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보유 현황’ 자체는 공무원 직무수행 능력과 무관
“법적 근거 없는 주택조사에 불성실했다고 징계 못해”
단지 다(多)주택자라는 사유만으로 공무원 승진 임용에서 배제시킨 지방자치단체의 처분이 위법하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공무원의 ‘주택보유 현황’ 자체가 공무원의 직무수행 능력과 연관되는 도덕성 및 청렴성 등을 실증하는 지표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대법원 2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승진심사 과정에서 주택보유 현황을 허위로 신고한 지방공무원 A 씨가 ‘강등’이란 징계 처분을 받자, 경기도지사를 상대로 그 취소를 구한 상고심에서 “이 사건 처분이 재량권을 일탈‧남용하지 않았다고 한 원심 판결을 파기‧환송했다”고 28일 밝혔다.
대법원은 “공무원이 거주와 무관하게 시세 차익만을 목적으로 주택용 부동산에 관한 투기행위를 했다거나 부정한 자금으로 부동산을 매수했다는 등의 사정은 공무원의 직무수행 능력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도덕성‧청렴성 등을 부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요소가 될 수 있지만, 단순히 다주택 보유 여부와 같은 공무원의 ‘주택보유 현황’ 자체가 공무원의 직무수행 능력과 관련되는 도덕성‧청렴성 등을 실증하는 지표에 해당한다고 볼 수는 없다”라고 지적했다.
이재명 지사 시절 경기도는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관한 도민 신뢰를 얻고자 2020년 12월 7~10일 4급 이상 고위 공직자에 대한 주택보유 조사를 실시했다. 같은 달 17~18일 이틀간은 4급 승진 후보자(5급)에 대해서도 주택보유 조사를 이어갔다.
지방행정사무관(5급)으로서 4급 승진 후보자였던 A 씨는 당시 주택 2채와 오피스텔 분양권 2건을 보유하고 있었음에도, 주택보유 조사담당관에게 주택 2채만 보유 중이라는 내용의 답변서를 제출했다.
이듬해인 2021년 2월 초 지방서기관(4급)으로 승진했는데, A 씨와 함께 주택보유 조사에 응한 4급 승진 후보자 132명 가운데 다주택 보유자로 신고한 35명은 모두 4급으로 승진하지 못했다.
경기도는 그해 6월 A 씨가 오피스텔 분양권 2건을 고의적으로 누락해 주택 신고를 한 사실을 적발, “허위 자료를 제출해 인사과 업무에 부당한 영향을 줬다”며 징계 의결을 요구했다. 경기도 인사위원회는 같은 해 7월 혐의 내용이 인정된다며 A 씨 강등 징계를 의결했다. 경기도는 이를 근거로 그 다음 달인 8월 강등 징계 처분했다. 이에 불복한 A 씨는 소청 심사를 청구했으나 기각되자 행정소송을 냈다.
재판에서는 지방공무원에 대한 지자체장의 징계 처분이 재량권 한계를 넘어 위법한지가 쟁점이 됐다.
1심 법원은 원고 승소 판결했다. 징계 사유는 인정되지만 강등이라는 처분이 지나치게 과도해 위법하다고 봤다. 반면 2심은 원고 패소로 1심과는 정반대 결과가 나왔다. 원심 재판부는 “인사 공정성을 침해하는 등 비위 정도가 중하다”면서 “징계 사유가 인정되고, 징계 양정에 있어서도 강등 처분이 재량권을 일탈‧남용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이 같은 원심 판결을 깨고 사건을 수원고등법원에 돌려보냈다. 특히 대법원은 법령상 근거 없이 공무원에 대해 주택보유 현황을 아무런 제한 없이 조사할 수 없다고 꼬집었다.
대법원은 “공무원이 법령상 근거가 없는 주택보유 조사에 불응하거나 성실히 임하지 아니하였다는 사정만으로는 지방공무원법 제48조에서 정한 성실의무를 위반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며 “만약 법령상 근거 없이 이뤄진 주택보유 조사에 성실히 임하지 아니한 것이 징계 사유가 될 수 있다면, 이는 법률상 근거 없는 부당한 지시에 대해서도 공무원의 복종의무가 있음을 전제로 하는 것이므로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다”라고 설명했다.
지방공무원법 48조는 ‘모든 공무원은 법규를 준수하며 성실히 그 직무를 수행해야 한다’고 성실의 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대법원 관계자는 “지방공무원 임용권자가 5급 공무원을 4급 공무원으로 승진 임용하는 경우 법령상 근거 없이 직무수행 능력과 무관한 요소로서 근무성적평정‧경력평정 및 능력의 실증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려운 사정을 승진 임용에 관한 일률적인 배제 사유 또는 소극 요건으로 삼을 수 없다는 점을 최초로 명시했다”라고 평가했다.
박일경 기자 ekp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