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후 핵연료 저장시설이 6년 뒤면 포화상태에 이를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가운데 이에 따른 원전 가동 중단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한국수력원자력은 사용후 핵연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5월 말로 임기가 끝나는 21대 국회에서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관리 특별법'(고준위 특별법) 제정안이 통과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황주호 한수원 사장은 20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사용후핵연료특별법 관련 추진현황에 대해 설명하고 고준위 특별법 제정 필요성을 알렸다.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은 원자력 발전을 하면 필연적으로 나오는 사용후핵연료를 말한다. 일정 기간 높은 열과 방사능을 배출하기 때문에 밀폐공간에서 관리해야 한다.
원전에서 사용한 방호용품이나 기자재·부품 등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은 2015년부터 운영에 들어간 경주 방폐장으로 이송해 관리하고 있지만, 아직 고준위 방폐장 부지선정 절차조차 시작하지 못한 상태다.
고준위 방폐장이 없다 보니 원전의 필연적인 부산물인 고준위 방폐물은 원전 내에 쌓이고 있다. 1978년 고리원전 1호기 상업 운전이 시작된 이래 국내 원전에 쌓인 고준위 방폐물은 1만8900톤에 달한다. 현재와 같은 추세라면 한빛원전을 시작으로 2030년부터 순차적으로 임시 저장 시설도 포화 상태에 이르게 된다.
고준위 방폐장 설립을 위한 노력은 긴 시간 이어졌지만, 결실은 맺지 못했다. 1983년 이후 9번의 부지 선정을 실패했다.
한수원은 원전 내 사용후핵연료 포화 임박으로 저장시설 확보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건식저장시설의 건설과 인허가가 늦어지면, 사용후핵연료의 관리 비용 증가와 안정적인 전력 생산 위협으로 결국 국민의 전기요금 인상으로 이어진다는 설명이다.
특히, 주민수용성 문제도 우려스럽다. 현재 원전 소재 지역은 원전 부지 내 저장시설의 영구화 방지 및 사용후 핵연료의 조속한 반출을 위해 특별법 제정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한수원은 공모 절차, 주민투표 등을 담은 특별법 제정은 방폐장 건설의 선결 조건으로 부지선정에서 건설, 운영까지 정부 정책의 신뢰성을 확보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한국 원전의 수출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도 특별법 제정은 시급한 문제다. 특별법 제정으로 유럽 각국에 수출을 위한 EU 택소노미 및 한국형 녹색분류체계(K-택소노미) 인정기준을 충족할 수 있다. 이는 한국형 원전의 사용후 핵연료 관리의 기술력 확보를 통한 수출요건 충족으로 이어진다.
현재 세계의 원전 주요국은 처분시설 확보를 추진 중이다.
핀란드는 2025년 세계 최초로 고준위방폐장은 운영할 예정이고 스웨덴은 2022년 건설 허가를 취득했으며, 프랑스는 지난해 1월 건설 허가를 신청했다. 중국과 러시아 역시 부지를 이미 확보한 상태고 일본과 독일은 부지 선정을 진행 중이다. 원전 상위 10개국 중 부지선정에 착수하지 못한 국가는 한국과 인도뿐이다.
고준위 방폐장 건립을 위한 특별법 제정 시도는 10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다.
박근혜(2015년)·문재인(2021년) 정부에서 두 차례 실시한 공론화에 참여한 6만1000명의 전문가, 지역 주민, 일반 국민은 고준위 방폐물의 안전한 관리를 위한 특별법 제정을 정부에 권고했다.
20대 국회에서 정부(2016년)와 우원식 의원(2018년)이 고준위 방폐물관리 특별법, 신창현 의원(2016년)이 중간저장시설 부지선정법을 발의했지만, 제대로 논의되지 못한 채 자동폐기되고 말았다.
21대 국회 들어서도 고준위 특별법안 3건과 방사성폐기물관리법 전부개정안 등 총 4건의 법안이 발의됐으나,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국회 상임위 법안소위조차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앞서 원전 부지 내 저장 시설 영구화 우려로 인한 지역 주민 반발, 미래세대 부담 전가로 인한 사회적 갈등 유발 등을 고려할 때 유치 지역 지원 방안 등을 규정한 고준위 특별법 제정이 절실한 상황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황주호 한수원 사장은 "21대 국회에서 고준위 특별법이 통과되지 않으면, (사용후 핵연료 문제 해결을 위한) 시간이 많이 지체된다"라며 "사용후 핵연료 관리는 국민적 공감대하에서 추진되는 사안으로 고준위 특별법 제정을 위해 최대한 국회를 설득하는 등 할 수 있는 모든 부분에서 노력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