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래 칼럼] ‘국민은 알 필요 없다’는 가공할 발상

입력 2024-02-13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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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앞두고 포퓰리즘공약 쏟아져
천문학적 비용에 재원은 설명없어
국민주권 무시…유권자들 깨어나야

여당에서 수도권 일부 도심의 철도를 지하화한다는 발표에 야당은 전 철도의 지하화를 공약하고 나섰다. 하지만 지상 철도 1km 지하화에 약 4000억 원의 재원이 소요된다는 사실을 아는 국민은 많지 않을 것이다.

선거의 3대 요인 중 하나인 공약은 인물, 구도보다 선거를 더욱 포퓰리즘에 빠지게 한다. 대표적인 것이 복지 포퓰리즘이다. 여기에 가장 피부에 와 닿는 현금 살포가 결합하면 포퓰리즘은 선거에서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4년 전 총선 때 코로나 전 국민 지원금과 지난 대선 때 나온 청년 기본소득 공약이다. ‘복지’는 예외적인 약자의 생존적 결핍과 필요를 충족시켜 주는 공적 개념이다. 이에 해당하는 사람들에게 복지 수혜가 예외 없이 적용돼야 한다는 원리가 복지의 보편성이다. 그러나 선거에 동원되는 포퓰리즘 일환으로 보편성이 전 국민을 복지정책의 대상으로 둔갑시켜 버리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보편성’ 왜곡은 집합적 사회주의를 근거로 한 발상으로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는 하이에크의 충고를 새겨야 한다.

정작 문제는 선거 때 정치인들이 재원 마련 대책을 설명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복지정책은 공공정책이므로 국가 재원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선거로 권력을 장악하려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으려는 후보자들은 국민의 혈세로 조성되는 재정을 쌈짓돈처럼 남발하면서 국가를 파탄케 하는 ‘공유지의 비극’의 실상을 유권자들에게 아예 설명하지 않는다.

이번 총선 정국에서 다시 붉어진 철도 지하화 문제는 윤 대통령의 대선 공약으로 이미 법제화된 사안이다. 이 사업에만 예산이 23조 8000여억 원으로 추산된다. 여기에 여당 대표의 ‘도심 단절 철도 구간’ 지하화에 정부 추산 50조 원의 재원이 필요하다는 상황에서 야당의 ‘모든 도심 철도 구간’ 지하화에는 얼마의 천문학적 재원이 더 요구되는지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또한 사탕발림 지역구 공약은 무턱대고 남발하면서 국가 미래를 가를 대책은 유권자에게 아예 언급하지 않는다. 이를테면 OECD 국가 중 가장 낮은 담뱃값 인상 대책, 지난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인한 한전의 엄청난 적자 해소를 위한 전기요금 인상 방안, 경쟁력 있는 대학 교육을 위한 등록금 현실화, 연금 개혁과 건강보험 등 국가재정에 대하여 침묵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후보자들의 공약이 구체적이고 현실성 있는 것이 아니라 상당히 이상적이고 추상적인 메시지로 포장된다. 자유민주주의는 현실 정치에서 최선을 선택할 수 없어서 차선(次善)을 선택할 수 있도록 고안된 체제이다. 그러나 이를 악용하여 이상향을 연상시키는 포퓰리즘 공약으로 일관하면 유권자의 판단이 흐려지게 마련이다. 뿐만 아니라 절차를 무시하는 독재와 같은 악을 방지한다는 의미의 차악(遮惡)을 위한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 유권자는 차선도 아닌 후보들의 비호감 비교를 통한 차악(次惡)을 찾아야 하는 딱한 처지에 놓이게 된다.

유권자들의 이러한 고난한 처지는 ‘국민은 알 필요가 없다’라는 몇몇 정치인들의 끔찍한 발상에서 비롯된 결과다. 4년 전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주도했던 정의당 심상정 의원이 했던 이 말은 얼마 전 선거제를 심의하던 민주당 허영 의원에 의하여 부활하였다. 이 참혹한 말만 되살아난 것이 아니라 전권을 쥔 야당 대표의 ‘결단’에 의하여 한동안 잊었던 그 기이한 선거방식도 되살아났다.

공약의 재원 마련 방안과 국가권력의 근간을 정하는 선거제도를 국민이 알 필요가 없다는 언사는 그 자체가 국민주권과 선거권 등을 천명한 헌법을 부정하는 일이다. 왜냐하면 ‘국민은 알 필요가 없다’는 언사는 ‘표를 던지는 사람은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하며, 표를 세는 사람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잔인한 공산독재자 스탈린의 말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국민은 알 필요가 없다’는 언사가 단순히 ‘묻지 마’ 발상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는 총부리보다 투표함에서 죽는다’는 어느 학자의 말에 비추어 볼 때 ‘권력은 총부리에서 나온다’는 마오쩌둥의 말보다 더 가공(可恐)스럽다는 사실을 유권자들은 결코 지나쳐 버려선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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