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 풍경] 개원 의사의 새해

입력 2024-01-10 05:00
  • 가장작게

  • 작게

  • 기본

  • 크게

  • 가장크게

개원의들이 월초에 꼭 하는 것이 있다. 그건 청구라는 작업이다. 우리나라 의료보험체계는 총 진료비의 30%를 환자 본인이 부담하고 나머지 70%를 보험공단에서 의료 기관에 지급하는 시스템이다. 청구란 70%의 의료비를 받기 위해 심평원에 지난 한 달 동안 우리 의원에서 진료한 내역을 보내는 작업이다. 덕분에 지난 한 달 동안의 의무 기록을 검토한다. 미비한 병명을 기입하고 특별한 검사와 투약을 해야 하는 사유들을 첨부한다. 대학병원이나 큰 병원에서는 청구 작업만 맡아서 하는 부서가 있지만 개원의들에게는 오롯이 혼자 감당해야 하는 몫이다. 때론 귀찮기도 하고 하기 싫을 때도 있지만 70%의 의료비가 들어와야 직원들 월급도 주고, 약도 사고, 장비도 수리한다.

그런데 무미건조한 청구 작업이 가끔 의미가 있어질 때가 있다. 지난 한 달간 우리 의원을 다녀간 환자들의 이름을 쭉 훑어볼 때이다. 고혈압, 당뇨로 오래 다닌 분들의 이름을 볼 때마다 한 분 한 분 얼굴도 같이 떠오른다. 십 년, 이십 년 꾸준히 약을 타러 오셨던 분들에 대한 감사가 나온다. 위중했던 환자의 이름이 나타나면 차트를 열고 그간의 경과를 확인한다. 필요하면 며칠 내로 다시 오시라고 전화해야겠다는 메모를 남긴다.

지난 한 달도 적절한 진단과 치료로 환자들의 병이 잘 나아 기뻐했을 때도 있었고, 개원가에서 다루기엔 벅차거나 나의 부족함으로 큰 병원에 의뢰해야 하는 안타까운 상황도 있었다. 뿌듯함과 안타까움이 청구 작업과 함께 상쇄되어 새로운 한 달을 시작하면 좋으련만 진료실에서 얻은 감정은 결코 섞이지 않는다. 뿌듯함은 뿌듯함대로, 안타까움은 슬픔과 함께 그대로 남아 거기서부터 다시 한 달을 시작한다. 이렇게 새해가 되고 1월이면 지난 한 달의 감정이 아니라 지난 한 해의 감정을 안고 시작한다. 지난 한 해의 기쁨은 보람이 되어 힘을 내고, 지난 한 해의 안타까움과 슬픔은 기도가 되어서 또 한 해를 시작하는 것이다. 조석현 누가광명의원 가정의학과 원장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추가취재 원해요0

주요 뉴스

  • 잠자던 내 카드 포인트, ‘어카운트인포’로 쉽게 조회하고 현금화까지 [경제한줌]
  • '20년 째 공회전' 허울 뿐인 아시아 금융허브의 꿈 [외국 금융사 脫코리아]
  • 단독 "한 번 뗄 때마다 수 백만원 수령 가능" 가짜 용종 보험사기 기승
  • 8만 달러 터치한 비트코인, 연내 '10만 달러'도 넘보나 [Bit코인]
  • 말라가는 국내 증시…개인ㆍ외인 자금 이탈에 속수무책
  • 환자복도 없던 우즈베크에 ‘한국식 병원’ 우뚝…“사람 살리는 병원” [르포]
  • 불 꺼진 복도 따라 ‘16인실’ 입원병동…우즈베크 부하라 시립병원 [가보니]
  • “과립·멸균 생산, 독보적 노하우”...‘단백질 1등’ 만든 일동후디스 춘천공장 [르포]
  • 오늘의 상승종목

  • 11.11 장종료

실시간 암호화폐 시세

  • 종목
  • 현재가(원)
  • 변동률
    • 비트코인
    • 113,233,000
    • +3.17%
    • 이더리움
    • 4,391,000
    • -1.01%
    • 비트코인 캐시
    • 597,500
    • +0.5%
    • 리플
    • 805
    • -0.37%
    • 솔라나
    • 290,500
    • +1.36%
    • 에이다
    • 801
    • -0.37%
    • 이오스
    • 775
    • +6.16%
    • 트론
    • 229
    • +0.44%
    • 스텔라루멘
    • 151
    • +1.34%
    • 비트코인에스브이
    • 81,850
    • -0.67%
    • 체인링크
    • 19,220
    • -4%
    • 샌드박스
    • 403
    • +2.81%
* 24시간 변동률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