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이후 산업 위축과 함께 성인지 감수성도 '퇴행'
"팬데믹 이후 회복 중인 산업의 과도기적 특성 고려해야"
지난해 흥행 30위 안에 오른 영화들을 분석한 결과, 여성 캐릭터들이 양적으로 증가했지만 여전히 성별 고정관념을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영화진흥위원회가 7일 발표한 '2023년 한국영화 성인지 결산 보고서'에 따르면, 흥행 30위 작품 중('뽀로로 극장판 슈퍼스타 대모험' 제외) 벡델 테스트 통과 작품이 지난해보다 5.7% 증가했다. 여성 스테레오타입 테스트에 해당하는 작품 또한 5.5% 증가했다.
벡델 테스트란 1985년 미국의 여성 만화가 엘리슨 벡델이 고안한 '영화 성평등 평가 방식'이다. △영화에 이름을 가진 여성이 두 명 이상 나올 것 △이들이 서로 대화할 것 △대화 내용에 남성과 관련된 것이 아닌 다른 내용이 있을 것 등 세 가지 기준을 만족해야 한다.
여성 스테레오타입 테스트는 '여성이 전적으로 남성의 구출 혹은 구원에 의지하는가?', '과도하게 성애화된 자극을 위해서만 이용되는 여성이 존재하는가?' 등 총 7개 질문으로 구성된다. 질문 가운데 하나라도 해당한다면, 고정관념화된 여성 캐릭터가 존재한다고 평가한다.
지난해 벡델 테스트를 통과한 작품은 '잠', '타겟', '용감한 시민', '옥수역귀신', '밀수', '3일의 휴가', '달짝지근해: 7510', '유령', '싱글 인 서울', '거미집', '콘크리트 유토피아', '소년들' 등 총 12편이다. 조사 대상작 29편 가운데 41.4%를 차지한다.
여성들만 주인공으로 내세운 영화는 김해숙ㆍ신민아 주연의 '3일의 휴가', 김혜수ㆍ염정아 주연의 '밀수' 등 단 두 작품뿐이다. 또 여성이 연출한 영화는 임순례 감독의 '교섭' 밖에 없다. '교섭'은 벡델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했다.
남성 주연 영화에서 벡델 테스트를 통과한 비율은 전체 23편 중 6편(26.1%)에 불과했다. 2022년 남성 주연 영화 24편 가운데 8편이 벡델 테스트를 통과해 33.3%를 기록한 것과 비교하면 지난해 벡델 테스트 통과율은 낮아졌다.
여성 스테레오타입 테스트에 해당하는 작품은 총 13편(44.8%)이다. 테스트 해당작은 2021년까지 하락세를 보였으나 이후 2년째 상승했다. 지난해에는 최근 5년간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테스트 가운데 가장 많이 해당하는 질문은 '여성이 거의 남성으로만 이루어진 집단에서 구색 맞추기나 감초로 기능하는가?'였다. 이 질문에 해당하는 영화는 '서울의 봄', '범죄도시3', '노량: 죽음의 바다', '비공식작전', '1947 보스톤', '대외비', '리바운드', '더 문', '카운트' 등 총 9편이다.
위 영화들에서는 여성 캐릭터가 상당히 적은 분량으로 등장한다. 대다수가 남성 주연과의 이성애 혹은 가부장제 범주 안에서 관계를 맺고 있다. 남성 캐릭터의 행위를 응원하는 전통적인 여성성에서 벗어나지 못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셈이다. '서울의 봄'에서 이태신(정우성)의 아내 역할이 대표적인 예다.
이 같은 결과는 일차적으로 여성 캐릭터들이 양적 차원에서 증가한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스테레오타입 테스트 해당작 역시 증가해 다수의 여성 캐릭터들이 성별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편 OTT 오리지널 영화 6편 가운데 여성이 연출한 영화는 없었다. 여성 주연 영화는 '정이',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 '길복순', '발레리나', '용감한 시민' 등 5편이 있다. 벡델 테스트는 5편 모두 통과했다.
영진위는 "올해 성인지 통계 분석은 팬데믹 이후 회복 중인 산업의 과도기적 특성이 반드시 고려될 필요가 있다"라며 "한해의 변화를 확정적으로 진단하기보다 팬데믹 이전과의 비교, 팬데믹 기간 내 추이를 다각도로 검토하여 전체적인 추세 속에서 결과값을 의미화해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