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통신] ‘상업용 부동산’發 금융대란 대비를

입력 2023-05-08 05:00 수정 2023-05-08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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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택근무로 사무실 공실률 늘어
금리인상으로 엎친 데 덮친 격
건물가치↓, 경기침체 유발 우려

실리콘밸리은행(SVB)이 퍼스트시티즌 은행으로 넘어가면서 진정되는 듯했던 금융위기설은 퍼스트리퍼블릭은행이 JP모건에 인수되면서 또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연방준비제도(Fed)는 3일(현지시간)에도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올려 금융대란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금융불안은 고금리뿐만 아니라 인플레이션과 경기침체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여서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형국이다. 게다가 살얼음판을 걷고 있는 상업용 부동산 시장이 파국으로 몰고 갈 시한폭탄이 될 수 있다는 경고까지 겹쳐 불안감은 증폭되고 있다. 포천지도 지난달 초 실리콘밸리은행과 시그니처은행 파산이 시장 돈줄을 죄어 상업용 부동산 시장이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예고한 바 있다.

대형 투자펀드 운용 전문가들도 한목소리다. 알리안츠의 수석 경제자문위원 모하메드 에리언은 “만기가 임박한 융자상환금이 상업용 부동산 시장과 경제 환경을 바꿔 놓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억만장자 투자자 하워드 마크스도 “대규모 채무불이행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고 경고했다.

이에 실증적 근거를 제시한 건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다. 리사 샤렛 자산관리책임자는 2조9000억 달러(약 3857조 원)의 상업용 모기지 가운데 절반 이상이 2년 내 재융자를 받아야 할 처지인데, 그럴 경우 이자율이 연 3.50~4.50%포인트가량 오를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 절박한 상황은 사실 두 은행 파산 이전부터 예견됐었다. 게다가 공실률마저 1995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어서 절벽을 향해 가고 있다는 것이다.

은행 측은 상업용 부동산 가격이 고점 대비 앞으로 40%까지 떨어질 것이라며 “금융위기 때보다 더 상황이 안 좋다”고 평가하고 있다.

골드만삭스도 같은 의견이다. 상업용 부동산, 특히 사무용 빌딩 소유자들이 막대한 자금 조달비용을 감당하기 힘들고, 대출 기준 강화로 은행 돈을 빌리기가 더 힘들 것으로 보고 있다.

오피스 빌딩들에 가장 큰 타격을 안겨 준 것은 재택근무 증가다. 팬데믹 이후 급증한 재택 근무 형태가 사무실 근무 형태로 일부 환원되긴 했지만 여전히 높은 재택근무 방식 때문에 공실률이 높아졌고, 금리 인상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건물주들의 부담이 커진 것이다.

뉴욕의 최대 사무실 임대업자인 SL그린리얼티 공실률은 8.8%다. 2년 전 4.5%에 비해 크게 늘었다.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도 10.2%에서 14%로 3년 사이 4%포인트 가까이 높아졌다. 전국 평균 사무실 공실률은 18.6%나 된다. 뉴욕, LA, 시카고, 샌프란시스코 등 사무용 빌딩이 밀집돼 있는 도시들이 직격탄을 맞았다.

시카고의 명물 윌리스타워를 소유하고 있는 사모펀드회사 블랙스톤은 투자가치가 3분의 2로 줄었다고 투자자들에게 통보했다. 이 회사는 13억3000만 달러에 대한 모기지를 지난 3월 네 번째 연장했다.

맨해튼 콜게이트 본사 건물을 공동 소유하고 있는 티슈만 스페이어사도 8월에 만기가 도래하는 4억8500만 달러 대출금 상환을 2년 연장하려고 모색 중이다.

투자펀드사 브룩필드프로퍼티는 LA에 있는 두 개의 건물이 담보로 들어가 있는 7억5000만 달러의 은행 채무를 갚지 못해 채무불이행 선언을 했다.

임대율이 떨어지면서 건물 가치가 폭락하고, 은행은 대출을 꺼리는 악순환이 거듭되면 결국 경기침체라는 파국으로 이어진다는 걸 2008년에 이미 경험한 바 있다.

컬럼비아대와 뉴욕대는 뉴욕시 빌딩 가치가 앞으로 몇 년 동안 487억 달러가량 폭락할 수 있다는 보고서를 내놓았다. 은행들은 내년 말까지 전국에서 1조5000억 달러에 달하는 상업용 부동산 담보 대출 만기가 도래하지만 건물주들은 재융자에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미 대형 부동산 회사들의 주가가 3년 전에 비해 25%가량 떨어졌다.

오래된 건물일수록 내상이 크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사무실 임대계약의 80%가 새로 지어진 A급 건물이어서, 노후화된 건물일수록 공실률이 높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일부 부동산 큰손들은 사무용 건물을 포기하고, 고급 아파트나 카지노 개발로 방향을 틀고 있다.

이런 현상에 대다수 시민들은 대환영이다. 공급 과잉인데 오피스 건물은 더 이상 짓지 말고, 주상복합 아파트를 지으라는 주문이다. 맨해튼에서 살고 싶어도 주거비가 너무 비싸서 살지 못하는 젊은이들이 많은데 아파트를 지으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게 아니냐는 것이다. 초고층 유리 건물을 마구 지어 개발도상국의 도시처럼 망가뜨리지 말고, 뉴욕의 특성에 맞게 문화와 예술, 교육의 도시로 개발해 나가야 한다는 비판도 있다.

미국의 상업용 부동산 시장은 대략 20조 달러로 추산된다. 시한폭탄 같은 이 거대 시장의 폭발력은 2008년의 경제위기를 능가할지도 모른다. Wanseob.ko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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