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그제 중동으로 떠났다. 윤석열 대통령의 사우디아라비아·카타르 국빈 방문에 동행했다. 최상묵 대통령실 경제수석은 “탄소 기반의 중동 1.0을 넘어 탈탄소 기반의 중동 2.0으로 새로운 협력 관계 설정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했다. 안보·경제 협력 강화에 방점이 찍히는 국빈 방문이란 뜻이다. 이 회장 역할이 크게 기대된다는 점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27일로 회장 취임 1년을 맞는 이 회장에게 중동은 ‘기회의 땅’이다. 앞서 추석 무렵 삼성물산이 참여한 친환경 스마트시티 ‘네옴(NEOM)’ 건설 현장을 찾아 각별한 관심을 표명했다. 네옴시티는 사우디가 총사업비 5000억 달러를 들여 구축 중인 미래형 신도시다. 이 회장은 “중동은 미래 먹거리와 혁신 기술 발휘 기회로 가득 찬 보고(寶庫)”라고 했다. 이 회장은 1년 전 취임 일성으로 “국민에게 조금이라도 더 신뢰받고 사랑받는 기업을 만들겠다”고 했다. 그 다짐을 실현하려면 중동만이 아니라 지구촌 전체를 기회의 보고로 만들어야 한다. 갈 길이 아직 먼 셈이다.
이 회장 부친인 고(故) 이건희 선대회장은 30년 전인 1993년 6월 7일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삼성 주요 간부 200여 명을 불러 ‘신경영’을 선언했다.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꾸자”는 그 유명한 선언이다. 삼성은 이를 통해 품질 경영으로 전환했고, 결국 세계적 초일류 기업으로 도약했다.
이 회장 또한 초일류 좌표를 놓치지 않고 있다. 1년 전 취임을 앞둔 사장단 오찬에서 “미래 기술에 생존이 달려 있다”고 했다. 지난해 6월 유럽 출장 귀국길에선 “첫 번째도 기술, 두 번째도 기술, 세 번째도 기술”이라고 했다. 하지만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고 했다. 대기업 총수에서 그룹 말단까지 모두 합심해 ‘초격차 기술’에 박차를 가해도 목표를 이룰지 장담할 수 없는 것이 경쟁이 치열한 첨단 분야 기업과 시장의 현실이다. 이 회장은 2020년 이른바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 결심공판 최후진술에서 ‘승어부(勝於父·아버지를 능가함)’를 인용하며 “국격에 맞는 새로운 삼성을 만들어 아버님께 효도하고 싶다”고 했다. 승어부가 실현되려면 삼성 조직 전체가, 그리고 관련 기업들이 초일류 지향, 초격차 유지에 전력을 다하도록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삼성이 초일류 기업으로 계속 성장하느냐 여부는 기업 차원의 문제로 그치지 않는다. 청년 일자리, 국가 경쟁력, 나아가 국부·국운과 직결되는 문제다. 삼성은 지난해 5월 반도체, 바이오, 차세대 통신, 신성장 IT 연구개발(R&D) 등을 중심으로 향후 5년간 450조 원(국내 360조 원 포함)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8만 개의 일자리도 만들겠다고 했다. 국가적 과제인 용인반도체클러스터 조성에는 향후 20년간 총 300조 원을 쏟아붓는다. 이런 청사진이 계속 펼쳐질 수 있느냐 여부는 대한민국 미래를 좌우하게 마련이다. 이 회장이 30년 전 ‘신경영’을 뛰어넘어 ‘승어부’ 꿈을 이루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