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의대 정원 확대 정책을 발표한 이후, 정부와 의사간 갈등이 악화하고 있다. 전공의 집단 사직에 이어 인턴과 전임의들도 계약을 포기하며 의료 공백에 대한 우려가 커졌다. 정부는 업무에 복귀하지 않은 전공의에 대한 처분을 강행하는 동시에 비상진료체계를 구성해 대응할 방침이다.
5일 의료계에 따르면, 아직 전공의들의 복귀 움직임은 미미하다.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4일 오후 8시 기준 주요 100개 수련병원을 점검한 결과, 신규 인턴을 제외한 레지던트 1∼4년 차 9970명 중 90.1%에 해당하는 8983명이 근무지를 이탈했다”고 밝혔다.
전공의들의 빈자리를 책임져준 전임의들의 이탈도 보고되고 있다. 삼성서울병원·서울대병원·서울성모병원·서울아산병원·세브란스병원 등 서울 대형 상급종합병원에서도 일부 전임의의 계약 포기가 발생하면서 의료공백이 심화할 가능성이 커졌다.
한 대형병원 관계자는 “전임의 중 일부가 사직 의사를 밝히고 있긴 하다”면서 “구체적인 수치는 확인할 수 없다. 또 사직의 이유가 의대 정원 확대에 반대하기 위한 것인지, 개원가로 가기 위한 것인지도 알 수 없다. 이전에도 계약을 취소하는 사례가 있었다. 수치를 일일이 확인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다른 대형병원 관계자는 의대 정원 확대에 반대하는 일부 전임의들의 사직이 보고되고 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예년과 달리 전임의들의 사임 의사가 보고되고 있다. 의대 정원 확대에 반대하기 때문으로 판단한다”며 “전임의들을 최대한 설득해 진료 공백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설득하고 있다”고 말했다.
인턴들의 임용 포기도 이어진다. 서울대병원의 인턴 합격자 80~90% 상당이 수련계약을 맺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으며 이외의 병원에서도 인턴에 합격한 의대 졸업생 대다수가 임용 포기각서를 제출하며 임용 취소를 요청하고 있다. 한 대학병원 관계자는 “인턴들의 임용 포기는 남은 사람들에게 업무 부담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현직 의대 교수의 사직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윤우성 경북대병원 혈관외과 교수는 4일 SNS를 통해 “지금 의료문제에 대해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토론이 이뤄지지 않고 있으며, 정부는 여론몰이에만 몰두해 있는 상황”이라며 “외과 교수직을 그만두겠다. 이미 오래전 번아웃도 됐고, 매일매일 그만하고 싶다고 생각하며 살고 있다”라고 밝혔다.
배대환 충북대병원 심장내과 교수도 5일 SNS를 통해 “다른 길을 찾도록 하겠다”라며 “면허를 정지한다는 보건복지부 발표와 현 정원의 5.1배를 적어낸 모교 총장 의견을 듣자니 동료들이 다시 들어올 길이 요원하다는 생각이 든다”라는 게시글과 함께 사직 의사를 밝혔다.
같은 날 강원대에서는 의과대학 교수들의 삭발 투쟁까지 벌어졌다. 이 학교 의대 교수 10여 명은 이날 오전 의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교수와 학생 등 구성원 의사에 반하는 일방적인 (의대 정원)증원 방침에 반대한다”고 밝히며 삭발식을 진행했다.
의사 단체들은 정부가 무리한 정책을 강행하며 의료체계의 위기를 부추기고 있다며 날을 세웠다.
주수호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회 언론홍보위원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대학과 수련병원에서 의학 교육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말은, 앞으로 새로운 의사와 전문의가 배출되지 않는 국가적 재앙 상황에 직면했음을 의미한다”라며 “정부는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는 의사들이 의업을 포기하게끔 강제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공의들의 공백이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이지만, 정부도 양보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앞서 정부는 지난달 29일까지 복귀 시한으로 잡고, 4일까지 복귀한다면 법적 책임을 묻지 않겠다고 밝혔지만, 전체 이탈자의 6% 수준인 565명만 복귀했다. 명령 불이행서를 받은 전공의 7800여 명에 대한 면허 정지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전날 조규홍 보건복지부(복지부) 장관(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제1차장)은 “무슨 이유든 의사가 환자 곁은 집단으로 떠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행위”라며 “정부는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법률에 따른 처분을 망설임 없이 이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복귀 전공의에 대한 행정처분 사전통지서도 이날부터 발송하기로 했다. 김국일 복지부 비상대응반장은 “행정력이 가능한 범위에서 우선 통지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의료 공백을 고려해 동시에 처분을 내리지는 않을 방침이다.
박민수 복지부 제2차관은 “최악의 상황에 대응할 수 있는 비상진료체계를 구성하고 있다”라며 “전임의들은 현장에서 큰 노력을 하고 계시고, 재계약률도 상당히 올라왔으며 의대 교수님들도 끝까지 자리를 지켜주실 거라 믿는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