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명 탈당파 20명 넘을 경우 총선 변수 부상
구속 위기를 넘어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당무 복귀가 임박하면서 체포동의안 가결 과정에서 정점에 달한 친명(친이재명)계·비명(비이재명)계 간 내전이 분당으로 종지부를 찍을지 주목된다.
이미 이 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을 거치며 더욱 공고해진 친명 지도부가 비명계 중심 가결파 숙청론에 무게를 싣고 있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당내 징계·공천 배제 기류가 현실화할 경우 집단 '엑소더스'(대탈출) 가능성이 제기된다. 탈당파가 교섭단체 구성 요건인 20명을 넘어서면 총선의 핵심 변수로 급부상할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는 구심점 확보를 전제한 비명계의 탈당 가능 시점을 늦어도 내년 1월 내로 전망했다.
4일 정치권에 따르면, 장기 단식으로 입원 중인 이 대표는 곧 회복 치료를 마치고 당무에 복귀할 예정이다. 당장 국정감사·예산 정국 등 굵직한 현안이 기다리고 있지만, 동시에 반년 앞으로 다가온 총선 준비 작업에도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때문에 공천권을 쥔 이 대표가 비명계와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지 당 안팎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친명계는 이미 비명계의 가결 투표를 해당행위로 규정하고 사실상 숙청론을 거론하고 있다. 선봉장은 정청래 최고위원이다. 그는 2일 페이스북에 "(비명계는) 구속영장이 가결(발부)됐다면 '이 대표 사퇴하라'고 즉각 주장했을 것 아닌가"라며 "그런데 기각됐다. 사퇴를 꿈꿨을 가결파는 어떻게 처신해야 할 것인가"라고 적었다.
영장 기각 당일(9월 27일)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는 "검찰과 한통속이 돼 이 대표의 구속을 열망했던 가결파 의원들은 참회·속죄해야 한다"면서 "반드시 외상값은 계산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비명계 징계 여부는 표면적으로 당내 윤리심판원을 거쳐 판가름날 전망이다. 앞서 민주당 국민응답센터 게시판에는 가결을 공개 표명한 비명계 김종민·설훈·이상민·이원욱·조응천 의원에 대한 징계 청원이 올라왔고, 이미 지도부 답변 요건인 5만명을 넘어섰다.
홍익표 원내대표는 이날 MBC라디오 인터뷰에서 "윤리심판원 회부는 몇 가지 경로가 있다"며 "당원들이 직접 제소하면 다룰 수 있고, 청원이 들어온 것도 있다. 윤리심판원에 5만명 이상의 당원 요구가 있으니 이 상황에 대해 판단해 달라고 요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는 이 대표 체제로 총선을 치를 가능성이 유력한 상황에서 친명계가 비명계에 '불이익 시그널'을 명확하게 보낸 만큼, '공천 파동→탈당→분당'으로 이어지는 시나리오를 유력하게 보고 있다.
박성민 정치컨설팅 민 대표는 이날 SBS라디오 인터뷰에서 "반명, 비명은 금태섭 의원이 어떻게 제거, 공천 탈락했는지 봤다. 경선을 거치면 출마도 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공천 파동이 올 것"이라며 "이 대표가 통합 행보를 할 건지는 지켜봐야겠지만 민주당 내 역학관계상, 총선이 다가오는 것으로 봐선 쉽지 않다"고 분석했다.
이어 "가결파 의원들은 통합비대위 전환, 체포동의안 가결을 통한 선제적 (지도부) 붕괴 모두 안 되면 탈당할 수밖에 없다"며 "안에서 죽나 밖에서 죽나 마찬가지"라고 덧붙였다.
분당이 현실화할 경우 잇따른 개별 탈당보다는 한 번의 집단 탈당, 결행 시점은 공천이 이뤄지기 전인 12월부터 내년 1월로 전망했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가 공식적으론 비명계를 잘라내지 않겠지만, 공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친명 강성 지지층 권리당원 숫자가 만만치 않다. (경선에서) 떨어트리려고 마음 먹으면 가능할 정도"라며 "공천을 받지 못하면 결과는 뻔하다. 그걸 아는 비명계가 분위기를 봐서 모종의 결단을 빨리 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이어 "가장 중요한 건 (탈당) 규모다. 한두 명씩 나가는 게 아니라 30명 이상이 나가면 큰 충격 효과를 줄 수 있다"며 "탈당한다면 경선에 들어가기 전인 연말이나 내년 1월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비명계 중심의 당내 이 대표 체포동의안 가결표는 약 30~40표로 추산된다. 이 중 절반가량인 20명 이상이 집단 탈당에 가담할 경우 제3 교섭단체 위치에서 기호 3번을 받아 총선을 치르게 된다.
당 안팎에선 탈당 가능성이 가장 높은 비명계 인사로는 5선 이상민·설훈 의원 등이 거론된다. 한 비명계 관계자는 "아직 탈당, 분당을 언급할 단계는 아니지만, '찍어내기'가 본격화되면 일부 다선을 중심으로 탈당 기류가 형성될 것"이라며 "'유쾌한 결별'을 언급한 이 의원, 의총에서 지도부 총사퇴를 요구한 설 의원 등이 대표적이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생각할 것이다. 분위기를 더 지켜볼 것"이라고 전했다.
이 대표 강성 지지층에 소위 '수박(비명계 멸칭 표현) 낙인'이 찍혀 간헐적 문자 폭탄이나 지역구 내 사퇴 현수막 등에 시달리는 4선 홍영표, 3선 이원욱, 재선 김종민·박용진·송갑석·양기대·조응천, 초선 윤영찬 의원 등 주요 비명계 움직임도 주목할 만하다.
또한 다수 비명계 의원의 지역구에는 이미 친명계 비례대표나 원외 인사들이 출마를 공식화한 상태다. 윤영찬 의원 지역구(경기 성남중원)엔 현근택 민주연구원 부원장, 양기대 의원 지역구(경기 광명을)엔 양이원영 의원(비례)이 도전장을 냈다. 친낙(친이낙연)계 신영대 의원의 전북 군산에는 김의겸 의원(비례)이 출사표를 던졌다.
관건은 광야로 나설 비명계를 아우를 구심점 여부다. 황태순 정치평론가는 "설훈·이상민·조응천 의원 등이 나간다고 해서 당장 따라갈 사람이 얼마나 있겠나"라며 "이낙연·김부겸 전 국무총리나 문재인 전 대통령의 측면 지원 아래 행동이 이뤄져야 한다. 최소 3달 뒤(내년 1월)에는 이런 부분들이 본격적으로 가시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창당은 한달 반이면 충분하다"며 "20대 총선에서 안철수 의원이 국민의당을,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 유승민 전 의원이 바른정당을 신속하게 만들었다. 다만 이런 사례처럼 중심인물 없이 개별 의원들이 당을 깨고 나오면 오합지졸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다선의원들이 이재명 체제에 반발해 탈당 깃발을 들어도 대선주자급 무게감을 지닌 수장이 없다면 총선을 앞두고 정치적 생명을 건 창당 여정에 다수 비명계 의원들이 발을 딛지 않을 거라는 지적이다.
실제 분당이라는 풍파 속에서 유의미한 의석을 확보한 사례도 있다.
신 교수는 "분당하면 이론상 국민의힘이 유리해지겠지만, 20대 총선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이 민주당과 국민의당으로 분당했는데 민주당(123석)이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122석)을 1석 이겼고 국민의당도 38석을 얻었다"면서 "최근 보폭을 넓히는 문 전 대통령을 주목해야 한다. 친문(친문재인), 친노(친노무현)가 포함된 비명 솎아내기를 가만둘 수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회의론도 있다. 탈당은 곧 원내 1당 민주당의 막대한 전국 조직·자금력을 포기하는 것이어서다. 한 민주당 보좌진은 "국회에 와서 창당을 두 번 해봤는데, 돈과 사람이 많이 필요해 여간 번거로운 작업이 아니다"라며 "(비명계가) 공천에서 불이익은 받겠지만 경선을 포기하고 창당한다는 게 유의미한가 싶다. 스스로 지역에서 경쟁력이 없다고 인정하는 모양새가 될 수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