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한 번도 디폴트에 빠진 적 없다?...부채한도 협상의 역사

입력 2023-05-2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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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역사상 디폴트 빠진 적 없다”
악시오스 “지금껏 최소 세 번은 디폴트 경험”
역대 부채한도 상향 최다는 레이건 18회
클린턴, 오바마 등 공화당과 충돌 빈번
역사적으로 선거 결과 따라 협상 과열 양상

미국 연방정부가 내달 1일을 기점으로 디폴트(채무불이행)에 빠질 위기에 놓였다. 이미 지난해 정부 부채가 한도에 도달한 상황에서 백악관과 공화당은 한도 상향을 놓고 여전히 줄다리기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정부가 시장을 달래며 내세우는 게 있으니 “우린 디폴트에 빠진 적이 없다”는 것. 카린 장-피에르 백악관 대변인은 지난달 “우린 역사상 빚을 못 갚았던 적이 없다”고 밝혔고 같은 달 재닛 옐런 재무장관도 “미국은 1789년 이후로 모든 비용을 제때 지급했다”고 주장했다. 과연 그럴까. 미국의 디폴트와 부채한도 협상의 역사를 알아보자.

지금까지 최소 세 번은 디폴트

▲케빈 매카시 미국 하원의장이 16일(현지시간) 부채한도 상향과 관련한 기자회견을 마치고 퇴장하고 있다. 워싱턴D.C./로이터연합뉴스
▲케빈 매카시 미국 하원의장이 16일(현지시간) 부채한도 상향과 관련한 기자회견을 마치고 퇴장하고 있다. 워싱턴D.C./로이터연합뉴스
미국 인터넷매체 악시오스는 옐런 장관과 장-피에르 대변인의 주장이 틀렸다고 한다. 악시오스에 따르면 미국 정부는 지금껏 최소 세 번은 빚을 갚지 못했다. 1814년 미·영 전쟁 당시 알렉산더 댈러스 당시 미 재무장관은 “채권 배당금이 제때 지급되지 않았고 많은 양의 국고채가 이미 부도처리 됐다”며 디폴트를 인정했다.

1933~1934년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집권했던 당시에도 미국은 디폴트에 빠졌다. 정부는 재무부가 발행한 채권 보유자들에게 투자금을 금으로 상환(금본위제)하기로 했지만,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이는 명백히 디폴트에 해당하는 계약 파기였다고 악시오스는 짚었다.

마지막 디폴트는 1979년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4월과 5월 컴퓨터 오작동과 소액 투자자들의 과도한 요구, 부채한도 상향에 대한 의회 논쟁 속에 미국은 1억2200만 달러(약 1633억 원)의 국채를 적시에 상환하지 못했다”고 보도했다. 다만 “당시 재무부는 이를 디폴트가 아닌 ‘지연(delay)’으로 규정했다”고 덧붙였다.

디폴트는 피했어도 셧다운(정부 폐쇄)을 피하지 못한 경우도 꽤 있었다. 1976년 이후 현재까지 예산 부족으로 정부가 문을 닫은 적은 22회에 달한다.

역대 부채한도 협상이 가장 치열했던 정권은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이 1984년 10월 8일 대선 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루이스빌(미국)/AP뉴시스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이 1984년 10월 8일 대선 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루이스빌(미국)/AP뉴시스
그렇다면 이런 디폴트를 막기 위한 부채한도 협상은 역대 정권에서 얼마나 자주 일어났을까. 미국 컨설팅업체 BGR그룹에 따르면 미국에선 1835~1836년 약 1년을 제외하곤 늘 정부가 부채를 안고 있었다. 또 정부 부채는 31대 대통령인 허버트 후버 정권 이후 모든 정권에서 꾸준히 증가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1933년부터 버락 오바마 시절인 2012년까지 부채한도가 총 104회 수정됐고, 이 가운데 상향이 94회, 하향이 10회였다고 집계했다. 상향의 경우 공화당이 54회, 민주당이 40회였다.

이 기간 가장 여러 번 인상한 정권은 로널드 레이건 때로, 18차례에 달했다. △지미 카터와 린든 존슨 각각 10차례 △아버지 조지 부시 9차례 △빌 클린턴 8차례 △아들 조지 부시 7차례 △버락 오바마 5차례 순이다.

▲빌 클린턴(가운데) 미국 대통령과 뉴트 깅리치(왼쪽) 미 하원의장이 1997년 2월 11일 의회 지도부들과 회의하고 있다. 워싱턴D.C./AP뉴시스
▲빌 클린턴(가운데) 미국 대통령과 뉴트 깅리치(왼쪽) 미 하원의장이 1997년 2월 11일 의회 지도부들과 회의하고 있다. 워싱턴D.C./AP뉴시스
일련의 과정에서 유독 백악관과 의회가 부침을 겪었던 때가 있었다. 대표적인 게 1995년 이른바 ‘공화당 혁명’ 때다. 클린턴 대통령의 임기 첫해였던 1994년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은 뉴트 깅리치 하원의장을 중심으로 상·하원을 모두 뒤집는 데 성공했다. 이듬해 공화당은 한도 상향의 조건으로 클린턴 대통령에게 정부 지출을 삭감할 것을 압박했다. 지금 바이든 정부가 처한 상황과 비슷하다. 클린턴 대통령은 공화당의 제안을 거절했고, 결국 정부는 5일간 폐쇄됐다. 이후 대통령은 공화당의 두 번째 제안마저 거절했고 정부 셧다운은 3주 연장됐다. 당시 클린턴 대통령이 부유세를 비롯한 과세 정책을 통해 재정적자를 줄이려 했던 점도 공화당엔 불만 거리였다고 한다.

이 문제는 결국 민심 악화를 의식한 공화당이 백악관의 예산안을 받아들이면서 해결됐다. 다만 공화당은 셧다운의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었고 당의 정치적 입지는 더 좁아졌다. 결과는 클린턴의 재선, 민주당의 차기 중간선거 승리였다.

▲2015년 3월 17일 버락 오바마(오른쪽) 당시 미국 대통령이 존 베이너 하원의장과 의회 앞을 걷고 있다. 워싱턴D.C./AP뉴시스
▲2015년 3월 17일 버락 오바마(오른쪽) 당시 미국 대통령이 존 베이너 하원의장과 의회 앞을 걷고 있다. 워싱턴D.C./AP뉴시스
2011년 협상 역시 1995년과 마찬가지로 선거와 의회 다수당의 변화 속에 진행됐다. 오바마 대통령 임기 중반이던 2010년 공화당은 하원을 장악했고 곧바로 부채한도 상향 조건으로 자신들의 재정적자 축소 패키지에 동의할 것을 압박했다. 당시 디폴트가 가까워지면서 S&P500지수는 17% 폭락하고 채권 금리는 급등했다.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미국 국가 신용등급마저 낮췄다.

2011년 7월 31일, 자금 고갈 이틀을 남기고 의회와 백악관은 합의했다. 그렇게 제정된 법이 예산통제법(BCA)이다. 이들은 향후 10년간 정부 지출을 9170억 달러 줄이는 대신 부채한도를 2조1000억 달러로 늘리기로 했다.

이 밖에 2013년에도 지출 삭감과 한도 상향을 놓고 충돌이 벌어져 정부가 16일간 폐쇄되는 등 부채한도 협상의 역사는 미국 정치 역사와 함께 이어져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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