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원 이민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 노민선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연구위원, 박영범 한성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우춘희 ‘깻잎 투쟁기: 캄보디아 이주노동자들과 함께한 1500일’ 작가, 최정규 원곡법률사무소 변호사 등(가나다순)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이주노동자들을 접하고 정책 제언을 해온 전문가들이다.
이들은 산업계 노동 공백을 메우고 있는 이주노동자가 우리 사회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라는 데 공감대를 같이 하면서 열악한 노동 환경 개선에 대해 각기 해법을 제시했다. 이주노동자를 둘러싼 다양한 이슈에 대해 전문가들과 나눈 문답을 지면 좌담회로 펼친다.
-우리 사회에서 이주노동자는
우춘희 작가= 한국의 제조업과 농업은 ‘이주노동자 없이 돌아가지 않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들은 한국 사람이 들어가지 않는 (사회의) 낮은 곳에 들어가 있다. 이분들 없이는 당장 식탁이 차려지지 않을 것이다.
박영범 교수= 우리 경제의 근간인 제조업은 수많은 중소기업에 의해 경쟁력이 유지되고 있는데, 이들 기업은 만성적인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이 꺼리는 일을 하고, 이주노동자 없이는 우리 경제와 사회가 유지되기 힘들다.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는
노민선 연구위원= 농어촌 지역의 외국인 근로자 숙소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외국인 근로자 거주를 위해 농지 사용을 허용하거나 냉난방, 화장실, 급수시설 등의 기준을 충족하는 임시 건물을 숙소로 인정하는 등 규제 완화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최정규 변호사= 의식주를 해결하면서 일을 해야 한다. 기계를 수입하는 게 아니라 사람이 우리나라에 있다가 가는 것이기 때문에 주거권이 개선될 필요가 있다. 또 이들이 주로 일하는 곳은 한국 사람들이 일하려고 하지 않는 곳이라 열악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일한 만큼의 대가는 제대로 받을 수 있게 시스템이 갖춰져야 한다.
-‘사업장 변경’에 고용주와 노동자 간 이견이 있다
김도원 부연구위원= 2021년 사업장 이동 제한의 합헌 판결로 그런 논쟁과 비판이 더욱 심화하고 있다. 국내 외국인 근로자의 기본권, 인권을 보호하는 동시에, 외국인 근로자를 체계적으로 도입·관리하고, 중소기업 인력난을 완화하고자 하는 고용허가제의 목적과 의의를 제대로 달성하기 위해서는 도입 후 관리 기능과 역량을 더욱 강화해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박 교수= 대만이나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사업장 변경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대만은 초기 3년, 일본은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연수근로자가 사업장 변경을 할 수 없다. 더욱 엄격한 우리나라에서 사업장 변경 제한이 더 문제가 되는 것은 아이러니다. 사업장 변경은 오히려 입국 초기에는 지금의 제한보다 강화하고 일정 기간이 지난 뒤부터는 지금보다 완화하는 쪽으로 개선책을 마련하는 것도 방안의 하나다.
우 작가= 제조업 같은 경우는 화학 약품이 인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도 모르는 채 이주노동자의 몸에 누적된다. 농약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몸에 안 좋다는 걸 알면서도 항의를 할 수 없다. 사업장 변경 때문이다. 사업장 변경을 하려면 대개 사업주의 허락이 필요한데, 사업주들은 돈을 요구하기도 한다. 많게는 500만 원이다. 사업장 변경이 완화되면 더 좋은 환경이 조성될 것이라고 본다.
-이주노동자에게 최저임금을 적용하는 게 기업 규제라는 의견도 있다
최 변호사= 이주노동자의 자국에선 밥값도 5분의 1 수준이다. 최저임금은 우리나라에서 살 수 있는 여러 상황을 고려해 만든 것이다. 이주노동자들은 한국에서 살아야 한다. 한국에서 노동하면서 달나라에 사는 게 아니다. 최저 임금을 차등하자는 건 이들에게 최저의 생활도 하지 말라는 뜻이다.
우 작가= 이와 관련해 캄보디아에서 온 20대 이주노동자에게 ‘가난한 나라에서 오지 않았냐. 월급을 조금 받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라고 물어본 적이 있다. 이분은 “가난한 나라에서 왔으니 음식을 먹을 때 (돈을) 조금만 내겠다. 버스 탈 때도 조금만 내면 되는 거냐”라고 답했다. 이들이 가난한 나라에서 왔다고 해서 우리가 월세를 저렴하게 주는 것도 아니고 세금을 감면해주는 것도 아니다. 최저임금이라는 건 인종, 성별, 국적 상관없이 한국에 거주한다면 최소 필요 금액이라고 산정한 것이다.
노 연구위원= 외국인 근로자에게 최저임금을 차등 적용하는 것은 논란이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 근로자들이 미국에 일하러 갔는데 외국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최저임금을 받지 못한다면 어떻겠나. 다만 내국인 근로자 대비 생산성이 높지 않을 때 생산성이 향상될 때까지 과도하지 않은 범위에서 수습 기간을 부여하고 일정 기간에 급여를 감액 지급하는 방안은 긍정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장기 거주 이주노동자의 투표권은
김 부연구위원= 영주자격의 취득 자체가 대단히 까다로운 요건을 충족해야 가능할 뿐만 아니라, 취득 이후 3년 이상 지나야 지방선거에 한해서 주어지는 외국인 투표권은 매우 제한적이다. 외국인의 참정권을 내·외국인 간 갈등 요인으로 인식하기보다는, 지역 주민으로서 외국인들이 지역사회의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장려해야 한다. 지역 내 사회통합 수준 제고를 위한 정책 마련에 힘쓰는 것이 바람직한 이민정책의 방향이라고 판단된다.
최 변호사= 이주노동자는 (대선·총선) 투표권이 없다. 그러니 정치인도 인권 침해가 극심한 이주노동자 사건에 반짝 관심만 갖고 제도 변화까지 나서진 못한다. 어느 선거를 봐도 다문화 가족 지원에 대한 공약만 있을 뿐 이주노동자의 환경 개선 관련 공약은 없다. 이주노동자는 표가 없으니 힘도 없다. 그래서 현실이 바뀌지 않는 것이다.
-비전문취업비자(E-9) 기간 연장이 필요하다고 보나
박 교수= 한시적 외국인 근로자 활용이라는 고용허가제 취지에 따르면 기간 연장은 바람직하지 않다. 오히려 자격 등을 취득한 외국인에 대해 체류 기간 제한 없이 체류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줘야 한다.
최 변호사= 기간은 연장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숙련된 노동자를 원하는 사용자들도 기간 연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럴 경우 문제는 가족이 정주하지 않고 9년8개월 이상을 일할 수 있느냐가 된다. 그 기간 일했으면 한국 사회에 어느 정도 이바지했다고 생각한다. 단순 기간 연장이 아니라 이주노동자의 가족까지 초청하는 그런 부분까지 고려돼야 한다.
-새로 생길 이민청에 방향을 제시한다면
김 부연구위원= 이민과 이민청 설립에 대한 국민의 부정적 인식이나 여론을 극복하는 게 중요하다. 이민청이 단순히 이민자를 지원하거나 혜택을 주기 위해 필요한 조직이란 인식에 머물러선 안 된다. 이민과 관련한 여러 사회 현상, 사안들에 대한 효과적인 대응 및 관리, 내·외국인 간 사회통합 수준의 제고와 질서 있는 이민사회의 구현 등을 위해 구실을 하는 조직임을 잘 이해시켜 극복해야 할 문제다.
박 교수= 통합적 기관 설립으로 사업장 이동 제한에 따른 문제, 구인·구직 시 숙련 불일치 등도 상당 부분 해결할 수 있다고 전망한다. 다만, 이민청 설립이 외국인 근로자 정책을 포함한 이민정책의 부처 간 주도권 싸움으로 변질돼서는 안 된다. 부처 간 업무 협조는 고사하고 견제로 인해 통합적이고 유기적인 외국인 취업자 관리 및 지원이 되지 않고 있다. 출입국이주관리청 설립이 통합적 틀 내에서 두 부처 간 이민 및 외국인력 정책이 결정되고 집행되는 계기가 돼야 한다
우 작가= 여전히 관리와 체계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사람을 비자 유형으로 나누고 그 유형에 따라 ‘이렇게만 할 수 있다’는 식의 관리 감독으로 이민청이 작동할까 걱정된다. 이민청이 이주노동자의 목소리를 대변하려면 이주노동자가 직접 뛰어들어야 한다. 출입국 관리 감독 시스템이 아니라 이민청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환경 개선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최 변호사= 현재 시민 인식이 못 미친다. 우리가 필요해서 (이주노동자 정책을) 한 것임에도 그 사람들에게 기회를 준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러니 ‘막 대해도 된다’는 잘못된 인식으로 이어진다. 이민청은 이런 인식을 개선하고 사회 통합적인 기능을 해야 한다. 출입국 관리 차원이라면 현재도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가 있다. 굳이 청을 만들 필요가 없는 거다.
-이주노동자를 진정 ‘이웃주민 노동자’로 받아들이려면
박 교수= 2018년 예멘 난민 수용 관련 이슈는 우리 사회가 저출산 대책의 하나로 거주 목적의 이민자 도입을 추진하는 데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는 점을 시사했다. 외국 인력을 별개의 집단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이는 사회적 인식과 공감대 확산이 필요하다. 단일민족이라는 폐쇄적 인식을 극복해야 한다.
노 연구위원= 혼자 가면 빨리 가고 함께 가면 멀리 간다는 아프리카 속담이 있다. 이제 우리 사회에서 외국인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돼 가고 있다. 서로 간에 차이를 인정하고 함께 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최 변호사= 한국 사회에서 이주노동자들이 필요하다는 것에 대한 인정이 필요하다. 가장 열악한 농업과 제조업 밑바닥을 지탱해주고 있는데, 같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감사까진 아니더라도 존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국가는 외국인 혐오를 방지해야 할 의무가 있다. 또 우리가 필요해서 16개국과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이주노동자를 데려온다는 것을 국민에게 알려야 한다.
우 작가= ‘이주노동자가 한국에 와서 보험 공단 혜택만 받고 본국으로 돌아간다’는 가짜 뉴스가 퍼지고 있는데 이를 정확하게 지적할 필요가 있다. 지난해 외국인 건강보험료는 5000억 원 흑자였다. 2019년 7월부터 외국인도 6개월 이상 체류하면 건강보험료를 의무적으로 낸다. 약 12만 원이다. 이는 한국인 평균이다. 한국인은 부양자, 피부양자, 재산 등을 따져 보험료를 내는데 외국인은 그런 게 없다. 이 같은 가짜 뉴스를 퍼뜨리지 않는 게 중요하다. 나아가 차별금지법 제정도 하나의 방법이다. ‘차별은 안 되는 거야’라는 사회적 합의가 생기고 함부로 차별 발언을 하지 않게끔 하는 장치가 필요하다.
김 부연구위원= 이주민과 선주민(내국인) 간 갈등은 이민자가 존재하는 어느 나라에서나 피할 수 없는 문제다. 궁극적으로 상호 이해에 대한 노력이 전제되어야만 해소·완화할 수 있다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민자의 국내 사회, 문화에 대한 적응만큼 내국인의 이민자에 대한 이해 제고를 위한 노력 역시 중요하다.
-팀장 : 김동선 사회경제부장
-취재 : 정성욱·홍인석·문수빈·심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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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끝). "가난한 나라서 왔다고 밥값 덜내나...최저임금 차별 안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