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노동자, 사측 불신 당연…귀 기울여야”
벤처‧스타트업계가 근로시간제 유연화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1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28일 근로시간제 유연화와 관련해 열린 '벤처·스타트업 근로시간 제도개편 간담회'에서 벤처‧스타트업 대표들은 “기업의 성격이 다 다른데 법 하나로 모든 근로시간을 규율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기업에 자율성을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스톡옵션을 가진 직원의 경우 창업자와 같은 수준으로 보고 노동시간 관리에 자율성을 달라는 지적이 나왔다. 인공지능(AI)으로 동공 움직임을 확인해 치매를 진단하는 기술을 가진 비주얼캠프의 박재승 대표는 “스톡옵션을 부여받은 직원은 공동창업자와 비슷하다”면서 “이들은 회사와 운명 공동체인 만큼 노동 시간 제한에 자율권을 더 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수출을 확대하고, 원활한 해외 지사 관리를 위해 근로시간제 유연화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곽영호 한터글로벌 대표는 “글로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어 해외지사 관리가 중요한데 근로시간이 획일적으로 정해지면 해외 노동자의 노동을 관리하고 일의 연속성을 만들기가 어렵다”고 토로했다.
야근이 필요한 상황인데도 근로시간 제한으로 어려움을 겪는다는 주장도 있었다. 해양 유출 기름 회수 로봇장비를 개발하는 코아이의 박경택 대표는 “쿠웨이트의 초청을 받고 가서 장비를 소개하고 수출하는 것을 몇 주만에 끝낸 적이 있는데 짧은 시간 몰아서 일을 해야 했지만 근로시간제한으로 집중이 어려워 애를 먹었다”고 했다.
간담회에 참석한 이영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스톡옵션이 부여된 직원처럼 근로시간 제한을 적용하지 않을 직업군을 만들자고 고용노동부에 요청했지만 반영될지는 모르겠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고용노동부와의 논의로 유연근로제, 선택근로제가 시행될 가능성은 크지만 연속 휴식시간처럼 제한이 있을 것”이라며 “논의를 해나가야한다”고 강조했다.
이 장관은 기업에 자율성을 최대한 부여하고 노사가 합의할 수 있는 길을 만들어야 한다며 독일의 사례를 예로 들었다. 이 장관은 “독일은 연 단위로 근로시간 조정이 가능하고 그마저도 노사가 합의해 더 늘릴 수 있다”며 “노동자도 등급을 나눠 근로시간제도를 적용 안 받는 등급과 국가가 보호하는 등급이 따로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정부와 기업에 불신이 클 수밖에 없는 한국의 상황을 받아들이고 노동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고 제언했다. 독일의 경우 노사 간 신뢰가 있어 협의로 근로시간을 조정할 수 있지만 한국은 그렇지 않다는 지적이다.
이준규 세림노무법인 대표는 “한국의 노동조합은 산업화에 이용되고, 기업과 합의했다가 버림받았던 경험이 있어 불신이 있을 수밖에 없다”면서 “노동자 대표와 진지하게 대화하고 귀를 기울여야 문제가 해소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