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부터 의료기관 수술실 내 폐쇄회로(CC)TV 설치 의무화가 시행된 가운데, 의료현장에서는 명확하지 않은 정부의 가이드라인으로 인해 혼란을 느끼고 있다는 평이 나오고 있다.
정부의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전신마취나 수면마취 등으로 환자가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수술하는 경우 수술실 내부에 CCTV를 설치해야 한다. 수술 장면 촬영이 가능하다는 것을 환자에게 미리 고지한 뒤, 환자나 보호자가 촬영을 요청할 수 있도록 요청서를 제공하는 절차를 밟게 된다. △응급수술 △위험도 높은 수술 △전공의 참여 수술 등 정당한 이유가 있다면, 촬영을 거부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촬영을 거부하면 벌금 500만 원이 부과된다.
26일 본지 취재 결과, 수술실 CCTV 의무화 이틀째인 이날 대부분의 대학병원에서 촬영까지 이뤄지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A병원 관계자는 “환자가 CCTV 촬영을 요청한 경우는 한 건도 없었다”면서 “일부 의사들 사이에서는 ‘누군가 보고 있다’는 부담을 느껴 최선의 진료를 볼 수 없을 것 같다는 의견이 나왔다”고 말했다.
B병원 관계자는 “환자가 입원할 때 수술실 CCTV 촬영이 가능하다고 안내하고 있지만, 어제부터 시행돼서인지 실제로 이뤄진 사례는 없었다”고 전했다.
정부의 명확하지 않은 가이드라인 때문에 의사들 사이에서는 혼란을 겪고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이세라 대한외과의사회 회장은 “내시경실에서 수면마취를 하고, 조직을 떼어내거나 대장용종절제술을 진행한다고 하면, 이건 CCTV 촬영해야 하는 것인가. 수술실에서만 수술이 이뤄지는 게 아닌데 법안에서의 표현이 불분명한 부분이 많다. 위험도 높은 수술, 응급수술 시에는 촬영 거부할 수 있다고 하는데, 이를 누가 판단하는가. 아무도 답변해주고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 회장은 “의료를 모르는 국회의원들이 몇몇 사람들의 요구에 따라 법안을 만들어 놓으니 구멍이 숭숭 생겼다”며 “CCTV 설치를 통해 의료체계 자체가 붕괴할 것이라고 본다. 누가 필수의료에 지원하겠는가. (부정적인 이슈에 대해) 의사 자율에 맡기는 방안을 고려했어야 한다”고 비판했다.
반면에 CCTV 설치에 대해 긍정적인 의견을 낸 의사도 있었다. 의사 C씨는 “법적인 소지나 환자들의 항의·불만 등에 대처하기 더 편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 시작 단계인 만큼 어떻게 전개될지 모르겠지만, 크게 개의치 않는다”고 말했다.
한편, 대한의사협회는 25일 의협 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의료계 현실을 반영한 제도개선을 촉구했다. 의협은 “수술실 CCTV 의무화는 의료인의 직업수행의 자유를 중대하게 제한하면서 일반적인 인격권, 개인정보자기결정권 및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등 기본권을 일상적으로 침해받도록 하기 때문에 헌법소원을 제기한바 있다”며 “이러한 부담은 ‘외과의사 기피현상’을 초래할 수 있다. 현재도 부족한 필수의료 전공의 지원이 가속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의협은 “법 개정 이후 2년의 유예기간이 있었음에도 관련 후속조치가 늦어지면서, 일선의료현장에서 법 시행에 앞서 CCTV 설치를 준비하면서 큰 혼란을 겪었다”며 “충분한 계도기간과 유지보수 비용 지원 등을 지원해달라”고 촉구했다.
수술실 CCTV 설치와 관련해 의협 대의원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의협 회원의 93.2%가 CCTV 설치에 반대했다. 병원장이라면 수술실을 폐쇄할 수도 있다는 응답은 55%를 넘겼다. 해당 설문은 이달 8일부터 18일까지 10일간 의협 회원 1267명을 대상으로 이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