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생명을 위협하는 사건사고가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 다수의 인명피해를 낸 ‘오송 지하차도 침수’ 사고부터, 철근 누락 아파트 무더기 적발까지. 악재가 동시다발적으로 터지자 국민의힘은 그 책임을 전 정부에 미루는 전략을 구사하는 모습이다.
일각에선 여당의 이러한 반복된 ‘책임 전가’가 내년 총선 표심을 끌어안기 위한 전략이란 해석을 내놓고 있다. 그리고 그 부작용으론 ‘협치 실종’이 거론된다. 여야가 민생법안은 방치한 채 개별 사안마다 서로를 헐뜯고 힐난하다 21대 국회가 마무리될 수 있단 우려다.
3일 정치권에 따르면 국민의힘은 LH(한국주택토지공사) 발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철근 누락이 무더기로 발견돼 이른바 ‘순살 아파트’ 문제가 불거진 것과 관련해, 근본적 원인이 전임 문재인 정부의 ‘이권 카르텔’에 있다고 강력히 주장하고 있다.
앞서 전날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기자간담회를 열고 “문재인 정부 시절 주택건설 사업 관리정책에 심각한 결함이 있었음을 추정해볼 수 있다”면서 “필요하다면 지난 정부 국토부는 물론 대통령실 정책결정자에 대해서도 조사가 이뤄져야”한다며 문 정부 시절 실무자들에 대한 강력한 문책을 예고하기도 했다.
폭우로 발생한 전국적 수해 피해에도 여당은 비슷한 대응 방식을 보였다. 14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오송 지하차도 사고’부터 괴산댐 범람 등 폭우 피해가 심각해지자, 여당은 전임 정부의 하천 및 물관리 정책을 도마 위에 올렸다.
이철규 국민의힘 사무총장은 19일 “문 정부 시절 어떤 이유에서인지 물관리를 국토부에서 빼앗아 환경부로 이관함으로써 수자원 관리의 비효율성과 비전문성이 겉으로 드러났다”고 공격했다. 그러면서 “전 정부의 물관리일원화 사업의 총체적 허점이 드러난 만큼 이 부분에 대해서도 원점으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막상 여당도 전임 정부의 ‘실책 포인트’가 정확히 어디에 있는진 명쾌한 대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윤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철근 누락 아파트 사태와 관련해 전 정부의 잘못이 드러난 게 있냐’는 질문에 ‘앞으로 조사를 할 것’이란 취지의 말로 답변을 대신했다.
윤 원내대표는 “단편적으로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면서 “이제 우리 당 진상규명 태스크포스(TF)가 활동하고 정부에서도 전수조사를 하고 있다”면서 “그 외 여러 과정을 통해서 지금 나타나는 문제점들의 인과관계를 따져볼 것”이라면서도 구체적 실책 사례를 제시하진 못했다.
일각에선 이러한 ‘남 탓 정치’가 총선을 9개월 앞둔 여당의 전략적 언어란 해석이 나온다. 장성호 건국대 교수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그때(전임 정부 시절) 아파트 공사 인허가를 낸 건 사실이다. 하지만 관리 감독 등 컨트롤타워는 현재의 업무지 않냐”면서 “표가 아쉽기 때문에 정치적인 목적을 달성하려는 ‘지지층 보호 전략’이라고 본다”고 해석했다.
책임 공방이 계속되는 한 여야 간 ‘협치 실종’이 21대 회기 말까지 지속될 거란 예측도 나왔다. 장 교수는 “(상대 당을) 죽여야 산다고 보는 거다. 그러다보니 대화와 타협이 없어졌고, 정치도 실종됐다”면서 “서로 30% 정도의 ‘콘크리트 지지층’만 보면서 각자도생하고 있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몇 차례 책임 공방이 오가면서 여야 간 감정의 골은 연일 깊어지는 중이다. 권칠승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전날 브리핑을 통해 “정부와 여당이 철근 누락 아파트 사태와 관련 또다시 전 정부 탓, 카르텔 척결에 열을 올리고 있다”라며 “부실 공사로 인한 상황에서 책임을 회피하려는 남 탓 DNA가 어김없이 발현된 것”이라고 비판 수위를 높였다.
그러면서 “집권 2년 차임에도 현안마다 전 정부 탓을 하고 있으니 ‘무정부 상태’라는 비판이 나오는 것”이라고 날을 세웠다.
문제는 이러한 상생과 협치의 실종이 곧 민생법안의 무기한 표류로 이어질 수도 있단 점이다. 특히 여당 소속 의원이 발의한 법안은 169석이라는 거대 의석을 차지한 민주당의 협조 없이는 쉽사리 본회의 문턱을 넘기 힘든 상황이다.
당장 ‘철근 누락 아파트’ 사태를 미연에 방지할 부실 공사 방지 법안 10여 건도 여전히 소관 상임위원회에 계류돼 심사 및 처리를 기다리고 있다. 여당 측에서도 매년 꾸준히 관련 법안을 발의해왔다.
일례로, 국토교통위원회 간사인 김정재 국민의힘 의원은 건설산업기본법 개정안을 지난해 8월 대표발의했다. 개정안에는 건설사가 고의·과실로 인한 부실시공으로 영업정지나 과징금 처분을 받은 뒤 5년 이내에 다시 법령을 위반하면 3년간 시공사 등록을 제한하는 내용이 담겼다. 김도읍 의원도 건설사에 부과할 수 있는 과징금 상한을 10억 원으로 상향하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다. 이제 남은 건 여야 간의 조율 및 합의인 셈이다.
야당은 협치 복원에 먼저 손을 내민 상황이다. 박광온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정책조정회의를 열고 “(이번 사태는) 국민 안전과 직결된 중대 사안이다. 여야가 따로 있을 수 없다. 남 탓할 문제는 더욱 아니다”라고 말하면서 “국회가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도 있다. 먼저 광주·인천 붕괴사고 이후에도 근본적 대책을 마련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부실시공에 대한 처벌 강화와 건설감리업체의 안전 책임 강화 등의 법안들이 국회서 잠자고 있다. 신속히 처리할 것을 여당에 제안한다”고 협력을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