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외환법]②‘외국환은행 중심주의’, 시스템 흔드는 구시대적 인식

입력 2023-02-06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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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사 등 비은행 금융기관의 외환 업무 범위를 조정하는 신외환법의 핵심은 ‘외국환은행 중심주의’라는 낡은 원칙을 극복하는 데 있다. 해외 투자 규모가 나날이 성장하고 있고, 금융상품·산업 간 경계가 흐려지는 ‘빅블러(Big Blur)’ 시대에 금융투자회사들의 외환 업무 경쟁력을 확보하는 게 필요하다는 주문이다.

◇은행은 되는데…증권사 발목 잡는 낡은 규제=현행 외국환거래법은 외환 업무를 수행하는 금융기관을 외국환은행(은행)과 기타외국환업무취급기관으로 구분한다.

비은행 금융기관은 기타 외국환업무취급기관으로 분류돼 은행과 달리 업무상 제약이 많다. 증권사의 경우 자본시장법에 따라 투자 목적일 때만 환전이 가능하고, 외화 예금은 불가능하다. 송금은 건당 5000달러, 연간 5만 달러까지로 제한된다.

발행어음 인가를 받은 일부 대형 증권사에 한해 일반 환전을 허용하고 외화 신용공여의 길을 텄지만 은행과 비교하면 업권 간 불평등은 여전하다. 코로나19 이후 해외주식 투자 열풍이 불면서 증권사의 외환 업무 수요가 늘어난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1일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에 따르면 국내 증권사의 외화증권 위탁매매 규모는 2012년 4조 원에서 2021년 528조 원까지 급증했다. 수수료수익도 9000억 원에 달한다. 통화파생상품 거래 규모 역시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이처럼 증권사의 외화 업무 수요는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지만, 은행중심주의에 입각한 외국환거래법이 발목을 잡고 있다. 예컨대 개인투자자가 외화증권에 투자할 때, 직접 외화를 송금할 수 없는 증권사는 은행에 관련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국내 자산운용사의 해외펀드 수탁 업무도 맡기 어렵다.

증권사의 외화 조달 여건도 만만치 않다. 외국환은행의 외화 대출 창구는 한국은행의 용도 제한 지침에 따라 해외 실수요 목적에 한해서만 허용된다. 외화채권을 발행하는 것도 한 방법이지만, 실제로는 대형 증권사 일부만 발행에 나선다.

결국 현물시장에서 외화를 사들이거나 외환스왑(FX swap), 통화스왑(CRS) 등을 통해 외화를 조달하는 방법에 의존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그러나 이 방법 역시 조달 규모가 제한적이고, 스왑레이트가 하락하면 조달비용이 늘어나는 등의 취약점을 안고 있다.

◇증권사 외환 경쟁력 약화, 금융시스템 전체로 = 문제는 이러한 자금 조달 구조가 증권사뿐만 아니라 금융 시스템 전반의 안정성을 저해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코로나19 초기였던 2020년 3월 발생한 주가연계증권(ELS) ‘마진콜 사태’는 증권사들의 낮은 외환 경쟁력의 현주소를 여실히 드러내는 사례다.

당시 코로나19로 주요국 주가지수가 급락하자 해외 기관들은 증권사에 추가 증거금 납부(마진콜)를 요구하고 나섰다. 외화 조달이 쉽지 않은 증권사들은 현물시장과 스왑시장에서 달러화를 급히 매입했고, 환율이 급등하고 스왑레이트가 하락하는 결과가 나타나면서 유동성 우려가 커졌다.

금융투자업계의 외환 경쟁력뿐만 아니라 금융소비자의 권익 측면에서도 비은행 금융사의 외환 업무 범위 확대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가상자산을 비롯해 해외 투자가 늘어나고 있지만, 법에서 규정한 증권사의 외환 업무로는 한계가 있어 투자자들의 불편도 크다”고 전했다.

진시원 법무법인 세종 전문위원은 최근 세미나에서 “외국환은행 중심주의는 외국환 업무가 연혁적으로 은행을 중심으로 발전해 온 역사적 산물에 불과할 뿐”이라며 “외국환 업무 취급 수요가 크게 증가했음에도 비은행의 업무 범위를 제약하는 건 기능별 규제 원칙에도 반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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