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에서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참패에 책임을 지고 임명직 당직자들이 사퇴한 뒤 비교적 계파색이 옅은 비윤(비윤석열)계 유의동 의원이 새 정책위의장으로 임명됐다. 김기현 대표가 당의 주도적 역할을 강화하겠다고 밝힌 만큼 그동안 문제점으로 지적돼왔던 수직적 당정 관계가 개선될지 주목된다.
김 대표는 16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신임 정책위의장으로 수도권 3선인 유의동(경기 평택을) 의원을 임명하는 등 인선안을 확정했다고 정광재 대변인이 브리핑을 통해 전했다. 이번 인선은 앞서 보궐선거 참패 사흘 만인 14일 박대출 전 정책위의장·이철규 사무총장 등 임명직 당직자들이 사퇴한 데 따른 것이다.
유 의원은 계파색이 옅고, 당내에서는 비윤계로 분류된다. 유 의원은 과거 유승민 전 의원의 당내 대선 경선 캠프 직능본부장을 맡아 유승민계 인사로 분류되기도 했다. 이를 두고 김 대표가 취임 당시 강조했던 '연포탕' 인사가 이뤄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유 의원은 지난해 대선에서 정책위의장을 지낸 바 있으며, 당시 원내대표였던 김 대표와 호흡을 맞췄던 경험이 있어 당정간 정책 조율에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유 의원이 현재 당내 유일한 수도권 3선 의원인 만큼 내년 4월 총선 공약 라인을 책임질 정책위의장에 적임이라는 판단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김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당과 정부, 대통령실의 관계를 보다 건강하게 하겠다"며 "당정대 관계에 있어 당이 민심을 전달해 반영하는 주도적 역할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기본적으로 현안에 대해 사전에 긴밀히 조율하는 방식으로 당정대가 엇박자를 내지 않도록 하되, 민심과 동떨어지는 사안은 그 시정을 (정부에) 적극적으로 관철해나가겠다"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도 이날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당정 소통을 강화하라"고 지시했다고 대통령실 이도운 대변인이 전했다. 이와 관련해 대통령실 관계자는 "현재도 당정회의를 하고 있지만, 정책 당정을 좀 더 활성화하겠다는 것"이라며 "당은 현장에서 유권자들을 대하기 때문에 그만큼 민심을 빨리 전달받는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당정 소통 강화는 국민 소통을 강화하는 방법이라고 얘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번 인선을 통해 대통령실과의 '수직 관계'가 해소될지는 미지수다. 내년 총선 공천 실무를 책임질 신임 사무총장으로 임명된 이만희 의원과 당의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원 원장에 임명된 재선 김성원 의원 등 계파색은 옅어도 '범친윤'으로 불리는 의원들이 대거 포진했기 때문이다.
한 중진 의원은 통화에서 "바뀌었다는 것 외에 팀이 잘할 것이라는 게 보여야 하는데 그런 건 별로 안 보이는 것 같다"며 "당의 인물이라는 게 한계가 있고, 의원 수도 많지 않으니까 불가피한 측면이 있지만, 인사라는 게 별 차이가 없어도 '이 팀은 이렇게 하겠구나'가 보여야 하는데 그게 별로 안 보인다"고 지적했다.
당 관계자도 "일단 모든 책임이 가장 무겁게 있는 선출직 지도부가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임명직 인사들의 인선이 국민들의 시각에 부합하겠느냐는 절대로 부정적"이라며 "강서구 보궐선거보다 총선에서 더 크게 심판받을 생각이냐. 정신 차리고 지도부가 다시 한번 고려해봐야 한다"고 비판했다.
여당은 근로시간제 개편안과 수능 '킬러 문항'(초고난도 문항) 출제 배제 등 정책 조율 과정에 있어 대통령실과 수직 관계에 놓여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앞서 3월 정부가 발표한 근로시간제 개편안에 대해 반발 여론이 나오자 윤 대통령이 재검토를 지시했고, 이에 대해 당정이 뒤늦게 의견 수렴에 나서는 등 혼선을 빚었다. 6월에는 윤 대통령이 킬러 문항과 관련해 "수십만 명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부적절하고 불공정한 행태"라고 지적하자 당정은 공교육 교과 과정 내에서 다루지 않은 내용을 수능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당정의 수직 관계는 이번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당초 여당은 김태우 전 구청장에 귀책사유가 있다는 이유로 후보를 내지 않는 '무공천'을 고려했지만, 윤 대통령이 광복절에 김 전 구청장을 대법원 유죄 확정 석 달 만에 사면·복권하면서 이를 '공천 신호'로 해석하고 실제로 공천에 나섰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강서구청장 선거 패배가 김 전 구청장을 사면한 윤 대통령에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