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관리본부 조사, 폐질환 가능성 판정일 뿐”
“사용자 증명에 따라 손해배상 달라질 수 있어”
가습기 살균제를 제조 및 판매한 회사가 피해자에게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가습기 살균제 사용자가 그 제조‧판매업자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구한 민사소송 중 첫 상고심 판결이다.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옥시레킷벤키저 등이 제조‧판매한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한 A 씨가 손해배상을 청구한 사건에서 피고들에게 위자료 배상책임을 인정한 원심 판결(500만 원 지급)을 수긍하고, 원고와 피고들의 상고를 모두 기각한다고 9일 밝혔다.
대법원은 피고들이 제조‧판매한 가습기 살균제에 설계상 결함과 표시상 결함이 있고, 원고는 그 결함으로 인해 폐가 손상되는 손해를 입었다고 봤다.
A 씨는 2007년부터 2011년까지 옥시의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해 가습기를 세정했다. A 씨는 2010년 5월 간질성 폐질환 등을 진단받고 이후 지속적으로 입원‧통원 치료를 받았다. 질병관리본부(현 질병관리청)는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폐 손상 여부 판정을 위한 조사를 진행한 뒤, A 씨 질병은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말단기관지 부위 중심 폐질환 가능성이 낮은 것으로 판단된다는 이유로 ‘가능성 낮음’(3단계) 판정을 내렸다.
당시 정부의 판정 등급은 △가능성 거의 확실함(1등급) △가능성 높음(2등급) △가능성 낮음(3등급) △가능성 거의 없음(4등급) △판단 불가능으로 분류됐다.
하지만 A 씨는 2015년 2월 이 사건 가습기 살균제로 인해 신체에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면서 옥시와 한빛화학을 상대로 제조물책임을 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A 씨는 2017년 10월 ‘가습기 살균제 피해구제를 위한 특별법’(이하 가습기 살균제 피해구제법)에 따라 환경부 산하 한국환경산업기술원이 구성한 구제계정운용위원회에서 ‘구제급여 상당지원 대상자’로 인정됐다.
1심은 A 씨 청구를 기각했지만, 2심은 A 씨의 청구 일부를 받아들여 위자료 500만 원을 인용했다.
2심 재판부는 “가습기 살균제에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 성분을 사용한 설계상 결함과 그 용기에 인체에 안전하다는 문구를 표기한 표시상 결함이 있고 이로 인해 원고가 신체에 손상을 입었다”며 제조물책임법에 따른 피고들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면서, 위자료 500만 원 지급을 명령했다.
대법원은 “원심 판단에 제조물책임에서의 인과관계 추정, 비특이성 질환의 인과관계 증명, 위자료 산정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없다”고 판시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원고가 ‘가능성 낮음’(3단계) 판정을 받은 질병관리본부 조사는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말단기관지 부위 중심 폐질환 가능성을 판정한 것일 뿐”이라며 “손해배상 소송에서 가습기 살균제 사용과 그로 인한 질환의 발생‧악화에 관한 인과관계 유무 판단은 가습기 살균제 사용자의 구체적인 증명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을 전제로 한 판결이다”라고 설명했다.
박일경 기자 ekp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