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령 등에 위임을 받아 규정한 지침·명령 등보다 단체협약의 효력을 우선 인정한다.”
한 공공기관에서 실제 존재하는 단체협약 조항이다. 단체협약에 일종의 특별법적 지위를 부여한 것이다. 설사 단체협약 내용이 법령 등에 반하더라도 인정한단 것으로 ‘불법’이다.
고용노동부는 올해 3월부터 공무원, 교원, 공공기관 등 공공부문의 단체협약과 노동조합 규약을 확인한 결과 479개 기관의 단체협약 중 179개(37.4%) 단체협약에서 불법·무효로 판단되는 내용이 확인됐다고 17일 밝혔다. 노조 규약은 48개 중 6개에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위반 사항이 확인됐다. 이 밖에 노조와 조합원에 대한 특혜, 인사·경영권 침해 등 불합리하다고 여겨지는 내용이 포함된 단체협약(135개)도 다수 파악됐다.
주요 사례를 보면, 불법인 단체협약 조항으로 △노동관계법보다 단체협약 효력을 우선 인정한다는 조항(공무원·교원) △노조 간부에 대한 인사 시 노조와 합의한다는 조항(공무원) △단체협약 불이행 시 법적 조정절차를 거치지 않고 노조의 단체행동이 가능하다는 조항(공공기관) △특정 노조를 유일한 교섭단체로 인정한다는 조항(공공기관·교원) 등이 있었다.
이정식 고용부 장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공무원의 경우, 법에 단체협약으로 정할 수 없는 내용을 정하고 있음에도 노·사가 이를 협정으로 체결하는 불법 사례가 많았다”고 지적했다. △구조조정·조직개편 등을 이유로 한 정원 축소를 금지하고, 노·사 합의해 정원을 조정한다는 조항 △인사(승진)위원회에 노조 추천 외부인사를 포함한다는 조항 등이 사례다.
노동관계법 위반 사례도 다수 적발됐다. △직원·단시간근로자의 최저임금을 법정 최저임금에 못 미치는 금액으로 규정한 조항 △육아휴직 조건을 ‘1년 이상 근속’으로 명시한 조항 △노조 가입대상이 노조에 가입하지 않거나 탈퇴 시 해고한다는 조항(이상 공공기관) 등이다.
불법인 노조 규약으로는 △조합 탈퇴를 선동·주도하는 조합원을 위원장이 직권으로 권한 정지할 수 있도록 한 조항(공무원) △위원장을 제외한 임원을 직접선거가 아닌 운영위원회 간접선거, 위원장 또는 위원장 당선자 지명 등으로 선출하도록 한 조항(공무원·교원) 등이 있었다.
법령에 반하지는 않으나 사회 통념상 불합리하다고 판단되는 단체협약은 △금고 이상의 형이 확정되면 퇴직 또는 해고 대상이나, 노조 간부의 조합활동으로 인한 경우에는 퇴직 또는 해고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조항(공공기관) △학부모 대상 노조 선전물 배포 등 노조 홍보활동을 보장하고 학교시설인 방송시설·메신저 등을 이용한 노조 홍보를 허용하는 조항(교원) △노조 활동 방해 우려가 있는 경우 노조의 채용 거부 요구권을 보장하는 조항(교원) 등이다.
이들 협약에 대해 이 장관은 “불합리한 단체협약은 그 자체로 위법은 아니지만, 공정과 상식이라는 국민의 눈높이에 비추어 볼 때 노·사의 자율적 개선이 요구되는 사안”이라고 말했다.
고용부는 불법인 단체협약과 노조 규약에 대해 노동위원회 의결을 얻어 시정명령을 내리고, 불응할 경우 노동관계법 위반으로 형사처분할 방침이다. 불합리하거나 무효인 단체협약에 대해서는 노·사의 자율적 개선을 권고하고, 관계부처와 함께 이를 지원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