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금융권 최고경영자(CEO) 절반 이상이 정부와 금융당국의 발언과 정책에 압박감을 느낀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본지가 주요 금융 35개사 CEO에 대한 설문조사를 분석 보도한 어제 1면 기사의 골자가 이렇다. CEO의 58.3%는 ‘압박감을 느낀다’라고 했고, 8.4%는 ‘약간의 압박감을 느낀다’라고 했다. CEO 10명 중 6~7명이 정부의 금융정책과 그 집행에 관치의 그림자가 짙게 깔린 것으로 여긴다는 뜻이다.
본지 설문엔 ‘관치 금융’을 대놓고 물은 항목도 있다. ‘금융당국의 시장 개입 정도가 관치금융으로 보이는가’라는 질문이다. CEO의 52%가 ‘그렇다’라고 답했다. ‘보통이다’라고 답한 응답자는 44%였다. ‘아니다’라고 답한 응답은 4%에 그쳤다. 관치 금융이 아닌 것으로 보는 이들이 거의 없는 셈이다. 금융당국을 낯뜨겁게 하는 조사 결과다.
CEO들은 은행에 ‘횡재세’를 부과하려는 정치권 일각의 움직임과 관련해서는 대부분 반대했다. 반대 근거로는 주로 “초과이익 기준 및 산출이 불분명하다”, “횡재세가 도입되면 추후 은행권의 부실 발생 시 지원도 가능해야 한다”는 논리를 들었다. 금융당국이 금융권 혁신을 위해 진행 중인 태스크포스 활동에 대한 평가는 그리 높지 않은 것(‘보통이다’ 50%, ‘혁신적이지 않다’ 11.5%)으로 나타났다.
설문조사 결과가 시사하는 바는 자명하다. 국내 금융권은 정부의 관치 본능, 정치권의 포퓰리즘 입법 가능성을 매우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다. 대다수 CEO는 ‘올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영 핵심 키워드’를 묻는 항목에 ‘리스크 관리’(76.3%)를 꼽았다. 선진경제, 신흥경제를 가리지 않고 시스템 리스크가 높아지는 만큼 ‘리스크 관리’가 선택된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하지만 만에 하나, 정부·정치권의 후진적 개입과 간섭에 대한 근심이 금융권 CEO들이 택한 ‘리스크’의 행간에 깔렸다면 실로 개탄스럽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퇴행적이기도 쉽지 않다.
윤석열 정부는 민간이 성장을 주도하고 정부는 공정과 효율성을 제고한다는 국정 비전을 앞세워 국민 지지를 받고 집권했다. 자유시장경제 가치를 존중하고 추구하는 우익 정부인 것이다. 지구촌 전체가 과도한 부채와 금융 불안으로 휘청대는 현 시국은 시장원리와 원칙에 충실한 금융정책과 집행이 그 어느 때보다 요구되는 시기다. 시장 가치를 잘 안다는 정부가 하필 이런 시기에 금융권 팔목을 비틀다 썰렁하고 부정적인 반응을 빚어내니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일이다. 금융 현장의 관치 우려를 어찌 보는지, 정부에 묻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