리 서울에서 명의가 지방으로 내려가거나 명의에게 제대로 배운 의사들이 지방에 내려오는 게 낫다.
실제로 최근 명의로 불리는 한 의사가 지방으로 내려왔는데 서울로 몰리던 환자가 분산되고 있다고 한다. 좋은 사례다. 이런 사례가 더 많아지는 게 진정한 의료개혁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