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길을 잃은 모습이다. 나경원 전 부위원장은 해임됐고, 헝가리형 출산정책 등 나 위원장이 제안했던 정책기조 전환은 논의도 없이 흐지부지됐다. 후임으로 내정된 김영미 상임위원은 학계 출신으로, 국가 의제로서 인구정책을 이끌 정치력이 검증되지 않았다.
16일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에 따르면, 나 전 부위원장의 후임으로 내정된 김영미 상임위원은 조만간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에 정식 임명될 예정이다.
나 전 부위원장은 앞선 기자간담회에서 출산 시 대출원금을 탕감해주는 헝가리형 출산정책을 제안했다. 다음 날 대통령실이 ‘윤석열 정부의 정책기조와 상당한 차이가 있다’며 공개적으로 반박했고, 나 전 부위원장은 구두로 사의를 표명했다. 대통령실이 나 전 부위원장의 사의 표명을 부정하자 나 전 부위원장이 서면으로 사직서를 제출했고, 윤 대통령은 사직서를 수리하는 대신 나 전 부위원장을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과 기후환경대사 직에서 해임했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의 내홍에 정부 내에서도 아쉽다는 반응이 나온다. 한 정부부처 고위관계자는 “인구정책을 국가 아젠다로 끌어올리려면 그만한 영향력을 지닌 인물이 부위원장으로 와야 하는데, 그동안 위원회는 존재감이 없었던 것이 사실”이라며 “나 전 부위원장 개인에 대한 평가와는 별개로, 정치력과 영향력에 거는 기대가 컸었다”고 전했다. 다른 관계자는 “윤석열 정부에서 인구정책을 기획재정부가 주도하면서 위원회 예산이 큰 폭으로 삭감됐는데, 국회 논의에서 대부분 복구됐다”며 “나 전 부위원장의 영향력이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고 말했다.
후임 부위원장으로 내정된 김 상임위원에 대해서도 우려가 나온다. 김 상임위원에게 정치권과 접점이라곤 ‘윤핵관(윤석열 대통령 핵심관계자)’ 장제원 국민의힘 의원 일가가 운영하는 동서대학교 교수 출신이란 점뿐이다. 인구정책 컨트롤타워로서 정부부처를 통할하고 저출산·고령화 해소를 윤석열 정부의 핵심 정책의제로 이끄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김 상임위원의 경력을 볼 때, 위원회가 기존 인구정책의 관성을 탈피하기 어려울 것이란 관측도 제기된다.
기존의 인구정책은 보육·여성정책, 외국인력 확대 중심으로 추진돼왔다. 한국여성단체연합 등 급진적 여성주의(래디컬 페미니즘) 성향의 단체들이 인구정책을 주도해온 결과다. 이들은 결혼·출산으로부터 여성의 해방을 주장한다. 김 상임위원도 2018년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에 대한 젠더 분석-저출산 담론의 재구성을 위하여’ 논문에서 출산에 대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