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삶에 중요한 것을 챙기는 게 정부의 역할이다. 정부의 의무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이 으뜸이고 경제생활의 보장도 못지않게 중요하다. 안정적인 물가, 공공서비스의 제공,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일자리, 노동에 대한 공정한 보상 등이 국민의 경제생활에 중요한 것들이다. 그런 점에서 1월 30일 정부가 발표한 ‘일자리정책 패러다임 전환을 위한 고용정책 기본계획’을 중요하고, 자세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선, 정부는 우리나라 노동시장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저성장이 예상되는 데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생산인구가 감소(2030년까지 357만 명 감소)하고 고령화의 속도가 빨라져 성장을 둔화시킬 것이라는 지적이다. 이 외에도 디지털과 신산업으로의 산업전환이 빨라져 제조업 등 전통산업은 인력난을 겪고 IT, 화학, 바이오 등 신산업은 전문직 인력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다만, 노동시장에 대한 정확한 진단에 비해 정부가 제시한 처방은 다소 엉성하고 구체성이 떨어져 아쉽다. 예를 들어 일자리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해 고용서비스 밀착지원을 한다고 하는데 구체적인 내용은 없다. 인력수급을 위한 불균형을 해결하기 위해 기능직 외국인 인력(E9 비자)을 대폭 늘린다고 하는데 내국인 기피 직종에 외국인을 늘리는 것이 단기 처방이 될 수 있을지 몰라도 장기적인 대책으로 보기는 어렵다. 지역별 고용위기지역에 관리를 대책으로 내놓았으나 새로운 것보다 과거부터 해오던 것을 발표한 수준이라, 노동시장의 심각성에 걸맞은 대책으로 보기가 어렵다. 구체적인 것은 청년 나이를 현행 15~29세에서 15~34세로 조정하여 정책수혜 대상을 늘린다는 것이며 고령화에 따라 계속고용을 논의하기 위해 사회적 대화를 추진한다는 것이다.
정부 고용정책의 목적은 변화하는 노동시장에서 기업의 성장을 뒷받침하고 일하는 국민의 권리를 개선하는 데 있다. 안타깝지만 현재의 정부 대책으로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기가 어렵다. 기업과 노동자 모두에 가장 중요한 과제인 일자리 불균형(미스매칭)의 진짜 원인에 대한 대책을 제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용률은 그대로인데 빈 일자리가 늘어난다면 사람들이 일하기 싫어서일까. 그렇지 않다. 단순히 일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저임금에다 위험하고 힘든 일을 거부하는 것뿐이다. 과거에는 참고 일했지만, 지금은 그렇게는 일하고 싶지 않고 힘들고 위험한 일이라면 더 나은 보상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배부른 생각이라고 무시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변화된 인식과 달라진 세대 차이를 받아들여야 한다. 결국 노동시장에 만연한 임금격차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면 저임금 직종의 일자리는 사라질 수밖에 없다. 외국인 노동력으로 저임금 직종을 유지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누군가는 신산업 직종으로 옮겨 첨단산업 위주로 산업을 재편하면 될 것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다. 이 또한 어리석은 생각이다. 첨단상품이더라도 아이디어 구상부터 부품공정까지 생태계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누군가는 어렵고 힘든 일을 해야 한다. 제조업 강국 독일과 일본은 상품에 대한 구상설계부터 공정까지 전 과정에 대한 경쟁력을 가지고 있어 제조업 강국이 된 사실을 잊어서는 곤란하다.
정부의 고용정책이 간과한 또 다른 하나는 행정력을 어떻게 발휘할지에 관한 것이다. 예를 들어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를 위해 모성보호제도를 강화하겠다고 하는데 실제 일선 현장에서는 여성이 출산휴가 등을 이유로 승진과 고과에서 차별받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이에 적절한 행정당국의 관리, 감독 없이는 아무리 모성보호를 강조해도 여성들은 일터로 나오지 않는다. 일터의 잘못된 관행을 바로 잡는, 세세한 정책들이 중요한 이유다.
미래로의 변화는 빠르고 거대하지만, 우리 앞의 현실은 불안하다. 글로벌 경제가 저점을 찍고 낙관적인 수치를 제시하고 있지만, 대한민국 경제는 불황의 긴 터널 앞에 서 있다. 달라진 세상에서는 저가의 노동으로 위기를 극복하기 어려운 구조다. 이미 세계 10위권인 대한민국의 경제성장은 노동의 희생이 아닌, 협력과 상생으로 평평한 노동시장을 만들고, 그 안에서 창의적인 국민성을 발휘하는 것이다. 고용정책에 단 한 줄도 나오지 않은 노사 상생이 여전히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