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오전 서울 광화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소설 '죽어나간 시간을 위한 애도' 출간 간담회에서 김홍신 작가는 집필 이유에 대해 "억울하고 서러운 세상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이 글을 바치고 싶다"며 이같이 밝혔다.
올해로 76세인 김 작가는 우리나라 최초의 밀리언셀러인 '인간시장'을 펴내며 명성을 얻었다. 22세의 법대생이 부조리한 사회에 맞서 싸우는 과정을 그린 작품으로 영화와 드라마로도 제작됐다.
이 시기부터 주로 사회비판적 성격의 작품을 발표한 김 작가는 이번 신간에서도 비슷한 결을 유지하면서 용서와 애도라는 키워드를 통해 인류애적 관점을 녹였다. 소설은 1970년대를 배경으로 북한군의 죽음에 애도를 표하면서 빨갱이로 오인당해 억울한 삶을 살아온 '한서진'이라는 인물의 발자취를 담았다.
이 소설은 김 작가가 1971년 육군 소위로 재직하면서 겪은 경험이 모티브가 됐다. 이날 간담회에서 김 작가는 기자들에게 "군 복무 시절 대간첩 작전 철책선 근무 당시 적 장교의 시신 옆에 십자가를 꽂아주고 기도했으며 이로 인해 보안대 조사를 받은 경험이 있다"고 털어놨다.
이어 그는 "이 소설에서 분단과 이데올로기의 희생양인 주인공 한서진이 처한 상황은 우리 역사 속 비극의 단면"이라고 밝혔다.
적군의 죽음에 애도를 표하던 한서진의 인류애는 극심한 고문을 거치며 분노로 변질된다. 하지만 자신을 고문했던 이들에 대한 증오심을 거두고, 용서와 애도라는 깨달음을 얻으면서 실종됐던 인류애를 회복한다.
이 같은 한서진의 태도는 그의 딸인 '자인'에게 대물림된다. 출생의 아픔을 지닌 자인은 아버지의 영전에 앞에서 용서와 애도만이 무너진 인간성을 회복하는 동력임을 깨닫는다. 김 작가는 "용서와 애도는 타인을 향하지만 결국 나를 살리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김 작가는 한서진이 적군에게 한 애도 행위가 갈등과 반목으로 얼룩진 현대 사회에 꼭 필요한 태도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최근 우리 사회에는 애도할 일이 너무 자주 생겼다"고 덧붙였다.
그는 "애도는 인류애적 가치를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라며 "전쟁 상황에서 피해를 본 분들, 지진으로 피해를 본 분들, 세월호와 이태원 참사로 희생당한 분들을 위해 우리는 애도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 작가는 여전히 '원고지'와 '만년필'을 고집한다. 그는 "편집자가 고생을 많이 했다. 내가 원고지로 넘겨주면 직접 컴퓨터로 옮겨 적었고, 등장인물들이 헷갈려서 오기가 나면 바로 잡아줬다"며 고마움을 전했다.
책을 펴낸 해냄출판사 관계자는 "문학은 물론 다양한 사회활동을 통해 동시대인들이 직면한 문제들을 적극적으로 다뤄온 작가가 우리에게 던지는 절실한 화해의 가치가 더욱 울림 있게 다가올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