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천대유자산관리 대주주 김만배 씨가 변호인을 창구로 활용해 측근들에게 대장동 사업으로 생긴 범죄수익을 은닉하라는 지시를 내린 것으로 나타났다. 그의 '옥중 지시'로 측근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범죄수익을 감췄다.
법무부가 12일 국회에 제출한 화천대유 공동대표 이한성 씨와 이사 최우향(쌍방울그룹 전 부회장) 씨의 범죄수익은닉규제법 위반 혐의 공소장에 따르면 김 씨는 이들에게 지시해 총 275억 원에 달하는 대장동 범죄수익을 은닉했다. 공소장에는 '옥중 지시'와 함께 은닉 과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공소장에 따르면 김 씨는 2021년 9월 검찰이 대장동 사건 수사를 본격화하자 화천대유와 천화동인 1호 자산에 대한 추징보전 청구 등의 조처가 이뤄질 것으로 내다봤다. 범죄수익을 은닉하기로 결심한 그는 자신의 주거지 압수수색, 구속영장 청구, 구속 기소, 수사팀 변경 등 수사 상황이 달라질 때마다 관련 내용을 지시했다.
범죄수익은 다양한 방법으로 감춰졌다. 화천대유나 천화동인 1호에서 정상적으로 자금이 집행된 것처럼 꾸며 수표를 찾은 뒤 추적이 어려운 소액수표로 바꾸거나 김 씨 명의 계좌로 자금을 옮겨 부동산을 매수하라고도 지시했다.
김 씨 지시에 따라 이한성 씨와 최우향 씨는 화천대유 대표 이성문 씨와 역할을 나눠 움직였다. 이한성 씨는 수표 출금과 교환 역할을 맡았다. 최우향 씨는 변호인을 창구로 삼아 김 씨에게 은닉된 범죄수익 현황을 보고하고, 김 씨 지시를 전파했다. 이성문 씨는 화천대유 대표로 재취임한 지난해 5월부터 은닉된 범죄수익 등을 관리했다.
이들은 김 씨 사건을 변론하거나 화천대유와 자문 계약을 맺은 변호사들의 조언을 받아 자금이 적법하게 집행된 것처럼 이사회 회의록, 주주총회 회의록 등 관련 서류도 꾸렸다.
대장동 사업 특혜 의혹으로 김 씨가 2021년 11월 구속되자 구치소 접견을 다니는 변호사들이 관련 내용을 실어날랐다. 김 씨 등은 접견 내용이 녹음되지 않고 서류 열람이나 필기를 할 수 있다는 점을 이용했다.
변호사들이 김 씨가 지시한 내용을 이한성과 최우향, 이성문에게 전달하는 방식으로 일은 진행됐다. 2021년 11월부터 약 1년간 범죄수익을 수표로 출금한 후 수백 장의 소액수표로 교환하거나 화천대유 직원 지인 오피스텔과 차명 대여금고, 집안 금고 등으로 장소를 바꾸며 분산 보관해 수사기관의 눈을 피했다.
수감돼 있던 김 씨는 부동산과 사채 등에 투자해 추가 수익을 창출하라는 지시도 내렸다. 그는 추징보전으로 계좌가 막히는 상황에 대비해 '(대장동) B1 블록 수익금을 유동화할 방안을 상의하라'고 지시했다. 지난해 5∼7월 검찰 수사팀 지휘부와 구성원이 바뀌자 재수사에 대비해 친형 등에게 보낸 범죄수익 은닉 관련 서신을 폐기하라고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