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용 목적으로 개를 사육·증식·도살하는 것을 금지하는 ‘개 식용 금지법’이 9일 국회 문턱을 넘은 가운데, 번식 공장에서의 동물 학대를 막는 내용을 담은 '한국판 루시법'이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다만, 법안을 두고 동물단체와 업계가 맞불 집회를 벌이는 등 찬반이 팽팽한 상황이다.
10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 위성곤 의원은 지난해 11월 반려동물 생산업자·판매업자 등 영업자에 대한 관리를 강화하는 내용의 '동물보호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개정안은 동물판매업자의 준수 사항에 개·고양이의 판매 금지 월령 기준을 기존 2개월에서 6개월 미만으로 규정하고 동물을 판매하는 경우에 구매자를 만나 직접 전달하도록 하며, 경매를 통한 거래의 알선·중개를 금지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또한, 동물생산업자의 준수 사항에 월령이 60개월 이상인 개·고양이의 교배·출산을 금지하고, 월령이 6개월 이상인 동물 총 100마리를 초과 사육 금지하는 내용도 추가했다. 현행법은 월령이 12개월 미만인 개·고양이의 교배·출산 금지, 월령이 2개월 미만인 개·고양이의 판매 금지 등을 규정하고 있다.
해당 법은 '한국형 루시법'으로도 불린다. '루시법'은 영국의 한 사육장에서 구조된 강아지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2013년 영국의 사육장에서 구조된 루시는 6년간의 반복된 임신과 출산으로 척추가 휘고 뇌전증과 관절염을 앓다 사망했고, 이러한 번식장 학대를 없애기 위해 '루시법'이 제정됐다. 이에 따라 영국은 펫숍에서 6개월령 미만의 강아지와 고양이 판매가 금지됐으며, 전문 브리더에 의해 번식된 2개월령 이상의 동물만 어미와 함께 있는 상태에서 직접 대면에 의해서만 판매할 수 있게 됐다.
위성곤 의원은 작년 11월 동물권행동 카라 등 동물단체와 함께 연 기자회견에서 "한국형 루시법의 목적은 수익성만을 위한 동물 번식을 지양하고 동물 복지를 강화하자는 것"이라며 "법이 통과되면 수익만을 노리는 반려동물의 무분별한 번식과 동물 학대가 줄어들 것이고, 태어난 지 몇 개월도 되지 않은 아기동물들이 돈에 의해 어미를 떠나는 일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전국에 동물생산업으로 등록된 합법 동물생산업장은 총 2019곳이다. 농식품부는 무분별한 동물 번식 및 판매 행위를 차단하기 위해 동물생산업을 신고제에서 허가제로 전환하고, 불법 운영 적발 시 허가를 취소하는 등 관리 규정을 강화한 동물보호법 일부 개정안을 2017년 3월 공포하고, 이듬해 시행했다. 다만, 동물생산업 허가 과정이 간단하고, 인력 문제 등으로 인해 단속이 어려운 한계가 존재해왔다.
한편, 국회에서는 여야를 가리지 않고 번식장에서의 동물 학대를 막기 위한 법안이 줄이어 발의되고 있다. 국민의힘 서정숙 의원은 지난해 12월 동물생산업자로 하여금 월령이 60개월 이상인 개와 고양이는 교배·출산시키지 않도록 하는 '동물보호법' 개정안을 발의했고, 더불어민주당 송옥주 의원은 같은 달 소유자 등이 동물에게 적합한 사료와 물을 공급하도록 하는 노력 규정을 의무화하고 5일 이상의 격리 기간을 법률에 규정하는 내용의 동물보호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동물보호법을 두고 여야가 같은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동물생산업계에서는 루시법에 대해 '입법살인'이라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어 논의가 난항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앞서 지난 6일 동물보호단체와 동물업체는 위 의원의 의정보고회가 열린 제주 서귀포학생문화원 앞에서 맞불 집회를 벌였다. 동물권 행동 카라 등 동물보호단체로 구성된 '루시의 친구들'은 이날 "착취와 학대, 돈벌이에 기반한 반려동물 산업을 근본부터 바로잡기 위해 루시법은 반드시 통과돼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법안에 반대하는 '전국반려동물산업단체 비상대책위원회'는 "한국형 루시법 발의는 동물이권단체의 마녀사냥을 합법화시켜주는 펫산업 종사자에 대한 '입법테러'이자 '입법살인'"이라며 "10만 반려동물산업 종사자들은 무고한 국민을 범죄자로 만들고 생계 기반조차 철저하게 붕괴하는 악법 중의 악법 루시법을 즉각 폐기할 것을 요청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