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성과 정신장애가 유전적으로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분당서울대병원은 명우재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와 원홍희 성균관대학교 삼성융합의과학원·삼성서울병원 교수 공동 연구팀(김혜진, 안예은, 윤주현 연구원)이 창의성과 정신장애 간의 유전 관련성을 연구한 결과를 공개했다고 13일 밝혔다.
창의성은 새로운 생각이나 개념을 발견하거나 기존에 있던 생각이나 개념들을 조합해 새로운 무언가를 생각해내는 능력이다. 예술, 건축, 과학 등 독창적인 사고를 요구하는 수많은 직업군에서 필요한 역량으로 꼽힌다.
창의성은 정신장애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역사적으로 천재로 불리는 과학자나 예술가의 상당수가 정신질환을 겪었다는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 실제로 여러 관찰 연구에서 예술가 집안에서 우울증이나 양극성장애가 흔하다는 점이 보고된 바 있다.
이에 연구팀은 창의성과 정신장애의 유전적 조성을 규명하기 위해서 영국 바이오뱅크(UK Biobank)에 참가한 유럽인들 24만여 명의 351개의 직업에 기계학습 기법을 적용해 얼마나 창의적인 직업에 종사했는지를 수치화했다.
이를 바탕으로 전장유전체연관성분석(genome-wide association study)을 포함한 다양한 유전체 연구를 시행한 결과, 직업에 기반을 둔 창의성 점수와 연관된 25개의 유전변이를 발굴했다. 관련 변이들이 뇌 조직 중 특히 해마와 대뇌 피질 발현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을 밝혔다.
이번 연구는 창의성과 정신장애의 복잡한 연관성을 유전체 수준에서 밝혀냈다는 점에 의의가 크다. 창의성과 연관이 있는 유전변이의 상당 부분이 실제로도 정신장애와도 연관성을 보였다. 대표적으로 창의성과 우울증은 서로 96%의 유전변이를 공유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유전변이가 창의성과 정신장애에 항상 같은 방향으로 영향을 주지는 않았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단지 정신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더 창의적이라거나, 창의적인 사람들이 정신장애에 취약하다는 속설과는 다른 결과다. 같은 유전변이가 개인별로 다르게 작용하는 기전을 밝힌다면, 창의성뿐만 아니라 정신장애의 유전적인 이해에 중요한 단서를 제공할 것으로 전망된다.
연구팀은 이번 연구를 통해 밝혀진 유전적인 요인을 통해 전체 창의성의 약 7.5% 수준을 설명할 수 있다고 봤다. 이를 기반으로 개인의 창의성을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설명이다.
명우재 교수는 “창의성에 대한 분자생물학적인 원인을 찾아냈을 뿐만 아니라, 창의성과 많은 유전변이를 공유하는 정신장애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연구결과”라며 “향후 정신장애의 원인을 규명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원홍희 교수는 “기존의 창의성 측정법은 대규모 코호트 연구에 적용하기 어렵다는 제약이 있었다”며 “이번 연구는 수십만에 달하는 대규모 코호트 참가자들의 직업 조사 결과와 기계학습 모델을 기반으로 창의성을 정의함으로써 대규모 유전 분석이 가능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밝혔다.
이번 연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연구재단이 추진하는 기초연구사업의 중견연구 지원사업, 신진중견연계사업, 보건복지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추진하는 치매극복연구개발사업, 서울대학교 헬스케어융합학과-분당서울대학교병원 공동연구사업의 지원으로 이뤄졌다. 연구 결과는 국제 정신의학 학술지 ‘정신의학연구(Psychiatry Research)’ 최근호에 게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