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규모 단위노동조합과 연합단체 대다수가 고용노동부의 회계자료 제출 요구를 사실상 거부했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16일 서울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어제 자정까지 노동조합에 회계자료를 제출하라고 했는데 대상 노조의 70%가 제출했고, 이 중에서 30%만 제대로 냈고 40% 정도는 표지만 냈다”고 밝혔다.
앞서 고용부는 노조가 스스로 서류 비치‧보존 의무를 점검하고 미비점을 보완하도록 지난해 12월 29일부터 지난달 31일까지 자율점검 기간을 운영했다. 이후 민간노조 253곳, 공무원·교원노조 81곳 등 조합원 1000명 이상 단위노조와 연합단체 334곳에 점검 결과 보고를 요구하는 공문을 발송했다. 이후 이달 1일부터 15일까지 재정에 관한 장부와 서류 등 비치‧보존 의무 이행 여부를 보고받았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제14조에 따른 비치·보존 의무 대상 서류는 조합원 명부, 규약, 임원 성명‧주소록, 회의록, 재정에 관한 장부와 서류다.
이번 점검에서 해산신고 노조(7곳, 2.1%)를 제외한 327곳 중 120곳(36.7%)만 제대로 된 자료를 제출했다. 54곳(16.5%)은 자료 일체를 제출하지 않았으며, 156곳(46.8%)은 자료를 일부만 제출했다. 상급단체별로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의 제출률이 각각 38.7%, 24.6%에 머물렀다. 조직형태별로 기업별 노조 등(46.2%)의 제출률이 상대적으로 높았다. 연맹‧총연맹 등 연합단체는 제출률이 20.3%에 불과했다.
노동계의 비협조는 이미 예견됐던 상황이다. 한국노총은 7일 산하 노조에 내린 공문에서 △비치 대상 항목은 사진 및 서류의 ‘표지’ 제출 △보존 대상 항목은 3년간 연도별 ‘표지’ 제출 △증빙자료 중 ‘내지’ 등 민감한 내부정보는 제출하지 않음 △부당한 현장방문 및 자료제출 요구는 거부하고 즉각 신고할 것을 주문했다. 민주노총도 신년 기자 간담회에서 구체적인 재정 자료는 정부에 제공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공문 발송 당시 고용부는 점검 결과서 및 증빙자료가 제출되지 않거나 제출 자료에서 서류 비치‧보존 미비점이 발견되는 등 법 위반사항이 확인되면 과태료 부과 등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이날도 이 장관은 “회계자료를 내지 않은 곳에 대해선 시정명령을 내린 후 500만 원의 과태료를 부과하고 그래도 안 지키면 또 다른 페널티 단계로 넘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노동계는 이번 점검 결과 발표를 놓고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한국노총은 이날 논평에서 “정당한 사유 없이 상급단체 및 일정 규모 이상의 노조에 일률적으로 자료 제출 보고를 요구하는 것은 노조법상 근거를 찾을 수 없는 것으로, 부당한 정부의 노조 운영에 대한 개입이며 위법한 월권행위”라고 주장했다.
특히 “향후 노동부가 제출 불이행 및 제출한 서류의 미비 등을 들어 과도한 현장점검를 실시하거나 과태료를 부과하는 등 노조 때리기를 이어간다면, 한국노총은 정부의 부당한 행정 개입에 불응하고, 법률적 대응에 나서는 것은 물론 민주노총과 함께 노동부 장관에 직권남용 책임을 묻고, 국제노동기구(ILO)에 공식 제소하는 등 공동 투쟁을 이어갈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와 관련해 이 장관은 “우리가 노조의 회계를 검사하겠단 의미는 아니다”라며 “현행법에 나와 있는 부분을 잘 지키고 있는지 확인하는 차원”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