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룡 우리금융지주 신임 회장이 공식 취임해 3년간의 임기를 시작한다. ‘관치금융’ 논란이 있었지만 24일 임 신임 회장의 사내이사 선임 안건이 주주총회에서 무리없이 통과됐고 이사회에서 임 신임 회장을 최종 선임했다.
임 회장은 이날 취임사에서 ‘우리금융이 나아가야 할 방향’으로 △신뢰 △빠른 혁신 △경쟁력 △국민 등 4가지 키워드를 제시했다.
우선 임 회장은 “시장과 고객의 신뢰를 받기 위해서는 탄탄한 리스크 관리 역량을 갖추고 빈틈없는 내부통제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그룹 차원에서 리스크를 조기에 진단하고 미리 대비할 수 있도록 관리 체계를 고도화해야 한다”며 “자회사들 역시 단기 수익만이 아닌 철저한 리스크 관리가 뒷받침된 건전한 영업문화를 정착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어 임 회장은 내부통제에 있어서 ‘실효성’이 있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내부통제는 절차나 제도를 만드는 것도 필요하지만, 본부와 현장에 모두 실효성 있게 작동하도록 점검과 관리를 해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임 회장이 리스크 관리 역량, 내부통제 시스템을 통한 신뢰 구축을 강조한 데에는 사모펀드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지적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이날 주총 개최에 앞서 금융정의연대, 경실련, 참여연대 등은 기자회견을 열고 “임 내정자가 금융위원장 시절 사모펀드 관련 규제를 완화했다는 점에서 사모펀드 사태의 책임이 있다”며 비판한 바 있다.
또한, 임 회장은 지주와 자회사가 각자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주사는 혁신의 방향을 잡고 자회사는 혁신적 아이디어를 발굴해 성장동력으로 만들어야 한다”며 “지주는 전략 중심으로 업무 효율성을 극대화해 작지만 강한 조직이 돼야 하고 자회사는 모든 가치를 영업 중심으로 판단해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고 했다.
이는 이달 초 우리금융이 단행한 대대적인 조직개편과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앞서 우리금융은 자회사의 경영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해야 한다는 당시 임 내정자의 의지에 따라 지주사 조직을 축소했다. 총괄 사장제(2인)와 수석 부사장제를 폐지하고, 부문을 11개에서 9개로 줄였다.
이 밖에 임 회장은 당장은 어렵지만, 성장성이 있는 기업을 대상으로 자금을 적시에 공급하고 금융소외계층을 적극 지원할 것을 임직원들에게 주문했다.
임 회장은 신임 회장으로서 집중할 경영 어젠다로 ‘조직혁신’을 강조했다. 임 회장은 “내부통제, 경영승계 절차 등 조직에 부족하거나 잘못된 관행이 있는 분야는 과감한 혁신을 지속하겠다”며 ‘새로운 기업문화 정립’에 대한 의지를 밝혔다.
임 회장은 비은행 포트폴리오의 확대도 집중할 분야로 꼽았다. 그는 “증권, 보험 등 비은행 포트폴리오를 조속히 확대하고 비금융 분야에서도 새로운 미래먹거리를 찾는 등 그룹의 사업구조를 다각화할 것”이라며 “기존의 비은행 자회사들 역시 시장에서 존재감을 높여 그룹이 균형 있는 성장을 이룰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아울러 임 회장은 “지주의 책임과 역할은 ‘자회사 경영의 응원자’”라고 정의하며 자회사 경영의 자율성을 강조했다. 그는 “자회사들과 소통은 강화하되 업종의 특성을 존중해 불필요한 간섭은 지양하는 자율 경영을 지향하겠다”며 “자회사들이 영업에 효율적으로 집중할 수 있도록 지주사가 명확한 전략 방향을 제시해 금융지주 체제를 정상화하겠다”고 덧붙였다.
임 회장은 취임사에서 공직자 시절 우리금융과의 인연을 강조하기도 했다. 그는 “공직에서는 우리금융이 탄생하게 된 상업ㆍ한일은행 합병 작업을 담당하기도 했고, 금융위원장으로서 우리금융 민영화를 위해 함께 애썼던 시절도 있었다”며 “이제 온전히 ‘우리금융 가족’이 됐다”고 했다.
앞서 임 회장은 금융위원장이던 2016년 11월 우리은행 민영화를 추진해 우리은행을 7개 과점주주(동양생명, 미래에셋자산운용, 유진자산운용, 키움증권, 한국투자증권, 한화생명, IMM PE) 체제로 만들었다. 매각물량은 29.7%였다. 이후 2021년 말 예금보험공사가 남은 지분을 민간에 매각하면서 공적자금 투입 23년 만에 우리금융지주가 완전 민영화를 이뤘다.
임 회장은 공식 취임을 앞둔 이날까지도 '관치' 비판을 받았지만, 세계 최대 의결권 자문사인 ISS(기관주주서비스)에 이어 전날 국민연금도 당시 임 내정자의 사내이사 선임 안건에 찬성 의견을 내놓으면서 무난하게 주총을 통과했다.
임 회장은 1959년 전남 보성에서 태어나 영동고와 연세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기획재정부 제1차관, 국무총리실장 등을 지내며 30년간 공직 생활을 했다. 2013년부터 2년간 NH농협금융지주 회장을 역임했고 이후 2015년에는 금융위원장을 지냈다. 윤 정부 출범 초기에는 경제부총리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임 신임 회장은 이날 취임 후 우리금융 최고경영자(CEO)로서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간다.
이날 임 회장과 함께 이사회를 이끌 신임 사외이사들도 공식 임기가 시작됐다. 윤수영, 지성배 이사는 신규 선임으로 2년, 정찬형 이사는 재선임으로 1년 임기를 수행한다.
우리금융은 앞서 사의를 표명한 이원덕 우리은행장의 후임 선정을 위한 선임 절차에 돌입했다. 이날 첫 자회사대표이사후보추천위원회(자추위)를 개최해 우리은행장 후보 롱리스트로 이석태 국내영업부문장, 강신국 기업투자금융부문장과 박완식 우리카드사 대표, 조병규 우리금융캐피탈사 대표 등 4명을 선정했다.
은행장 후보군 전원이 우리금융 내부 출신으로 꼽혔다. 임 회장이 금융위원장 등을 거친 관료 출신이라는 점 때문에 ‘관치금융’ 논란의 중심에 있었던 것에 대한 부담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자추위 관계자는 “조직 쇄신을 위한 ‘세대교체형’ 리더로 ‘지주는 전략중심, 자회사는 영업 중심’이라는 경영방침에 맞춰 영업력을 갖춘 은행장이 선임돼야 한다는 공감대를 이뤘다”며 “현직에 있는 그룹 내 주요 보직자를 후보군으로 선정하는 데 전원 의견 일치를 봤다”고 설명했다.
우리금융은 자추위 내부 논의만으로 은행장을 선임했던 기존 절차에서 벗어나 ‘은행장 선정 프로그램’을 마련해 검증 절차를 밟을 방침이다.
은행장 후보자 4명은 각자 현재 직무를 수행하면서 외부전문가 심층 인터뷰, 평판 조회, 업무역량 평가 등을 거치게 된다. 업무역량 평가를 마친 뒤 후보자 2명을 추려 심층면접과 경영계획 발표 후 최종 선임된다. 5월 말에 자추위에서 은행장이 결정될 예정이다.
우리금융 관계자는 “24일 취임과 함께 임 회장이 조직 혁신을 본격화하고 미래성장 전략도 더욱 속도감 있게 추진할 것”이라며 “이번에 새로 도입한 은행장 선정 프로그램 시행 경험을 토대로 앞으로 회장, 은행장, 임원 등 경영진 선발을 위한 경영승계프로그램의 시스템을 구축해 새로운 기업문화를 정립해갈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