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수처 구속영장 ‘4전 4패’…직접 기소 대상인지도 논란
공수처 “검찰과 구속기간 협의” vs 검찰 “협의대상 아냐”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10억 원대 뇌물을 수수한 혐의를 받는 감사원 고위 간부의 신병 확보에 실패했다.
이민수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9일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뇌물) 등 혐의를 받는 감사원 3급 간부 김모 씨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진행하고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이 부장판사는 “피의자의 지위, 피의자와 관련 회사와의 관계, 공사도급계약의 체결 경위 등에 비춰볼 때 피의자의 직무와 관련해 피의자의 개입으로 공사계약이 체결됐다고 볼 만한 상당한 의심이 들기는 한다”고 말했다.
다만 “상당수의 공사 부분에 있어 피의자가 개입하였음을 인정할 수 있는 직접 증거가 충분히 확보됐다고 보기 어렵다”며 “현재까지 현출된 증거들에 대해서는 반대 신문권의 보장이 필요하다고 보인다”고 기각 이유를 설명했다.
공수처는 김 씨가 지인 명의로 회사를 설립한 뒤 건설사들로부터 공사를 수주하는 방식으로 10억 원대 뇌물을 받았다고 보고 있다. 김 씨는 건설·사회간접자본(SOC)·시설 분야를 주로 감사했다.
앞서 감사원은 김 씨가 업체 관계자들과 동남아 여행을 간 사실을 적발해 내부 감사를 벌인 뒤 2021년 10월 공수처에 수사를 의뢰했다. 공수처는 지난해 2월 감사원을 압수수색하는 등 본격적인 수사에 나섰고, 7일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김 씨는 전날 1시간30여분간 영장실질심사를 마친 뒤 ‘혐의를 부인하는 입장이냐’는 취재진 질문에 “네”라고 짧게 답했다. 어떤 부분을 소명했는지를 묻는 질문에는 “죄송하다”고 말한 뒤 법원을 빠져나갔다.
공수처의 구속영장 청구는 이번이 네 번째다. 2021년 고발사주 의혹으로 손준성 대구고검 차장검사에게 두 차례, 올해 8월 수사 민원 해결을 대가로 수억 원대 금품을 받은 서울경찰청 소속 김모 경무관에 한 차례 구속영장을 청구했으나 모두 법원에서 기각됐다.
특히 이번 감사원 간부 영장청구의 경우 공수처의 기소 대상인지를 두고 논란이 제기되기도 했다. 공수처법에 따르면 3급 이상 감사원 공무원의 뇌물수수 혐의는 공수처의 수사 범위지만 직접 기소 대상은 아니다.
공수처는 대법원장과 대법관, 검찰총장, 판사 및 검사, 경무관 이상 경찰관에 대해서만 직접 기소할 수 있다. 나머지 수사 대상은 검찰에 사건을 넘겨 기소 여부는 검찰이 결정한다. 공수처가 기소권이 없는 수사 대상에 대해 영장을 청구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다만 구속된 피의자에 대해 며칠 동안 신병을 확보할 수 있는지, 또 검찰에 사건을 넘길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규정이 없다. 검사가 피의자를 구속할 경우 최장 20일까지 구속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데, 공수처가 청구한 영장으로 구속된 피의자를 인치할 법률상 근거도 없다.
공수처 관계자는 “헌법재판소는 2021년 1월 공수처법 합헌 결정을 내리면서 공수처 검사의 영장 청구권을 인정했다”며 “다만 기소권 없는 사건의 경우 검찰과 구속기간(기본 10일·연장시 20일) 배분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검찰과 실무협의를 진행해 피의자의 기본권이 침해되지 않도록 만전을 기하겠다”며 “기소권 없는 사건에서 구속 피의자 발생 시 일어날 수 있는 검찰과의 구속기간 배분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선 관련법 개정을 통해 법적 근거가 마련되어야 한다”고 했다.
검찰 관계자는 “피의자 신병을 구속하는 건 기관끼리 실무 협의 등 방식으로 기간을 정할 사안이 아니라 명확한 법률에 근거해야 한다”고 반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