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만 달러를 기대하던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 초반으로 뒷걸음질 치고, 실질 국민총소득 (GNI) 성장률이 24년 만에 처음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GNI가 뒷걸음친다는 것은 그만큼 한국인의 실질 구매력이 나빠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난해 우리나라는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2.6%를 기록해 경제 덩치는 커졌지만, 국민의 전반적인 생활 수준은 악화했다는 얘기다. 원화 가치가 크게 하락하고, 반도체 수출 감소 등 교역 조건이 악화한 탓이다.
전문가들은 반도체를 대체할 새로운 산업군을 키우고, 기업 규제를 완화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원화 가치 하락 영향이 큰 만큼, 폐쇄적인 외환시장을 더 개방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한국은행이 7일 발표한 2022년 국민소득(잠정)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실질 GNI 성장률은 전년비 마이너스(-) 1.0%로 집계됐다. 실질 GNI 성장률이 마이너스를 나타낸 건 국제통화기금(IMF) 당시인 1998년(-7.7%) 이후 24년 만에 처음이다.
우리나라 실질 GNI가 역성장한 건 △1998년(-7.7%) △1980년(-5.6%) △1956년(-0.8%) 등 단 세 번에 불과하다. 2008년 외환 위기와 2020년 코로나 당시에도 소폭 성장을 이어갔다.
반도체를 비롯한 주요 수출품 가격이 약세를 보인 반면에 에너지 가격은 치솟는 등 교역 조건이 악화한 영향이다.
지난해 우리나라 순상품교역조건지수는 1년 내내 하락세를 보였다. 순상품교역조건지수는 수출상품 한 단위 가격과 수입상품 한 단위 가격 간의 비율로 우리나라가 수출 한 단위로 수입할 수 있는 상품의 양을 알 수 있는 지표다. 이에 따라 지난해 실질무역손실은 115조6000만 원을 기록했다. 전년의 44조7000억 원보다 손실 규모가 3배 가까이 확대됐다.
문제는 원화값 하락에 원자재 가격 급등이 겹치며 교역 조건이 악화했는데, 물가까지 치솟으며 국민의 구매력이 약해지는 악순환이 커졌다는 점이다. 구매력 약화는 결국 저축률 하락으로 이어졌다. 지난해 저축률은 33.7%로 전년 대비 2.6%포인트(p) 하락했다.
전문가들은 실질 GNI와 1인당 국민소득 감소에 대해 현재 우리나라 경제 상황을 반영하는 것이라며 기업 활력을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달러 표시 GNI가 줄었다는 건 국민이 예전보다 더 많은 달러를 써서 자원을 사와야 한다는 뜻”이라며 “우리나라 경제가 그만큼 어렵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먼저 물가가 안정돼야 하고, 그 기반에서 기업들이 움직일 수 있도록 기업의 부담을 줄여주는 게 필요하다”며 “반도체 이외의 새로운 성장동력 발굴에도 적극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역시 이날 열린 방송기자클럽 토론회에서 "우리나라 수출 구조가 소수 산업, 소수 지역 중심으로 편중돼 있다"며 "지역과 산업군을 다변화 해야한다"고 밝혔다. 또 "우리 기업이 해외에 적극적으로 진출하고, 국내에선 규제완화를 통해 새로운 산업이 발전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올해와 내년 경제성장률도 좋지 않을 것”이라며 “생산과 수출의 주체는 기업인 만큼, 이전에 사회적 불균형 해소에 주력했다면 이제는 성장에 중심을 두고 시장 규제완화와 기업투자 활력에 눈을 돌려야 한다”고 말했다.
환율과 관련해선 “미국 연방준비제도 등 외부 요인이 작용하는 것”이라면서도 “우리 외환 시장은 통로가 작아서 조금만 움직여도 쏠림이 크다. 금융당국이 최근 발표한 것처럼 외환시장 선진화에 서둘러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