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23일 오전 통화정책방향 회의에서 현재 연 3.50%인 기준금리를 동결했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동결 배경에 대해 “3월 이후 물가 상승률 둔화 전제에 따른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3월부터는 4%대로 낮아지고 올해 말에는 3% 초반으로 내려가는 경로를 생각하고 있는데, 이대로 가면 굳이 금리를 올려 긴축적으로 갈 필요가 없다”며 “우리가 생각하는 물가 경로로 가느냐를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물가 상승률이 점차 둔화할 것으로 전망되지만 연중 목표 수준을 상회하는 오름세가 지속할 것”이라며 “정책여건 불확실성도 높아 기준금리의 현 수준을 유지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한은이 물가 불확실성에 대한 우려가 큰 상황에서도 금리를 동결했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나라의 경제 상황이 나쁘다는 뜻이다.
우리나라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전 분기 대비)은 수출 부진 등에 이미 지난해 4분기 마이너스(-0.4%)로 돌아섰다. 올해 1분기까지 역성장이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2월 1∼20일 수출액(통관 기준 잠정치, 335억4900만 달러)은 작년 같은 달보다 2.3% 적다. 이 추세대로라면 이달까지 5개월 연속 감소(전년동월대비)세가 이어지게 된다.
한은은 이날 발표한 수정 경제전망에서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1.7%에서 1.6%로 하향 조정했다. 1%대 성장률은 코로나19 사태가 시작된 2020년(-0.7%),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9년(0.8%)을 제외하면 2000년대 들어 가장 낮다.
한은은 “수출은 글로벌 경기 부진으로 당분간 둔화 흐름이 이어질 것”이라며 “하반기 이후에는 중국·IT 경기 회복 등에 힘입어 국내 성장세도 점차 나아질 것으로 예상하지만 전망의 불확실성이 높은 상황”이라고 했다.
향후 성장률을 끌어내릴 수 있는 하방 리스크 요인으로는 높은 인플레이션 지속에 대응한 주요국 통화 긴축 강화, 세계 경제 분절화 심화, 국내 주택시장 부진 지속 등이 꼽혔다.
부진한 수출을 대신해 성장을 이끌 민간 소비조차 움츠러들고 있다. 수출 감소, 물가 상승 등의 영향으로 2월 소비자심리지수(CCSI·90.2)는 1월(90.7)보다 0.5포인트(p) 떨어졌다.
한은은 올해 민간소비가 2.2% 증가하는 데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지난해 민간소비는 4.4% 증가하면서 경제 성장을 견인한 바 있다.
한은은 “부문별로는 해외 여행이 늘면서 국외 소비의 펜트업 효과가 본격화하겠으나, 국내 소비는 완만한 증가에 그칠 것”이라며 “주택경기 부진은 경기 하방 리스크로 작용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은은 이날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도 기존 3.6%에서 3.5%로 조정했다. 지난 전망보다 소폭 낮아지긴 했지만, 지난해(5.1%)를 제외하면 글로벌 금융위기가 시작된 2008년(4.7%) 이후 가장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