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과 전두광, 무엇이 다를까…‘서울의 봄’이 그린 ‘패배자’ [이슈크래커]

입력 2023-11-13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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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서울의 봄’ 공식 스틸컷. (사진제공=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영화 ‘서울의 봄’ 공식 스틸컷. (사진제공=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이 기사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빙하기가 이어지는 한국 영화계에 활기가 돌 전망입니다. 김성수 감독의 신작 ‘서울의 봄’이 개봉 전부터 큰 화제를 빚으며 충무로의 구원투수로 떠오르고 있는데요. 일찍이 압도적인 예매율을 기록하며 흥행 청신호를 켰습니다.

13일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서울의 봄’은 이날 오후 3시 30분 기준 실시간 예매율 22.2%(4만8998명)를 기록하며 전체 1위에 올랐습니다.

그간 예매율 1위를 유지하던 ‘더 마블스’(6.7%)는 물론, 15일 개봉하는 ‘헝거게임: 노래하는 새와 뱀의 발라드’(11.7%), ‘비투비 타임 : 비투게더 더 무비’(7.0%) 등을 큰 폭으로 앞지른 수치인데요. 개봉까지 9일이나 남았지만, 영화에 대한 사전 기대감을 입증한 셈입니다.

‘서울의 봄’은 1979년 12월 12일 서울에서 일어난 신군부 세력의 반란을 막기 위한 일촉즉발의 9시간을 그린 영화입니다. 한국 현대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12·12 군사반란을 한국 영화 사상 처음으로 담아내면서 눈길을 끌었는데요. 12·12 군사반란을 그린 TV 드라마는 있지만, 이 사건을 영화화한 건 ‘서울의 봄’이 처음입니다.

‘비트’(1997), ‘아수라’(2016)의 김성수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습니다. 정우성과는 벌써 세 번째 만남인 데요. 황정민도 ‘아수라’ 이후 두 사람과 재회하며 ‘믿보배’(믿고 보는 배우) 조합을 완성했죠.

작품이 한국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을 소재로 다룬 만큼, 주요 캐릭터도 실존 인물을 모티프로 합니다. 정우성이 연기하는 ‘이태신’은 장태완 제7대 수도경비 사령부 전 사령관을 참고했죠. 황정민이 맡은 ‘전두광’은 그 이름과 대머리 특수 분장으로 유추할 수 있듯, 전두환 전 대통령을 모티브로 삼습니다.

▲영화 ‘서울의 봄’ 공식 스틸컷. (사진제공=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영화 ‘서울의 봄’ 공식 스틸컷. (사진제공=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한남동에서 20분간 들리던 총소리”…영화가 추적한 ‘그날’

12·12 군사반란은 1979년 10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총에 맞아 사망한 후 전두환 당시 국군 보안사령관을 주축으로 한 신군부가 군사반란을 통해 정권을 장악한 사건을 말합니다.

이는 김성수 감독에게도 지울 수 없는 기억으로 남은 사건이기도 한데요. 9일 서울 강남 코엑스 메가박스에서 열린 언론시사회에서 김 감독은 “12·12 군사반란이 있었던 때 (육군참모총장 공관이 있던) 한남동에 살았다. 당시 고등학교 3학년이었다”며 “총소리를 20분 정도 들었는데,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오랫동안 숨겨졌다”고 밝혔습니다.

김 감독은 “30대 중반이 돼 (내막을) 알게 됐을 때 당혹스럽고 놀라웠다”며 “우리나라 군부가 하룻밤 사이 무너질 수 있나 하는 놀라움과 의구심이 있었다. 무슨 일이 있었길래 그날이 한국 현대사의 전환점이 되었나 하는 생각은 제 인생의, 일종의 화두였다”고 부연했습니다. 그는 “이번 영화는 그동안 숙제를 갈음해 여러분께 보여드리는 것”이라고 덧붙였죠.

그가 언급한 ‘총소리’는 육군참모총장 납치 때 벌어졌던 총격전에서 들린 겁니다. 당시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보낸 합수부는 한남동 육군참모총장 공관에서 총으로 경비원을 제압, 정승화 육군참모총장 겸 계엄사령관을 보안사 서빙고분실로 강제 연행했죠. 계엄령 하에 계엄사령관을 체포한 초유의 하극상이었습니다.

전 소장을 주축으로 한 신군부는 정승화 계엄사령관이 박 대통령을 시해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에 묵시적 동조했다는 명분을 내세웠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정승화 계엄사령관이 정치군인을 견제하기 위해 작성한 ‘인사조치안’ 때문이었죠. 자신들의 권력이 축소될까 봐 우려한 겁니다. 12·12 군사반란으로 군 주도권을 쥔 신군부는 이듬해인 1980년 5월17일 정당·정치 활동을 금지하고 국회를 폐쇄하는 비상계엄령을 전국으로 확대했습니다.

영화 역시 실권을 장악하고 싶었던 전두광의 욕망을 그립니다. 전두광은 육군참모총장이자 계엄사령관인 정상호(이성민 분)를 ‘대통령 암살 협력’ 혐의를 씌워 체포·납치하고, 군사 정변 쿠데타를 일으킬 ‘빌미’를 만드는데요. 그와 함께 하나회를 결성한 노태건(박해준 분)도 군사 반란에 적극적으로 가담합니다. 두 사람은 서울을 시작으로 대한민국 전체를 장악하려는 계략을 하나둘씩 펼치죠.

군내 사조직에 불과한 하나회가 권력욕에 사로잡혀 북한과 대치 중인 최전방 병력을 미군 동의 없이 빼돌려 대한민국을 위기에 빠뜨린 부분도 영화에서 그려집니다. 국가 반역 행위가 벌어졌지만, 철저히 은폐됐던 과거는 스크린을 통해 다시금 모습을 드러내면서 공분을 자아내죠.

▲영화 ‘서울의 봄’ 공식 스틸컷. (사진제공=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영화 ‘서울의 봄’ 공식 스틸컷. (사진제공=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실패하면 반역, 성공하면 혁명 아닙니까”…고발 의지 체감

실제 사건을 다룬 영화지만, 역사 그대로를 재현하는 데 목표를 두진 않습니다. 세부적인 이야기와 설정에는 상상력이 가미됐죠. 실제로 군사반란이 전개된 9시간 동안, 반란군 내부에서 오갔을 모의에 대해선 기록이 전무합니다. 이 9시간에 상상력을 더해 극적인 긴박감을 형성한 겁니다.

전두광, 노태건 같은 캐릭터 이름은 실존 인물의 이름에 작은 변화를 줬습니다. 실존 인물을 차용하긴 했으나, 각색을 통해 말투, 행동 등을 전반적으로 재창조했죠. 서사도 실제 역사를 기존 줄기로 하되, 상상을 더했습니다.

역사에서 정승화 계엄사령관이 전두환 보안사령관과 대립각을 세웠다면, 영화에서는 사령관인 이태신과 전두광의 대립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또 12·12 군사반란은 군대들이 동원된 큰 규모의 사건이었지만, 영화에서는 이를 축약하고 인물에 중점을 두죠.

정우성은 연기하면서 실제 인물을 일부러 더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다고 합니다. 그는 언론시사회에서 “감독님께서도 이태신이 영화에서 가장 많이 가공된 사람이라고 말했다”며 “이 영화가 실제 사건을 모티프로 했다는 건 부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영화는 영화 나름의 재해석이 있기 때문에 실제 사건에 대한 부담을 털어내고 연기했다”고 말했습니다.

당초 김 감독이 받아든 시나리오는 역사적 사건에 입각돼, 마치 다큐멘터리 같기도 했답니다. 그가 시나리오를 고사했던 것도 극영화의 매력이 덜했기 때문이었죠. 그러나 김 감독의 마음을 바꾼 건 신군부 세력과 끝까지 맞선 군인들이 있었다는 사실이었는데요. 김 감독은 “그들이 끝까지 맞섰기에 내란죄와 반란죄가 입증된 것 아니겠느냐”면서 “그들이 맞서지 않으면 여전히 전두환이 승리자로 기록됐을 것으로 생각해 그쪽(이태신)의 입장에서 영화를 만들었다”고 밝혔습니다.

영화 말미에서는 이 같은 연출자의 의지가 강조됩니다. “실패하면 반역, 성공하면 혁명 아닙니까”라고 외치던 전두광은 군사반란에 성공한 뒤 화장실이라는 사적 공간에서야 광기 어린 웃음을 터뜨립니다. 김 감독은 이 장면에 대해 “떳떳한 게 없는 사람의 웃음을 보여주고자 했다”고 설명했는데요. 황정민은 “지문에 ‘웃는다’는 것 하나뿐이었다. 감독이 배우의 연기를 보고 판단하겠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며 “교활하고, 탐욕적인 수많은 감정이 응축된 웃음이었다”고 밝혔죠.

신군부 세력은 자신들의 승리를 자축하며 기념사진까지 찍는데요. 카메라는 환하게 웃는 이들의 얼굴을 노골적으로, 하나하나 비춥니다. “그들의 승리는 잠깐이고, 역사의 패배자로 기록될 것”이라는 김 감독의 고발 의지가 빛을 발하는 장면이었죠.

▲영화 ‘서울의 봄’ 공식 스틸컷. (사진제공=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영화 ‘서울의 봄’ 공식 스틸컷. (사진제공=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모두가 아는 결말이지만…‘패배’ 강조한 영화

‘서울의 봄’은 10·26사태로 유신 체제가 막을 내린 후 5·18 민주화운동이 신군부에 의해 짓밟히기 전까지 대한민국에 억눌려 있던 민주화의 바람이 불고 희망이 찾아왔던 기간을 일컫습니다. 1968년 소련에 의해 막을 내리기 전, 짧았던 체코슬로바키아 민주화를 말하는 ‘프라하의 봄’에 비유한 말인데요. 짧은 기간 발현된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 폭력에 의해 안타깝게 끝맺었다는 공통점이 있죠.

영화는 사실 서울의 봄이 아닌, 10.26 사태 이후의 일들을 그려냅니다. 권력욕에 잡아먹힌 인물부터 권력에 편승하는 세력, 책임을 회피하고 도망치는 사람들을 그리며 지난 역사에 대한 공분과 안타까움을 자아내는데요. 반란에 가담한 이들이 수세에 몰리자 혈연, 지연, 학연을 총동원해 전화를 돌리는 장면은 ‘과거’ 같지만은 않아 씁쓸함까지 안깁니다. 사실 이는 한국 사회의 오랜 병폐로 지적되는 요소기도 하죠. 희망을 상징하는 ‘봄’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해보게 되는 부분입니다.

모두가 결말을 알고 있는 역사적 사건이기에 영화를 본 후에는 패배감이 밀려들 수도 있겠습니다. 영화 속 전두광도 도취감을 즐기며 웃음을 터뜨리면서 이 패배감은 더욱 짙어지는데요. 분명한 건 전두광 세력이 즐긴 승리는 ‘그들만의 승리’에 불과하며, 이들은 역사의 패배자로 남았다는 겁니다. 이 사실은 연출자의 의지로, 배우들의 호연으로 더욱 분명해지죠.

12·12 군사반란의 긴박감을 생생하게 담아낸 ‘서울의 봄’ 러닝타임은 141분, 12세 이상 관람가로 청소년들도 관람할 수 있습니다. 전 전 대통령이 사망한 11월 23일 하루 전인 이달 22일에 개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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