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동근 칼럼] 미·중 투키디데스 함정과 한국의 전략적 선택

입력 2023-08-22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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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팽창주의, 美와 충돌 불가피
자유·시장경제 발전시켜온 한국
이익 아닌 가치지향 외교 펼쳐야

미·중 패권경쟁은 ‘투키디데스 함정’에 비견된다. 기존 패권국과 신흥 강대국 간의 충돌을 ‘피할 수 없는 함정’에 비유한 것이다. 패권 경쟁은, 도전국의 의도와 관계없이 ‘패권국의 지위가 위협당하고 있다’는 인식에 의해 추동된다. 이처럼 쫓기는 쪽의 초조감에 방점을 찍으면 미·중 패권경쟁은 중국의 부상과 이에 따른 미국의 두려움에서 비롯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같은 하늘에 태양이 둘일 수 없기 때문에 패권 경쟁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닌 ‘현실 변수’이다. 무게추가 한쪽으로 완전히 기울기 전에는 늘 현재진행형이다. 문재인 정부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담장(fence sitter)’에 걸터앉음으로써 ‘전략적 모호’의 입장을 견지했다. 안미경중(安美經中) 즉 ‘안보는 미국에 의존하되 경제는 중국과 협력한다’는 식이었다. 하지만 ‘안미’는 허울이었고, 실제적으로는 중국에 경도된 입장을 취했다.

최근 중국 1위 부동산 개발업체 비구이위안(컨트리 가든) 디폴트 우려에 주택가격 하락세가 겹치면서 중국이 장기적인 저성장의 늪에 빠질 것이란 전망에 힘이 실리고 있다. 따라서 중국발(發) 위험의 디리스킹(derisking) 차원에서 중국과 거리를 둬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경제적 실리지향이 외교의 본질일 수는 없다. 언젠가는 한·미·일로 압축되는 해양세력과 북·중·러로 압축되는 대륙세력 중에서 택일해야 한다. 그렇다면 한국은 헌법적 가치인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존속과 발전을 위해서 그 발원지인 ‘해양세력’에 합류해야 한다.

미국은 2001년 중국을 세계무역기구(WTO) 회원으로 받아들여 자유주의 무역질서에 편입시켰다. 당시 서방세계는 중국에 대해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일원이 될 것이란 기대를 가졌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중국은 보편적 자유주의 국제질서에 역행하면서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초강대국 실현의 꿈을 좇았다. ‘중국몽’은 과거 중화의 영광을 회복하고 ‘세계의 지배국’으로 부상하겠다는 구상이다. 시진핑 주석의 3연임 강행은 ‘중국의 팽창주의와 독재체제’를 그대로 드러낸 것이다. 중국 견제에 대해 미국 민주·공화당 모두 초당적 지지를 보냄으로써 미·중 간의 갈등은 ‘상수화’됐다.

한편 중국과 러시아는 협력을 강화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 날짜를 동계올림픽 폐막 직후로 중국과 조율했다. ‘구(舊)소련연방체’ 복원 시도의 일환으로 감행된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중국의 묵시적 지지는 투키디데스 함정에서 러시아의 중국 지지를 염두에 둔 것이다.

독일 정부는 7월 13일 ‘대중국 전략’ 발표를 통해 최대 무역 상대국인 중국과의 관계를 “경제적 경쟁자, 체제의 라이벌”로 선언했다. 이는 그간 중국과 독일의 밀월 관계에 비춰볼 때 ‘폭탄선언’이다. 독일은 1990년대 탈냉전 이후 실용노선을 걸으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핵심국가임에도 ‘잠재적 적국’인 중국과 교역을 확대했다. 하지만 독일의 중국에 대한 높은 무역의존도는 독일의 외교적, 경제적 운신의 폭을 제약했다. 독일의 대중국 무역 규모는 3000억 유로를 넘었다. 그런 독일이 대중국 정책 전환을 통해 경제적 이익 대신 자유민주 진영의 대의를 선택한 것이다.

독일의 정책 전환은 한국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1992년 8월 24일 한·중수교 이후 30년간 한국의 대중 누적 무역흑자는 7099억 달러다. 경제적 실리를 감안하면 중국은 놓칠 수 없는 시장이다. 경제적 이익에 매몰돼 중국에 침묵으로 순응해 온 한국 정부와 기업에 독일의 정책전환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난 6월 주한중국대사가 이재명 민주당 대표에게 쏟아부은 “중국 편을 들지 않으면 크게 후회할 것”이라는 독설은 그간의 한·중 관계가 ‘큰 봉우리, 작은 봉우리’였음을 웅변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사드 3불(不)’ 정책은 대한민국의 주권을 스스로 부정한 자해행위다. 3불은 “사드 추가 배치, 미 미사일 방어체계 참여, 한·미·일 군사 동맹을 하지 않는다”는 약속이다. 문재인 정부는 “3불은 양국 간 합의가 아니다”라고 항변하지만, 2017년 10월 정부 문서에 ‘한·중 간 약속’으로 명기돼 있다.

국가 간 외교관계에서 ‘이념기반과 가치지향’은 여전히 중요하다. 이념은 ‘탈(脫)’의 대상이 아니다. 이익지향이 아닌 가치지향 외교를 통해 해양세력의 일원으로 합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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