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전세사기 대응책 조기 집행을 공언했지만 피해자 지원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인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달 22일 전세사기 관련 1차 간담회 이후 20일이 지났지만, 국토부는 개선책 없이 지난해 내놓은 대책만 발표해 참석자의 공분을 샀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 역시 피해자별 세부 현황 집계를 시작조차 못 하는 등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10일 국토교통부는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2차 속칭 ‘빌라왕’ 전세사기 피해자 간담회를 개최했다. 이번 간담회는 전세보증보험 미가입자를 대상으로 진행됐다.
이번 간담회는 지난 1차 간담회 이후 20일이 지난 뒤 시행됐지만 발표 내용은 1차 간담회 ‘돌림 노래’ 수준에 그쳤다. 전세사기 피해자 보증금 반환의 핵심인 빌라왕 김 씨 부모의 상속 여부나 경매 집행사항 등에 관해선 언급조차 없었다.
이날 2차 간담회에서 새롭게 발표된 내용은 ‘보증보험 미가입자의 전세자금대출 만기 연장을 위한 은행 협업’(국토부)과 ‘임차인별 피해 상황 파악’(HUG) 등 두 가지에 불과했다. 특히 HUG는 세입자별 세부 계약현황 조사를 오는 14일부터 자사 홈페이지를 통해 시행하겠다고 했다. 보증보험 가입자 대상 피해 간담회가 열린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세부 현황 파악은 아직 시작조차 못 한 셈이다.
전세사기 일당 부당이익 환수 등 보증금 반환을 위한 실질적 대응 진행 상황도 “진행 중”이라는 대답만 돌아왔다. 이원재 국토부 차관은 “김 씨는 사망했지만 공모 조직과 전체 범행에 대해 경찰청에서 수사 중”이라며 “부당이익 환수와 관련해선 경찰에서 수사 협조를 요청하는 경우 부동산 거래와 자산 현황 자료 등을 제공하고, 가능한 범위 내에서 필요하면 이행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한 간담회 참석자는 국토부와 HUG 측 설명이 끝나자 분통을 터트리며 회의장을 빠져나갔다. 이 참석자는 “여기 참석한 사람들이 저 내용을 몰라서 왔겠느냐”며 “내 시간이 아깝고, 내가 낸 세금이 아깝다”고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또 다른 참석자는 울먹이며 “생업을 뒤로하고 참석했는데 경매 절차 거쳐서 돈 받으라는 게 말이냐”며 “이런 소리 들으려고 참석한 것 아니다”고 말했다.
실제로 보증보험 미가입자는 상황이 더 심각하다. 보증보험 가입자는 김 씨 부모가 주택 상속을 결정하면 보험 처리를 거쳐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있다. 하지만 미가입자는 강제 경매 절차를 거쳐 보증금을 회수해야 한다. 경매 절차를 밟아도 보증금 전체 회수는 어렵다.
전세사기 가해자들은 신축 빌라의 경우 HUG 전세보증보험이 시세의 최대 150%까지 보증하는 점을 악용해 전세보증금을 시세보다 높은 수준으로 설정해 계약했다. 이에 경매를 진행해 시세 수준으로 낙찰받아도, 은행 선순위 채권과 세금 채납액을 제외하면 손실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HUG에 따르면 빌라왕 김 씨 보유주택 1139가구 중 HUG 보증보험 미가입자는 525명으로 전체의 46%에 달한다.
국토부는 보증보험 미가입자를 위해 초저금리 금융 지원과 거처 제공 등을 약속했지만,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다. 국토부는 앞서 보증보험 미가입자를 대상으로 가구당 최대 1억6000만 원을 연 1%대 금리로 지원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저리 지원금액은 수도권 빌라 평균 전셋값보다 턱없이 부족하다는 평가다. 주거지원 역시 HUG 강제관리주택 입주 실적은 10건에 그친 것으로 파악됐다. 인천지역에선 전세사기 피해자의 LH 매입임대주택 입주 지연 사례도 보고됐다. 이에 국토부는 “전세사기 피해자에 대한 심사 등이 완료되는 대로 공공임대 입주절차를 개시할 것”이라고 했다.
한편 국토부의 전세사기 피해 예방과 임차인 지원안을 담은 종합대책은 이달 발표될 전망이다.