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26일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법제사법위원회를 건너뛰고 국회 본회의 상정으로 직행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이하 노조법) 일부개정 법률안’ 이른바 노란봉투법에 대한 권한쟁의 심판 청구를 기각한 이유다.
같은 날 헌재는 방송법·방송문화진흥회법·한국교육방송공사법 일부개정 법률안 등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법안인 ‘방송 3법’에 관한 권한쟁의 심판 역시 동일한 논리선상에서 기각했다. 두 사건을 모두 기각한다는 결론엔 헌법재판관 의견이 전원 일치했다.
노란봉투법과 방송 3법이 직회부되는 과정에서 소수당 국민의힘 법사위 소속 의원들의 법률안 심의 및 표결권 침해 여부가 문제됐다. 이번 헌재 기각 결정은 여·야간 협상을 통한 정치력으로 풀어야할 사안을 사법부 심판대로 끌어들이지 말라는 가이드라인으로 해석된다.
앞으로 유사한 권한쟁의 심판 청구와 일반 법원에 접수되는 사건들을 취급할 법관에게 참고 지침이 될 수 있다.
특히 헌재는 유남석 소장을 포함한 재판관 5명이 “국회법 제86조 제3항이 정한 60일의 심사 기간을 도과했다면 이러한 심사지연은 그 자체로 이유가 없다”고 지적했다. 다수 의견인 까닭에 주문으로 적히는 법정 의견이 됐지만, 헌재 결정문에서 눈여겨 볼 부분은 이종석·이영진·이은애·김형두 재판관 4인이 낸 별개 의견이다.
이들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장의 본회의 부의(직회부) 요구행위는 국회법을 준수했다”며 “법사위원들의 법률안 심의·표결권을 침해하지 아니한다”고 판시했다.
이 같은 별개의견을 밝힌 4명 가운데 이종석·이영진 재판관은 헌재 내 보수 성향으로 분류된다. 이영진 재판관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당시 자유한국당에서 분당한 바른미래당이 국회 몫으로 추천했다. 이종석 재판관은 자유한국당이 지명했으며 현재 윤석열 대통령이 헌법재판소장 후보자로 낙점한 상태다.
올해 3월 만해도 이종석·이영진 재판관은 유상범·전주혜 국민의힘 의원이 국회 법사위원장을 상대로 제기한 권한쟁의 심판에서 민주당이 다수당 힘으로 밀어붙인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입법이 무효라고 봤다. 문재인 정부 ‘검찰개혁’ 최종 형태로 평가되는 개정 검찰청법과 형사소송법이 유효하다는 헌재 입장은 집권세력으로부터 헌재가 정치화했다는 거센 비판을 받았다.
불과 7개월 사이에 보수적 재판관 생각이 달라졌다 보기 이른 감이 있다. 그러나 건전한 토론 문화가 사라진 한국 정치를 바라보는 재판관들 시선에 부정적인 기류가 흐른다는 점만큼은 감지된다.
그동안 우리는 여당 대표가 본인이 몸담은 당 쇄신을 위해 출범한 비상대책위원장 직무를 정지해달라고 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내는 일을 두 차례나 지켜봤다.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야당 대표를 향한 구속영장 청구를 기각한 판사는 검찰에 고발된다.
한 마디로 ‘사법 과잉’ 시대를 겪는 국민 피로감은 인내심의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 올 7월 임기 만료한 박정화 전 대법관 퇴임사를 빌려 정치권에 당부한다. “지나치게 많은 사건이 법원에 몰리고 있다. 건설적인 대화와 상호 양보를 통해 각종 분쟁이 자율적으로 해결되는 사회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