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농단 재판 핵심이었던 ‘직권남용’…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입력 2024-02-10 11:00 수정 2024-02-10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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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농단 의혹,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몸통’ 결론
주요 쟁점인 재판개입은 무죄…“직권이 없어 남용도 없다”
재판부별 직권남용 해석 엇갈려…“상급심에서 정리 필요”

▲ '사법농단' 핵심으로 지목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 '사법농단' 핵심으로 지목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7년 가까이 나라를 뒤흔든 ‘사법농단’ 의혹이 3인자인 임종헌 법원행정처 차장에게 일부 책임을 묻는 것으로 일단락됐다. 핵심 줄기였던 재판 개입 혐의에 대해선 ‘재판에 개입할 직권이 없어서 남용할 수 없다’는 논리가 적용돼 단 한 건도 유죄로 인정되지 않았다.

다만 일부 혐의에 대해선 1인자였던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임 전 차장의 재판부가 엇갈린 판단을 내리면서, 상급심에서 정리될 것으로 보인다.

10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1부(이종민 부장판사)는 지난달 26일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기소된 양 전 대법원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양 전 대법원장의 판결문에는 임 전 차장 이름이 4000번 이상 언급되며 임 전 차장의 직권남용을 지적했다.

같은 법원 형사36-1부 (김현순 부장판사)는 5일 임 전 차장에게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국가가 부여한 사법행정권을 사유화해 특정 국회의원이나 청와대를 위해 쓴 것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고 판시했다.

애초 사법농단 의혹의 핵심은 ‘재판 개입’과 ‘판사 블랙리스트’였다. 임 전 차장 재판부는 두 가지 모두 직권남용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봤다. 그러면서 “사법농단 의혹 대부분은 실체가 사라진 채 행정처 심의관에게 부적절한 지시를 한 혐의만 남게 됐다”고 설명했다.

즉 특정 국회의원들의 공직선거법 위반 등 사건을 심의관에게 검토하라고 지시한 행위, 통합진보당 지역구 지방의회 의원 상대 제소 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한 행위 등 임 전 차장의 단독 범행이 사법농단 의혹에서 드러난 실체일 뿐이란 얘기다.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 등 각종 재판에 개입했다는 혐의에 대해선 “개입할 직권이 없거나, 직권남용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양 전 대법원장 재판부의 ‘다른 법관의 재판에 개입할 권한이 없어 직권남용도 성립되지 않는다’는 논리와 같은 맥락이다.

이창민 민변 사법센터 변호사는 “개인마다 직권이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직권이 포괄적 범주 내에 해당한다는 확고한 법리는 없다”면서도 “상급자가 하급자에게 위법‧부당한 지휘를 할 수 있는 실질적 직권이 있었고, 그것이 재판 개입이라는 형태로 남용됐다고 해석하는 게 맞다”고 주장했다.

이창현 한국외대 로스쿨 교수는 “재판부가 전권을 행사한다고 하지만, 법원장이나 대법원장이 사실상의 권한 행사를 할 수도 있다”며 “권한이 실행되고 남용됐다면 직권남용으로 해석하는 게 의미에 부합한다”고 말했다.

▲ 이른바 '사법농단' 재판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2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 이른바 '사법농단' 재판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2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재판부가 직권남용죄의 해석을 달리한 부분도 있다. 임 전 차장이 서기호 전 국회의원 연임부적격 결정취소소송 관련 서울행정법원 수석부장판사 등에게 의견을 전달한 행위에 대해 양 전 대법원장 재판부는 “재판개입이 인정된다”고 봤다. 반면 임 전 차장 재판부는 “재판에 관여할 직권이 없다”며 무죄로 판단했다.

또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처분 사건에서 고용노동부의 재항고이유서를 심의관에게 작성‧검토 지시한 혐의에 대해 임 전 차장 재판부는 직권남용죄에 해당한다며 유죄를 선고했다. 이와 달리 양 전 대법원장 재판부는 임 전 차장의 행위가 직권남용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임 전 차장이 국제인권법연구회·인권과 사법제도 소모임(인사모) 와해를 위해 대응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한 부분에 관한 판단도 엇갈렸다. 검찰은 상고법원 도입 반대 등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히는 이들 모임을 양 전 대법원장 등이 없애려 했다고 보고 있다.

양 전 대법원장 재판부는 “법관 표현의 자유 및 연구 자유를 침해하는 내용의 대응방안을 검토하도록 한 것은 위법·부당한 지시”라고 했다. 반면 임 전 차장 재판부는 “직권남용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일부 해당하는 경우에도 심의관이나 법관에게 의무 없는 일을 시킨 건 아니다”라고 봤다.

엇갈린 해석은 상급심에서 정리될 것으로 보인다. 이 변호사는 “양 전 대법원장, 임 전 차장뿐 아니라 다른 사법농단 피고인들의 판결도 전반적으로 어긋나있다”며 “재판부에 따라 쟁점에 대한 판단이 다른데, 상급 법원에서 정리가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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