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가 흥행 중이다. 영화는 대지진 가운데 유일하게 무너지지 않은 ‘황궁 아파트’를 배경으로 입주민들의 생존 과정을 그린다. 공교롭게도 현실에서 부실시공, 붕괴사고 등 ‘아파트’를 둘러싼 여러 문제가 논란이 되고 있어서 그런지 이 영화의 흥행이 새삼 다른 의미로 느껴진다. 그도 그럴 것이 ‘황궁 아파트처럼 아파트 지어주세요’라는 한 관람객의 한 줄 평엔 수많은 공감 버튼이 눌렸다. 현실 속 콘크리트 디스토피아에서 벗어나고픈 이들의 간절한 바람이 담겼을 것이다.
대지진도 무너뜨리지 못했던 황궁 아파트를 무너뜨린 건 다름 아닌 인간이었다. 구체적으로 인간들 사이에서 무너진 신뢰 때문이었다. “아파트는 주민의 것”이라고 외쳤던 주민 대표 영탁(이병헌 분)이 정작 주민이 아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아파트 주민 조직은 와해돼 버렸다. 영화처럼 최근 현실 속 아파트 부실시공 논란 역시 무너진 신뢰가 도화선이 됐다. 영탁이 가짜 주민 대표였던 것처럼 아파트 단지 곳곳에서 가짜 감리가 넘쳤다. 이들은 단지 한국토지주택공사(LH) 전관 출신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여러 아파트 공사 감리 용역을 싹쓸이했고, 정작 관리·감독 등 본 업무는 등한시했다.
무너진 신뢰로 인한 붕괴 공포는 이제는 민간 아파트를 넘어 건축물 전반으로 확산하고 있다. 실제로 부실 감리로 논란이 됐던 업체 다수가 올해도 국가기관, 지자체, 공기업 등이 발주한 CM(건설사업관리), 감리, 설계 등 여러 건축물 공사와 관련된 용역을 따내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학교, 병원, 도서관 등 생활에 꼭 필요한 사회기반시설 관련 공사가 대부분이었다. 한 업계 관계자는 “단지 이번에는 수면 위로 드러난 게 LH였을 뿐”이라며 “이미 예전부터 국가기관과 지자체 출신 전관이 건축사사무소나 엔지니어링 업체에 들어가 여러 공공 공사를 손쉽게 따내 왔다”고 말했다.
이제는 콘크리트 디스토피아에서 벗어나야만 한다. 단순히 이미 쓰러진 기둥을 다시 세우고, 콘크리트와 보조물로 덧대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무너진 신뢰를 다시 탄탄히 쌓는 게 급선무다. 가짜 감리와 전관 업체가 다시는 현장에 발들일 수 없도록 강력한 처벌과 예방책이 필요하다. 또 비단 아파트뿐만 아니라 각 건축물 특성에 맞는 관리, 감독 지침도 마련돼야 한다. 정부는 10월 건설 이권 카르텔 혁파 방안을 발표한다는 계획이다. 콘크리트 디스토피아에서 콘크리트 유토피아로 거듭날 수 있도록 만들어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