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10여년 대리…경쟁 집행처분 ‘수호’
카카오 김범수 지정자료 제출누락
무죄 이끌어…행정규칙 제정도
‘고철 담합’ 대리 기업만 무혐의
삼성전자 동의의결 기각 결정
IMM 대기업집단 지정 제외 성사
‘이윤압착’ 국내 첫 판례 만들어
공정거래위원회는 2009년 미국 반도체 기업 퀄컴의 시장지배적 지위남용 행위를 문제 삼아 당시 단일 규모 최대 과징금으로 기록된 2600억 원에 달하는 과징금을 부과했다. 이 때 ‘법무법인(유한) 지평’ 공정거래그룹은 공정위를 대리해 퀄컴 측 공격을 막아내 국익 수호에 큰 기여를 했다고 평가받는다. 지평 ‘공정거래그룹’이 법조계에 처음 두각을 나타낸 계기다.
2016년 제2차 퀄컴 시장지배적 지위남용 행위 사건에서는 이해관계인 미(美) 반도체 경쟁회사 인텔을 대리해 공정위 방어를 성공적으로 도왔는데, 그 때 부과된 과징금 액수 1조311억 원 역시 사상 최대치를 갱신했다. 제1차 퀄컴 시장지배적 지위남용 행위 사건은 2019년에서야 대법원 확정 판결이 나오면서 마무리됐다. 지평 공정거래그룹은 무려 10년 넘게 공정위를 대리하며 퀄컴과의 법정 공방을 승리로 이끄는 집요함으로 존재감을 각인하게 된다.
지평 공정거래그룹장을 맡고 있는 김지홍(51‧사법연수원 27기) 변호사는 공정거래 분야 공로를 인정받아 2020년 ‘제19회 공정거래의 날’을 맞아 대형 로펌 변호사 가운데 최초로 ‘대통령 표창’을 수상한다.
지평 공정거래그룹은 ‘최초’란 타이틀을 많이 가지고 있다. 지평이 수행한 김범수 카카오 의장의 지정자료 제출 누락 형사사건은 기업집단 지정자료 누락에 관한 첫 판례가 됐다. 지평은 김 의장을 변호해 무죄 판결을 받아냈다. 대주주 적격성 심사에서 걸림돌을 치운 카카오그룹은 제4차 산업혁명이라 불리는 카카오페이부터 인터넷 전문은행 카카오뱅크까지 출범시키며 금융산업에 본격 진출했다. 이 사건으로 규제 당국과 수사 기관의 업무 관행에 제동이 걸렸고, 기업집단 지정자료 제출 누락 관련 형사고발에 대한 행정규칙 제정을 이끌어냈다.
이병주(48‧연수원 34기) 변호사는 14일 서울 중구 세종대로 그랜드센트럴 사무실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갖고 “지평 공정거래그룹은 대형 로펌들 중 ‘유일’하게 사업자와 공정위 모두를 대리하고 있다”며 “공정위로부터 대통령 표창을 받은 대형 로펌 변호사는 김지홍 그룹장이 유일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어 “지평 공정거래그룹이 사업자는 물론 공정위로부터 깊은 신뢰를 받고 있고 공정위 실무를 잘 이해하고 있다는 의미로서 기업들이 지평을 찾는 이유”라고 자부했다. 현재 이 변호사는 우리나라 최대 플랫폼 중 하나인 카카오를 대리해 엔터테인먼트 사업 ‘빅딜’이라 일컫는, 카카오엔터테인먼트가 SM엔터테인먼트를 인수하는 기업결합 신고를 추진하고 있다.
경쟁법의 양대 모델로 평가받는 미국과 유럽에서 공정거래법을 수학해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이 변호사는 지난해 IMM인베스트먼트 그룹을 사모펀드(PEF) 전업집단으로 인정받아 대기업집단에서 제외하는 업무를 완료했다.
공정위는 매년 기업집단의 자산총액(5조 원 이상)을 기준으로 공시대상 기업집단을 지정하고 각종 공시의무를 포함해 강도 높은 규제를 가하는데, 지평 공정거래그룹은 국내 주요 PEF인 IMM인베스트먼트를 대리해서 PEF의 공시대상 기업집단 지정 제외 업무를 최초로 성공시켰다.
과징금 3000억 원 규모의 국내 철강업계 ‘스크랩(고철)’ 담합 사건에선 지평 공정거래그룹이 대리한 사업자만 유일하게 무혐의 결정을 받았다. 미국 브로드컴의 거래상 지위남용 행위에 대해 진행된 동의의결 절차에서 피해 사업자인 삼성전자를 대리해 동의의결 기각 결정을 끌어냈다. 동의의결 절차가 개시된 뒤에 피해구제 조치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기각시킨 최초 사례다.
아울러 국내 최대 배터리 제조업체 중 하나인 SK온을 대리해 인도네시아‧캐나다‧한국에 각각 조인트벤처(JV)를 설립하고, 이에 따라 전 세계 10여 개 국가에 기업결합을 신고하는 업무를 하고 있다. 세계 최초 저작권 기반 거래 플랫폼 뮤직카우 표시‧광고법령 사건, 하이트진로 신제품 표시광고를 자문하기도 했다.
지평이 수행한 KT와 LG유플러스의 기업메시징 서비스 시장지배적 지위남용 사건 또한 ‘이윤압착(Margin Squeeze)’에 관해 한국 최초의 대법원 판례를 만들었다. 시장지배적 지위남용 행위 사건 중 가장 큰 건으로 평가받는 KT‧LG유플러스의 기업메시징 서비스 시장지배적 지위남용 사건에서 서울고등법원 판단을 뒤집고 대법원 파기환송 판결을 받았다. 전 세계적으로 논란이 많은 이윤압착 사안에서 우리 대법원이 처음으로 그리고 명확하게 입장을 밝힌 사례다.
이윤압착이란 수직 통합된 상류시장의 시장지배적 사업자가 상류시장 원재료 등의 도매가격과 하류시장의 완제품 소매가격의 차이를 줄임으로써 하류시장의 경쟁사업자가 효과적으로 경쟁하기 어려워 경쟁에서 배제되도록 하는 행위를 가리킨다.
KT와 LG유플러스는 기업메시징 서비스 가격을 전송서비스 건당 평균 최저 이용요금보다 낮은 수준으로 판매했다. 기업메시징이란 은행 등이 이동통신 사업자의 무선통신망을 활용해 이용자의 휴대폰으로 입출금 내역 등을 문자메시지로 전송해주는 서비스다.
장품(43‧39기) 변호사는 “싼 값에 서비스를 사용할 수 있는 소비자 입장에서는 환영할 일이나, 기업메시징 서비스 시장을 개척한 중소‧중견 테크기업들은 고사되는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장 변호사는 “경쟁업체들이 사라지면 시장을 독점하게 된 소수가 기존에 저렴하게 공급하던 서비스 이용 가격을 올릴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해외 사례를 보면 유럽연합(EU)과 미국은 이윤압착 인정 여부에 상반된 입장을 보인다. 유럽 법원은 도이치텔레콤 사건에서 일반전화 가입자에게 부과하는 소매요금보다 신규로 진입한 경쟁사업자의 가입자회선에 대한 접속요금(도매요금)을 높게 책정한 행위가 이윤압착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반면 미국 연방대법원은 링크라인 사건에서 상류시장에서 경쟁사업자와 거래할 의무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하류시장에서 약탈적 가격책정에 해당하지 않는 한 위법하지 않다고 판시했다.
쉽게 설명하면 미국은 저렴한 물품 및 용역 가격은 소비자에게 좋은 가격할인이니 문제될 게 없다는 논리로 ‘이윤압착’에 관대하다. 하지만 유럽은 이로 인해 경쟁자가 사라져 종국적으로 소비자가 독과점에 노출될 수 있는 역효과를 우려해 엄격하게 따진다.
장 변호사는 “네이버쇼핑 검색알고리즘 시장지배적 지위남용 행위 사건은 근래 들어 주목받는 온라인 플랫폼의 알고리즘 변경과 거래 조건을 차별하는 ‘자사 우대’에 관한 첫 번째 사건”이라며 “둘째 사건이라고 할 수 있는 카카오모빌리티 시장지배적 지위남용 행위 사건까지 연이어 수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 김지홍(51‧사법연수원 27기) 변호사 (공정거래그룹장)
뉴욕 주 변호사, 미국 Sidley Austin LLP 뉴욕사무소 International Lawyer 근무, 한국증권법학회 회원, 국제경쟁네트워크(ICN) 비정부자문가, 한국중재학회 회원, 한국경쟁법학회 이사, 대한상사중재원 중재인, 서울대학교 경쟁법센터 운영위원, 산업통상자원부 사업재편계획 심의위원회 위원, 국회 행정심판위원회 위원, 2020년 대통령 표창(제19회 공정거래의 날, 공정거래 기여 공로)
● 이병주(48‧사법연수원 34기) 변호사
한국경쟁법학회 회원, 서울대학교 경쟁법센터 회원, 한국유럽학회 회원, 국제경쟁네트워크(ICN) 비정부자문가, 한국공정경쟁연합회 강의, 국내 주요 대기업 임직원 대상 담합‧내부거래 및 대기업집단 규제 등 강의
● 장품(43‧사법연수원 39기) 변호사
서울지방변호사회 법제위원회 위원, 행정법이론실무학회 회원, 한국경쟁법학회 회원, 한국공정경쟁연합회 강의, 포스코건설 사내 하도급법 정기 교육 강의, 서울대학교 경쟁법센터 온라인플랫폼 규제 태스크포스(TF)
박일경 기자 ekp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