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업계는 규제 관련 목소리 없어…“모난 돌 되면 안 돼”
“관료중심적 문화, 이해관계자 의견 반영 잘 안되는 게 현실”
미국의 가상자산 거래소 코인베이스가 미 증권거래위원회(SEC)에 ‘규제 불명확성’을 해소하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상대적으로 국내선 규제와 관련해 목소리를 내는 기업이 거의 없는 것을 두고 당국의 ‘눈치’를 보는 문화 때문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26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24일(현지시각) 북미 최대 가상자산 거래소 코인베이스가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를 고소했다. 코인베이스는 연방법원을 통해 SEC가 기존 증권법이 가상자산 업계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에 대한 확실한 규제 지침을 제공하도록 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번 코인베이스의 SEC 고소 외에도 해외, 특히 미국의 가상자산 기업 임원이나 업계 관계자들은 다양한 채널을 통해 규제 환경이나 규제 당국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내놓거나, 당국을 비판하는 경우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일례로 2월 SEC가 미국 거래소 크라켄에 제재를 가했을 당시, 라이언 셀키스 메사리 창업자는 “내 인생의 새로운 목표는 게리 겐슬러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위원장의 정치 커리어를 끝내는 것”이라는 원색적 비판도 서슴지 않았다.
이와 비교하면 국내 업계는 상대적으로 조용하다. 업계 역시 실제로 별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지 않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었다. 이투데이와 통화한 대부분의 업계관계자들은 “국내에선 ‘빅마우스’가 나오기 힘든 환경”이라고 평가했다. 여러 가지 상황이 원인으로 지목됐지만, 결국 기업이나 업계가 당국의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이 큰 이유로 꼽힌다.
업계관계자 A는 “가상자산 뿐만 아니라 금융당국의 범위 안에 있는 다른 업계에서도 빅마우스가 없는 걸로 알고 있다”면서 “당국 입김이 매우 강하기 때문에 독단적으로 메시지를 내거나 할 경우를 리스크로 본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 B 역시 “우리나라 금융은 관치로 시작했지만, 미국의 경우 민간에 기반을 둔 만큼 목소리를 내는 게 자연스러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국내선) 정치권이나 관의 눈치를 안 보기 힘들고, 그래서 목소리를 내는 게 쉽지 않다”면서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속담처럼 누구라도 굳이 나서는 것은 부담”이라고 털어놓았다.
상황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관계자 C는 개별 기업의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상황을 두고 “SEC의 경우 개별 기업에 대해 제한을 걸고 있지만, 우리 금융당국은 그러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국내는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이미 규제 수준이 높았다”면서 “암묵적으로 규제를 따르고 있었기 때문에 크게 부딧힐 일이 없었지만, 미국은 자유로웠기 때문에 부딪힐 수 있는 요소들이 많은 것”이라고 덧붙였다. 관계자 D 역시 “국내는 아직 개별 기업에 대한 규제 움직임이 없어서, 기업의 대응도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이들 역시 기본적으로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을 전제하고 있었다.
지난 20일(현지시각) 유럽의 첫 가상자산 포괄 법안인 MiCA가 통과됐고, 국내에서도 25일 투자자보호를 골자로 하는 가상자산기본법 1단계가 통과되는 등 각국의 규제 마련이 본격화하고 있다. 올해가 가상자산 규제 정립의 원년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많은 만큼, 국내에서 규제와 관련한 다양한 목소리가 나오고 이를 충분히 반영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이정엽 로집사 가상자산 레귤레이션센터장은 “우리나라를 포함한 아시아는 기본적으로 관료중심적 성격이 강해 이해관계자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지 못하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현재까진 우리나라의 법안이 유럽(MiCA)보단 낫고, 생각보다 빠르게 법적 틀을 만들고 있기 때문에, 적용 단계에서 잘 해보자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